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는 ‘그분들’과 ‘우리들’의 이야기

리뷰] 세월호 함께 겪은 공동체 과제 일깨우는 영화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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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JTBC )
영화 <생일>의 주연배우 전도연 씨가 세월호 참사 5주기 하루 전인 1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 <생일>이라는 작품이 그 예전의 상처를 들춰내서 다시 아프자고 만드는 이야기였으면 사실 저도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생일이라는 작품은 그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여서 저는 선택을 했고 그리고 저희 생일이 말하는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좀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절찬 상영 중인 영화 <생일>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 씨가 15일 'JTBC뉴스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엄마' 박순남(전도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했지만 ‘세월호' 하면 익숙하게 떠오르는 장면, 이를테면 선체가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이라든지 해경 함정과 헬기가 사고주변을 배회하는 장면은 없다. 정치적인 메시지도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는 다만 순남과 남편 정일(설경구), 딸 예솔(김보민)의 감정 동선을 우직하게 쫓아간다. 순남으로 분한 전도연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2007년 작 <밀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는 아들을 유괴해 죽인 사내가 자신 앞에서 태연히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말을 듣고 넋을 잃는다.

<생일>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연기는 <밀양>의 주인공 신애를 다시 보는 듯하다. 전도연 씨는 JTBC뉴스룸 인터뷰에서 "제가 밀양이라는 작품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 역을 했었기 때문에 고사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도연이었기에 이 작품은 더욱 강렬했다. 특히 아들 수호의 옷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전도연만이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참사 5년, 모두의 마음에 그어진 생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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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NEW)
‘세월호 이후’를 그린 영화 <생일>

전도연 씨의 인터뷰는 영화, 그리고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 씨가 말했듯 이 영화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다. 5년 이란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차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아프고 힘들어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기 보다 후펴파는 일이 횡행했으니까 말이다.

정부와 언론은 호흡을 맞춰 참사의 성격을 왜곡했고, 유가족을 폄훼했다. 보수 개신교 교회도 거들고 나섰다.

무엇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회자 그룹은 망언을 일삼았다.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기자 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고 한 김삼환 원로목사의 망언은 그 중 최악이라 할 만 하다.

비교적 지명도가 높은 강사나 찬양 사역자가 세월호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아니면 광화문 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교회 집회나 강연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한 대형교회 목회자는 출석 성도가 세월호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해당 성도를 출교조치까지 했다.(이 목회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극우 집회에 성도를 동원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5년이 지났지만 이런 분위기는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5주기 추모식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에도 이른바 '태극기 부대'는 세월호를 규탄하는데 열심이다.

세월호 참사 당사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소속 차명진 전 의원은 5주기 하루 전날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는, 실로 극악무도한 글을 적었다가 공분을 샀다.

이 모든 일들은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 놓기에 충분했다. 영화 <생일>에서도 순남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인해 마음이 부서질 대로 부서졌다. 연대의 손길도 거부하고, 다른 유가족과도 어울리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실제 유가족이 연대를 위해 자신의 주위에 모여든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즉, 유가족과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그어진 셈이다. 세월호 참사로 공동체가 힘들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실로 다행인 건 세월호 유가족이 먼저 위로를 건넸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자신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고 적었다.

파머의 지적대로 세월호 유가족은 자신의 깨지고 상한 마음을 사회 변화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세월호 5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을 위해 역량을 모으고 유가족과 연대해야 한다. 동시에 유가족의 다치고 상한 마음을 세심히 보듬을 방법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 영화 <생일>은 이런 고민에 답을 주는 텍스트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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