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고통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A Walk Thru the Life of Joseph: The Power of Forgiveness 발췌

jesus
(Photo : ⓒpixabay)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속에 방치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최악의 장애를 이용해서 우리와 그분의 나라 둘 다를 위해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정체성이란 복잡한 물건이다. 우리의 자기인식은 여러 요인들 가운데 우리 가족이 누구이며, 우리의 출신이 어디이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역기능적 가정에서 성장했는데 자신의 문화로부터 배제당하여 극한 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에 세 겹의 타격을 받는다. 그런 트라우마는 지속적인 영향을 끼쳐서 미래세대에도 파장을 미친다.

요셉은 "상기의 모든 항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학대당한 어린 시절, 사회적 불평등, 절망적인 상황 등으로 인해 무명의 비루한 삶을 살게 되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명의식이 높았고, 몇 번 명백히 실패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그의 순종과 충성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만일 누군가가 원한 때문에 사그라질 권리가 있다면, 요셉이 바로 그 당사자일 것이다. 그의 형제 대부분이 그가 죽기를 원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광을 주셨다는 꿈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는 더 했다. 그들은 그를 사슬에 묶어 먼 나라로 보내버리자고 합의하고 그를 대상들에게 팔았다. 대상들은 그를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그와 대면할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무슨 일이든 한 것이다. 그들의 악의에 찬 태도로 인해서 그는 여러 해를 극도로 비루한 이방인으로서 고통스럽게 지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평생 품고 다닌다. 그들은 과거에 배신을 당했거나 무시를 당했는데, 그것을 한 번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혹은 단순한 정의심 때문에 자신을 소모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말할는지는 몰라도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런 상황 속에 내버려두셨다는 듯이 가해자들을 탓한다. 그들은 "표범은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다"(렘13:23)라는 경구를 굳건히 믿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비심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상처로부터 치유 받을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사실상 그 상처를 심화시킨다.

요셉의 인생도 이렇게 전개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후반부를 원한 속에서 보내거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식의 우월감을 갖고 보낼 수도 있었다. 그의 형제들이 그를 배반하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식량을 찾아 애굽으로 왔을 때 그는 복수를 할 수 있었고 그의 형제들이 교화되지 않을 종자라고 단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은혜와 인내의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이다. 만일 요셉이 곁길로 가서 자기 형제들에게 복수를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원하셨다고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그것은 그 그림에 맞지 않다.

그렇다. 요셉은 복수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을 몇 번 시험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옳은 판단을 하도록 도왔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바뀔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영광은 비극적이며 파괴적인 사건의 토양에서 자라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가슴 깊숙이 새겨져야 할 진리이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요셉의 경우처럼 매우 큰 트라우마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실망과 지체는 우리 일상의 일부이다. 요셉은 고통에 대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봄직도 했다: 아버지와 하나님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자가 어떻게 노예가 되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는가? 위대해질 운명은 왜 이처럼 허송세월처럼 보이는 긴 시간을 거쳐야 하는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가? 이야기의 중반에서는 이런 점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도 똑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 천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을 왕 같은 제사장이 악한 자들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 있는가? 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그분의 계획을 실행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왜 그분은 우리가 시련 속에 머물도록 허락하시는가? 우리는 산도 움직일 믿음과 예수의 이름으로 올리는 모든 기도에 대해 응답받을 약속을 갖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겪고, 종종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손에 피해를 당한다. 게다가 그 악한 자들이 번성하고 의인들은 그 번영의 길에서 비껴져 나간 것처럼 보일 때는 얼마나 많은가? 온유한 자는 많은 기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구도에 무언가 잘못 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아니다. 그분은 최악의 장애를 이용해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우리와 그분의 나라 둘 다를 위해서. 그분은 인간의 엉클어진 문제들을 그분의 최고의 방정식에 대입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한 암시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가끔 그 암시들은 요셉에게서도 그러했지만 파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암시들이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는 우리가 회상할 때뿐이긴 하지만, 그 멋진 계획은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요셉에게도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발언을 통해 그것을 밝혔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창50:20).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사실이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 인생 가운데서 일하시고 그분의 일은 언제나 선하시다.

요셉의 사례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요셉의 사례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큰 결실을 맺은 삶은 거의 없었다. 그의 삶은 진실, 명예, 신실, 충성, 겸손의 모범이었다. 그런 삶의 결실을 보라: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존하셨다. 그 민족은 그분의 아들을 보내 인류를 반역의 죄로부터 구원하게 할 통로였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사나운 인생살이에서 시작된 일이 민족의 선택, 기적으로 가득 찬 역사, 왕 같은 제사장직, 영원한 기업,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는 은혜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요셉의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와 같은 축복은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겪을 고통을 언제나 치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josephs-family-fiasco-trusting-god-in-a-painful-process-11625644.html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