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과 예술> (5)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

김문선 목사 (좋은나무교회, 생명의 망 잇기 사무국장)

테메레르
(Photo : ⓒ London National Gallery)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The Fighting Temeraire,” 1838)

진도 앞바다에서 끝 모를 항해를 시작한 세월호.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상처, 못다 핀 어린 생명들의 이름과 삶을 고이 담은 채 깊이 잠들어버린 세월호. 그렇게 영원과 순간을 오가며 쉼 없이 달린 세월호. 그 세월호가 최후의 항해를 마치고 육지로 귀환했다. 세월호는 지난날의 여정에 지쳐 보였다. 몸을 곧추세울 힘도 없는 듯 옆으로 누워 있었다. 여기저기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세월호는 그렇게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바라보며 떠오른 그림이 있다.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옮겨지는 전함 한 척이 캔버스 위에 있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질녘 노을이 지난날의 수고를 따뜻하게 위로해준다. 잔잔한 바다와 최후의 항해를 인도하는 예인선에 몸을 맡긴 채 퇴역하는 한 척의 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월호 최후의 항해가 오버랩된다.

세월호 참사 앞에 신(神)은 침묵했다. 입이 닳도록 고백을 듣던 구원과 자비의 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신의 부재 앞에 사람들은 물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고난 받는 이들의 본능적 절규인 신에 대한 원망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며 믿음과 기도의 부족으로 일반화시켰다. 그곳에 함께 아파하는 자비의 신앙은 없었다. 공감의 마음을 샘솟게 하는 성령의 역사도 없었다. 그저, 나의 고통이 아니기에 안도하며 감사하는 자기중심적 신앙과 고난 받는 자들을 배제시킨 나만의 우상만 있었을 뿐이다. 그들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연약한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폭군의 신이었다.

과연, 세월호는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졌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 다른 말로 '생명'이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은 살리는 일이다. 해가 지듯 사라짐의 때가 되어 죽는 일 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살리기 원하신다. 이렇게 볼 때, 세월호 참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기독교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모든 만물의 주관자였다. 동시에 인간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했다. 그렇게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삶을 창조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일정 부분 창조의 자리를 내어준 하나님은 때론 무기력했다. 자신의 능력을 제한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기 위해 탐욕과 이기심에 도취된 인간들을 흔들어 깨웠다. 설득과 권면으로 돌아오라 외치고 있었다.

세월호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과 사탄의 구조가 만들어낸 재난이자, 참사였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싸늘한 생명으로 돌아온 이들의 주검을 하나, 둘 끌어올리셨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영혼과 가족들을 끌어안고 함께 우셨다. 그들의 슬픔과 고난 속에 함께 하셨으며 희생자들의 슬픔과 한(恨)을 허투루 여기지 않으셨다.

지난 3년간 세월호는 쉬지 않고 항해했다. 세상의 등대가 되어 어둠을 밝혔다. 썩을 때로 썩어진 정치, 경제, 종교의 현실을 고발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작은 생명들을 하찮게 여기는 정치세력, 끝없이 소유하려는 타락한 경제세력, 생명과 인간됨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맘몬을 숭배하는 거짓 종교의 민낯을 들추어냈다. 그렇게 세월호는 자신의 아픈 소명을 다하고 다시 돌아왔다. 이젠 부디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영면과 안식을 위해 남은 자들이 힘써야 할 때다. 그들이 바다에서 보내온 편지를 기억하며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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