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리뷰] 택시운전사의 ‘눈뜸’ 그린 <택시운전사>

1980년 5월 광주를 알린 주인공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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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쇼박스 제공 )
▲1980년 5월 외신기자 유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가 인기리에 상영중이다. 그런데 영화의 시선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씩은 영화가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개인택시 운전사인 김만섭(송강호)은 기사식당에서 동료와 밥을 먹다 우연히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다녀오면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다. 그래서 그 길로 곧장 손님을 태우러 달려간다. 그런데 그 광주는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다. 광주에서 만난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도 이곳 사람들에게 맡기라며 그를 격려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울림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광주를 향해 핸들을 튼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만섭이 비겁했을까? 또 내가 만약 김만섭처럼 1980년 광주에 내던져졌다면 죽기를 각오했으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광주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김만섭은 정치에 무관심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겐 5년간 사우디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한 경력이 유일한 인생경력이다. 그는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대한민국이 지상낙원인줄 안다. 그래서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향해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못마땅해 한다. 그런 그가 광주의 상황을 목격하고 괴로워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한계적'일 수 없는 외부인의 시선

김만섭의 시선에 집중한 걸 두고 혹평이 없지 않다. 황진미 평론가는 "외부인의 시선이 지극히 한계적"이라고 지적했다. 내 생각은 정반대다. 만약 김만섭이 광주의 진실을 목격하지 않았으면 그의 인생 경로는 어떤 길로 접어들었을까?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지 않았을까?

사실 탄핵정국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이들은 또 다른 얼굴을 한 김만섭 아니었던가? 만약 이들이 박정희 유신정권, 그리고 전두환을 주축으로한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을 제대로 직시했다면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었을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외부인' 김만섭의 눈뜸은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지점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특히 그가 광주로 되돌아가는 장면 연기는 압권이었다.

김만섭은 손님인 힌츠페터를 두고 그는 홀로 광주를 빠져 나온다. 그는 차량정비차 들른 순천의 한 식당에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광주에서 글쎄 사람이 총에 맞아 죽어 나갔데요."

"서울에서 폭도들이 몰려갔다던데? 뉴스에 그렇게 나오더라고."

그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애써 무시한다. 그리곤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흥얼거리면서 서울로 향하려 한다. 그러다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기진맥진한 힌츠페터를 격려하고,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실어나른다. 이 지점에서 펼쳐지는 송강호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한껏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광주의 진실은 연대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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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쇼박스 )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인 기자 유르겐 힌츠페터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잠깐 역사로 눈을 돌려보자. 신군부의 수장이었던 전두환씨는 보안사령관을 지낸 탓에 정보를 다루는데 익숙했다. 그래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외부로 새나가는 걸 엄격히 통제했다. 신군부의 이 같은 언론통제는 내·외신을 가리지 않았다.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인 유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는 이 같은 통제를 뚫고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힌츠페터의 활약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의 역할을 재연배우 쯤으로 축소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비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힌츠페터의 기자정신은 분명 기리고 또 기려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서울 택시기사들이 정정불안을 이유로 한사코 광주행을 거부했다면? 택시운전사 김사복이 힌츠페터를 광주로 데려가 주면서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그리고 김사복이 힌츠페터를 도운데 대한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김사복의 도움이 없었고, 진실을 세상에 알려달라는 광주 시민들의 간절함이 없었다면 힌츠페터는 광주의 진실에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힌츠페터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힌츠페터의 취재는 평범한 소시민의 보이지 않는 지원과 협력에 힘입은 소중한 열매였다는 말이다. 이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역사라는 큰 물줄기에서 작은 물방울에 불과했던 평범한 이웃을 발굴해서 알린 데 의미가 있다.

불행하게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남침이라고 날조하는 자들이 창궐했다. 심지어 5.18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전두환씨마저 회고록을 내고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치유하기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변명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진실을 날조하는 무리들이 고개를 든 걸 단지 정치권력의 이동으로 인해 불거진 부작용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2007년 이명박 집권 이후 보수 진영은 공공연히 장기집권을 꿈꿨다. 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바로 5.18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광주 5.18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권력유지와 확장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보수 집권기간 동안 보수 진영이 집요하고도 악랄하게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희생자를 욕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들의 장기집권 플랜에 제동을 건 주인공은 김만섭 같은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이들이 진실을 직시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면 사악한 권력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이 시대의 어둠에 진실을 밝혀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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