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홍정수 칼럼] 싸구려 신비

목회 이야기③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 하나는, 이 세상과 내가 그 유전자에서부터 궁합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서 살 때는 나도 준귀족이었고, 그래서는 아니지만, 백화점에 가서 물건 사기를 좋아했다. 같은 물건이라도 남대문, 청계천에 가서 사면, 아주 싼 값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많이 깍아서 물건 하나를 사왔다 할지라도,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친구들은 같은 물건을 나보다 훨씬 더 싸게 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적응 잘 못하는 나는, 죽어라 백화점 행이었다. 정찰제! 선택은 있으되, 흥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의 매력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줄곧 기독교의 핵심이 뭔가를 두고 씨름하다 이제 그 씨름이 거의 막판에 접어들었는데,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또한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세계 석학들에게서 신학을 배웠지만, 현실, 삶의 세계 속에 있는 신앙인들의 심리 기본에 대하여는 배운 게 없다니! 30 여년을 교단에서 혹은 강단에서 기독교 이야기를 남들에게 해 댄 나, 나는 또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나도 충분히 잘 모르면서, 남들에게 무슨 귀한 할 말 있는 양,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가르쳐 온 나 자신, 참 부끄럽다. 그래서 다시금 서글프다. 나를 용납하기가 힘들어서다. 

요즘 나는 신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아주 새롭고 귀한 종교 체험 혹은 목회를 경험하고 있다. 그들은 소위 “신흥종교”에 한때 몸담고 있던 친구들이다. 한국, 일본, 미국 등지에 살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을 “저 멀리, 강 건너 있는” 형제들로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믿는 데는 나와 동일하지만, 그들이 믿고 따르는 하늘 계시자, 메시야 혹은 재림(할)주는 나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병무 선생님이 옳았다는 생각을 재확인하게 된다.

내가 도미하기 전, 안 선생님과 1년 정도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료 조사도 하면서 독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안 선생님은 다작 형이라 많은 글들을 남기셨지만, 그 많은 글들 속에 담지 않은 뒷얘기들을 더러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나의 신학하기에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 중 한 가지가 이런 것이다.

통일교가 좀 자신감이 들었을 무렵, 기성 신학자들부터 “감정”을 받고 싶었는지, 조직신학자 서남동 님, 신약학자 안병무 님, 두 분께 글을 청탁해 왔다는 것이다. 청탁을 받고, 서남동 님은 주류 기독교가 잃어버린 종말론, 역사 의식이 통일교 신학 속에 역력히 남아 있다는 적극적 평가를 내렸으나, 안 선생님은 “나는 못해. 통일교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신약성서 속의 예수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거든 ...” 하셨다. 나는 당시 신흥종교, 특히 통일교에 대하여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터라,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그 대답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신흥종교들과 신약성서 속의 예수 운동, 공통점은 무엇인가? 개인 숭배, 탈(기성)도덕, 메시야 왕국의 임박한 도래 기대, 과거의 성서에 대한 대담한 임의적 해석, 따라서 기득권(정부, 기성 종교 당국)은 이들을 이단, 파문, 처형하고자 한다.
 
이에 비하여, 오늘날의 기성 기독교회들은, 대체로, 메시야 운동적 성격, 반세상적 자세, 새 가치 세상의 임박한 도래 대망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세상적 가치관에 완전 동화되어, 교회는 자기 정체성을 크게 바꾸어 버렸다 할 수 있다.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직적 풍요, 대형화, 신분 상승, 그 이외 소중한 가치를 알고, 실천하고, 가르치고 있는 교회들, (없는 것은 아니로되) 몇이나 되는가 말이다. 1970년 , 곧 “잘 살아보자”는 새 마을 구호 등장 그 이후, 예수 살아내기는 죽었고, 교회들은 둔갑한 새 마을 운동 본부들이 되고 말았다: 자조, 근면, 협동, 하면 당첨(성공)! 당신네 교회는 이것 외에 더 무엇을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는가?

이에 비하여, 많은 신흥종교인들의 가슴 속에서는, “이 세상”에 대한 단념, 딴 세상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 동경에 대한 목숨건 충성의 사례들을 종종 엿본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 기성 교회의 사람들이 보이게, 이들이 종종 “탈법 집단”으로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종말론적 집단, 메시야 운동 집단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기득권으로부터의 단죄 위협을 피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내게 남겨진 문제, 신학 공부를 하산하려는 나를 다시금 불러, 책상 앞에 다가가게 만드는 숙제 하나가 생겼다: 광범위한 “개그 시대,” 값싼 웃음, 우선은 웃고 보자 시대, 싸구려 시대. 우리의 종교, 신앙마저 그 길을 가야 하는가? “말되는 메시지” 찾자는 구호 아래, 일생 신학을 공부해 온 나, 내 책상 앞에 있는 풀어야 할 숙제는 이것이다: 말되는 건 철학이지, 논리지, 신비가 아니야! 말되면 그걸 누가 믿어. 불합리, 모순이기에 내가 모르는 뭔가 큰 뜻, 신비가 있거니 하고 나의 거대한 것(생각, 시간,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성서 이야기들이 앞뒤 잘 맞는다면 이미 연구는 끝났을 것이다. 기독교도 죽었을 거고. 말되는 이야기 찾으려는 수고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속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마치 울어야 할 사람이 개그 쇼 앞에서 잠시 웃듯이, 절망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패배한 탐욕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환상 열차를 즐기고 싶은 것은 아닐까? 

대형 기성 교회들, 신흥 기독교 종파들, 그들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싸구려 신비”요, 너무 뻔한 “거짓말들.” 교리, 성경 혹은 계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마치 개그처럼, 내 놓는다는 것이다. 6천 년 전, 시간 속의 창조, 그 직후 시간 속의 첫 인간 타락, 그 형벌로 주어진 인류의 죽음, (사고 4천년이나 지난  뒤늦은) 2천년 전 잔 한 유대 청년 예수의 십자가 처형 때 흐른 맑은 피에 의한 인류의 속죄, 이 “진리”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다른 축복들은 보너스!”

이 모든 건, 내가 읽고 배운 신학에 의하면, 예수 운동의 핵심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대적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세상적 가치(풍요, 상승, 성공)에 철저히 길들여진 허다한 대중들은, 오늘도, 이게 말이 되지 않기에, 엉터리이기 때문에, 실천해야 되는 부담과 책임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싸구려 신비”) 앞다투어 구매하고 있다. 잘 팔리는 상품이다. 나도? 아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싸구려”로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다. 개그를 즐기지 못하듯, 환상 열차에 내 몸을 올려놓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이성을 압살하지 않는 정직하고도 귀중한 신비, 그것을 알기에, 세상적 가치의 유혹 앞에 무릎 꿇지 않을 도도한 예수쟁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LA 한아름 교회 홍정수 목사)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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