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과 예술(2) "고난 중에 신은 어디 있는가?"

김문선 목사(생명의 망 잇기 사무국장, 좋은나무교회)

광야의 유혹
(Photo : ⓒ Brooklyn Museum)
▲자메 티소트(James Tissot, 1836~1902)의 작품, “광야의 유혹”

'고난 중에 신은 어디 있는가?' 신의 일식(日蝕)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고통은 죄와 심판의 결과이니 회개하고 더 많이 기도하라는 종교인들의 가르침. 공감 능력의 부재와 생명 없는 그들의 가르침이 공허하다. 무능력한 신에 대해 원망하고 식상하며 폭력적인 종교 언어에 지쳐갈 즈음, 이 그림을 만났다. 프랑스의 화가 자메 티소트(James Tissot, 1836~1902)의 작품, "광야의 유혹"이다.

헐벗고 굶주린 이가 예수를 찾아왔다. 두 손에 돌을 들고 무릎을 꿇은 채 예수에게 무언가 요청하고 있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해달라"(마4:3)는 간청이다. 예수는 그의 굶주림에 관심이나 있는 것일까? 애써 고개를 돌리고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꿈틀거리는 자비의 두 손을 부둥켜안은 채 외면하고 있다. 살려달라는 간청과 거절 속에 긴 정적이 흐른다. 둘 사이의 갈등에서 벗어나고픈 나의 시선이 굶주린 자의 뒤편을 향한다. 가난과 소외로 신음하는 이름 없는 생명들의 세상이 보인다.

그림이 던지는 화두는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도전과 유혹이기도 하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세상은 우리에게 신앙을 증명하라 유혹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하루속히 가난과 전쟁, 억압과 폭력의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역사를 보여 달라고 소리친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내 속에서도 의문이 찾아온다.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면, 빨리 이 돌들을 떡이 되게 해서 그들을 먹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예수는 이와 같은 논리와 청함에 침묵할 뿐이다. 왜 일까? 존 디어 신부(John Dear)는 "예수의 평화 영성"(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성공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에 신실하도록 부름 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천천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평화롭게 일하신다. 제국처럼 비인간적으로 폭력적으로 강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강력한 자들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비폭력적 능력의 도구로만 사용되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는 문제에 대해 실속 있게 대처하는 인간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굶주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간 예수처럼 실속 없는 사람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p.30)

믿음이란 무엇일까? 증명이 아니라 행동 아닐까? 쟁취와 완전이 아닌 흔들림과 여정 아닐까? 익숙한 절망에서 벗어나 불편한 희망을 붙드는 인내 아닐까? 예수는 지금도 당신의 사람들과 함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먹인다. 마법과 폭력, 제국의 방식이 아닌 신앙의 방식으로. 더디 가고 늦게 갈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불의에 저항한다. 자본과 속도, 효율과 경쟁의 방식을 포기하고 바보처럼 묵묵히 생명들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고 있다. 사탄의 권력과 구조의 악으로부터 희생당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생명의 세상은 거저 오지 않는다. 마법처럼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뚜벅뚜벅 인간의 길을 걷는 이들과 함께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신은 우리의 고난과 함께 살아가며 희망의 세상을 일궈내고 있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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