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어둠 후에 빛이 오며

2018년 4월 1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막 16:9-11

[예수께서 이레의 첫날 새벽에 살아나신 뒤에,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이다.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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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 가운데 넘치시기를 빕니다. 길고 긴 사순절이 지나고 우리는 부활의 언덕에 올랐습니다. 한껏 기뻐하고 싶습니다. 누더기처럼 무겁게 우리를 짓눌렀던 우울과 무거움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가볍게 도약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인생의 가장 가혹한 시간을 지낸 교우들이 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시간에,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온 이별은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예수의 무덤가에 앉아 흘렸던 마리아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레의 첫날 새벽에 맨 처음 무덤가로 달려간 것이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입니다. 한동안 교회 전통은 막달라 마리아를 부정한 여인으로 그렸습니다. 주의깊게 살피지 않은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교회 권위가 유포했던 거짓 뉴스입니다. 정경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서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는 마리아를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의 마음을 깊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과 영적인 예민함을 보인 그에게 붙인 딱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 가라앉음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막달라 마리아>의 첫 장면은 한 여인이 물속으로 한없이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라앉음', 바로 그것이 스승을 잃은 제자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들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의 침잠, 도저히 떠오를 것 같지 않은 아득함 말입니다. 성 금요일 오후부터 안식 후 첫날 새벽이 밝아오기까지 그들은 절망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가슴은 돌처럼 굳어졌고, 환하게 빛났던 꿈은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몸을 먼저 일으키는 것은 늘 여성들입니다. 몇 해 전 아르메니아에 갔을 때 보았던 조형물이 기억납니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엄마'라는 제목의 그 조각은 터키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추모하는 '학살 기념관' 뜰에 서 있었습니다. 맨발의 엄마는 공포에 질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심연처럼 자신을 잡아당기는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갑니다. 그도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기어코 돌보고 살려내야 할 생명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예수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그 자리에 왔습니다.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그들의 마음은 무거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덤을 막았던 돌덩이가 이미 치워졌음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흰옷 입은 천사를 통해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인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뛰쳐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습니다. 부활은 그만큼 당혹스러운 사건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있던 것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 낯선 현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존경과 사랑과 염려의 마음이 더 컸기에 마리아는 그곳을 차마 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오셨고, 말을 건넸고, 소명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마리아는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때도 제자들은 마리아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을 현실로 인지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솟아오름

영화 <막달라 마리아>의 마지막 장면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이들이 하나둘 예수님의 생명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에 맨 앞에서 보여주었던 물속 장면을 다시 보여줍니다. 한 여인이 물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지만 어느 순간 마치 부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가라앉음에서 솟아오름으로의 변화, 바로 그 사이에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역사의 부활을 경험합니다. 죽은 것 같았던 가지에 새순이 돋듯 생명은 그렇게 되살아납니다.

미국의 플로리다주 더글러스 고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은 잠들어 있던 시민 의식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글러스 고등학교 생존자들이 벌인 '네버 어게인' 운동에 응답하여 미국 도처에서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The March for Our Lives)이 조직되었습니다. 워싱턴 집회에는 무려 80만 명 이상이 모여 총기 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워싱턴 집회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에마 곤잘레스의 연설이었습니다. 에마는 "6분 20초, 그 시간에 내 친구 17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더글러스 공동체 모두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 후 희생자 1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습니다. 그리고 6분 20초 동안 침묵했습니다. 공적 자리에서는 정말 긴 시간이지만, 그 침묵의 시간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하나로 묶는 시간이었습니다. 침묵을 마친 후 에마는 "누군가에게 맡기기 전에 생명을 위해 투쟁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그 희생에 대한 치열한 기억투쟁이 잠들어 있던 사람들의 양심과 생명 감수성을 깨웠습니다.

전쟁의 나팔소리가 이명증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이 땅에도 평화의 기운이 움트고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있던 해골들이 하나님의 숨과 만나 하늘 군대를 이루었던 것처럼, 동족들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이 땅에도 생명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수치와 모멸감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모욕당한 여성들의 소리가 천둥소리가 되어 울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바람을 잘 타면서 생명과 평화의 씨앗이 잘 발아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몸이 되라 이르십니다.

* 예수를 되찾자

미국의 기독교 평화잡지인 'Sojourners'의 발행인인 Jim Wallis가 지난 3월 29일에 쓴 칼럼 제목은 "트럼프 복음주의자들로부터 예수를 되찾자"(Reclaiming Jesus from the Trump Evangelicals)입니다. 트럼프 복음주의자들은 보수적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인종주의에 기대 세상을 바라봅니다. '미국 우선' 정책의 절대적 지지자들입니다. 월리스는 예수가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볼모로 잡힌 예수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다 요약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내용은 우리도 참고할 만합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누구도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분입니다. 인종주의적 편협함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잔혹한 부정입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폭력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가르치는 분입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삶은 물론이고 공적인 삶 속에서도 진리를 확고히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예수님을 볼모로 잡고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 서서 천사처럼 말해야 합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과 아픔의 땅, 어둠이 지극한 땅이야말로 주님을 만나뵐 자리임을 잊지 마십시오. 죽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생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절망은 희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그런 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궁극적인 희망 위에 굳게 서서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이지수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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