오피니언

좀생이 하나님?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제가 1995년에 초판을 내고 2010년에 개정판을 낸 <도덕경>풀이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5장에 보면 --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영어 번역은
Heaven and earth do not take sides in their loving.
They treat everything as if they were straw dogs.
Sages do not take sides in their loving.
They treat people as if they were straw dogs.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늘과 땅을 따르는 성인, 따라서 이들로 대표되는 도(道)는 편애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고 하는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은 의인의 밭이나 악인의 밭이나 다 같이 햇빛과 비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도(道)는 또는 하느님은 이처럼 한결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도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조르거나 간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자기들만을 특별히 더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려도 하느님이 보호해주시니 겁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기 성남의 은혜의 강 교회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런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는 치유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한 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자녀 다섯 명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 중 둘째 아들이 병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지금까지 자기에게 얼마나 효도했는가, 또 얼마나 열렬히 낫게 해달라고 자기에게 애원하는가에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그 아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의 아버지마저 아들이 병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무조건 아들의 병이 낫도록 하려고 하는데, 어찌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이 자기를 열심히 믿는 사람, 자기에게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인가를 따져보고 그런 사람만 낫게 해주실까요. 만약 자기를 열심히 믿고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만 고쳐주는 하나님이라면 이런 하느님은 좀생이 하느님으로 인간의 경배를 받을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시지는 않는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같은 비상사태를 맞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관이 올바른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인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인력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듯 하느님의 사랑도 누구에게나 한결 같이 다 주어집니다. 나만 사랑해 달라, 내 교회만, 내 종교만 사랑해 달라 조르고 그렇게 해 줄 것이라 믿는 것은 하느님을 옹졸한 좀생이 하느님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여겨집니다.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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