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원로 스님의 단식, 개신교는 어떤가?

종단 개혁 목소리 일깨운 설조 스님 단식...일그러진 동업자 의식 반성해야

seljung

(Photo : ⓒYTN )
▲학력위조와 은처자 의혹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설정 총무원장이 퇴진할 전망이다.

은처자(숨겨둔 처자식)·학력위조 의혹 등으로 자질시비에 휩싸였던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이 퇴진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이 "16일 개최하는 임시중앙종회 이전에 용퇴하시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우선 '용퇴'라는 말부터 바로잡아야겠다. 용퇴는 말 뜻 그대로 용감하게 물러나겠다는 의미다. 용감하게 물러나다니, 무언가 괴리감이 든다. 출가해 승복을 입은 처지라도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종단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딘가 남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더구나 숨겨둔 처자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한 불교종단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라갔다고? 이건 세상의 이치와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럽다. 조계종이 유력한 위치에 있는, 이른 바 권승들의 비리로 얼룩져 있다지만 개신교라고 해서 사정이 낫지 않다. 누가 더하고 덜한지 비교하는 건 무의미 하다. 똥 묻은 개나 진흙탕에 빠진 개나 더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이토록 타락한 게 참으로 어이없을 뿐이다. 교회든 사찰이든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내가 불교에 부러움을 느끼는 건 '결과'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단 의혹의 중심에선 설정 총무원장은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종단의 원로인 설조 스님은 조계종 개혁을 주장하며 41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 팔순을 넘긴 설조 스님의 단식이 종단 내 뜻있는 스님들과 불자들을 일깨운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불교신문>을 통해 설조 스님의 단식을 폄하하는가 하면, 불자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일주문 앞에 연꽃화단을 설치하는 등 설정 총무원장 측의 대응은 참으로 치졸했다. 그럼에도 원로 스님의 단식이 지핀 개혁 목소리는 막지 못했다.

후속조치도 예정돼 있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 모임'은 오는 23일 승려대회를 열어 중앙종회의원들과 본사주지들의 자진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할 방침임을 밝혔다. 또 권승들이 종단을 농락하는 사태를 막고자 종단개혁기구를 출범시키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되돌아본다. 지금 한국 개신교 교회는 크기를 막론하고 비리로 얼룩져 있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비리백화점'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교회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비리가 불거져도 원로 목회자들이나 교계 유력 인사들이 목숨을 내놓고 단식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원로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더 많다. 때론 '동업자 의식'으로 비리 목회자를 감싸는 경우도 종종 불거진다. 최근 명성교회 강단에 올라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그래 왜, 우리 세습이야. 뭐 어쩌라고"라 외친 고세진 목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끼리끼리 정신은 총회 정치판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끔씩 금식 기도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한국 교회의 개혁 보다는 '자기' 교회의 부흥을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 이런 실정이니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언제쯤 원로 목사가 한국 교회의 갱신을 촉구하며 단식 기도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될까? 아마 원로 목사의 단식 기도 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이뤄지지 않을까?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