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8월 2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왜 필요한 일은 하나 뿐인가?
 

창세기 25장 31~34절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에서가 말하였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하였다. 야곱이 빵과 팥죽 얼마를 에서에게 주니,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나갔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

그들이 길을 가는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십 여년전 아시아 교회협의회 관계로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겪은 작은 경험 하나가 오랫동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고 팔월이 될 때마다 연상되곤 합니다. 인도 남부 방갈로레라는 도시의 시외곽에 있는 어느 마을을 방문했던 때 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때나 지금이나 인도 민중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고 있고, 의식주 생활이 검소함을 넘어 궁핍, 절핍상태여서 아이들은 맨발이 대부분이고 서민들의 가옥주택 이라야 한국의 여름 참외밭 오두막 같은 집이 그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인도서민들 대부분은 불편을 느끼지 않은 듯 자족하는 생활이었고 맘들은 이국에서 온 낯선 사람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아이들의 눈망울은 천진난만 그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분주하거나 염려하거나 경쟁하는 살벌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염려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살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고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정해진 일정이 거의 끝날 무렵 아슈람을 방문했는데, 어느 사제의 집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집무실이래야 두평남짓한 작은 방이었지만 검소함이 방안 분위기로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벽면에 항상 내 맘에서 지워지지 않는 글귀 한마디가 붙여있었습니다.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The simplicity is the greatest)"이라는 글귀였습니다.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가장 절제된 음과 선과 율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긴 하지만 종교적 성스러움이란 것도 단순성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주본문 누가복음 10장에서 저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만큼 많은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하는 성구도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중세 수도원운동이 발달하는 동안 마르다는 세상일에 몰두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마리아는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영적 인간의 전형으로 잘못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하나님나라 활동여행중 어느 마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인이 존경하는 랍비예수를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적지 않은 귀빈들이 집안에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손발 씻는물 떠다드리랴, 음식 준비하랴, 상차림 준비하랴 손발이 바빴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얄미울 정도로 언니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곁에 앉아서 예수님 말씀을 듣는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가 보다 못해 선생님에게 다가와 "주님, 제 좀 언니를 도와 주라고 야단 좀 쳐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묘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대답은 결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듯이 마르다더러 쓸데 없는 세상일로 너무 많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나라 말씀 듣는 일에만 몰두하라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옛날 성경번역본은 그런 오해를 일으키기 쉽게 번역되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번역본을 잘못 이해하면 반찬거리 장만에 너무 걱정 말라, 많은 반찬이 없어도 혹 한 두 가지 반찬만 있어도 좋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택해 읽은 새 표준 번역본은 좀 더 분명하게 예수님의 말씀 의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충고한 것은 이런 요지였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평소 존경했던 랍비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 정성을 다하려는 여인으로서의 맘이나, 많은 음식을 고루 장만하려는 주부로서의 관심을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세상의 썩어질 음식장만에 염려하지 말고, 영원한 말씀을 듣는 영적일에만 관심가지라는 수도원적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더욱이 아닙니다.

문제는 마르다의 마음이 평소에 많은 일로 염려하는 타입이며, 무슨 일을 당하면 차분하지 않고 들떠서 집중력과 차분함을 잃고 서데는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마르다에게 단순성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시려는 예수님의 타이름이었습니다. 단순성이란 단일성과도 다르고, 더욱이 다양성을 이해 못하는 획일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삶에 있어서 단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일깨우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르다처럼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있는" 상태입니다. 현대문명의 속성 자체가 우리들로 하여금 단순성의 위대성을 체험하지 못하도록 몰아갑니다. 복잡다단한 관계구조로 얽혀있는 현대적 사회생활은 하루 걸러 큰일들이 터져나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매스컴을 비롯한 각종 현대문명이기들은 우리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들뜨게 하며, 끊임없는 욕망충동을 재생산해 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 이라는 경구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성이나 경박함이나, 사려깊지못함과 전혀 다른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주위에 마음은 다시 없이 좋고 악의가 없는 사람인데 행동과 판단이 다소 경박하고 속단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은 너무 단순한 사람"이라고 곧잘 말합니다. 그런 경박함과 경솔함, 사리분별이 신중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람을 우리는 야곱의 형 에서에게서 봅니다. 야곱의 형이 되는 에서는 사실 대범한 사람이었습니다. 20여년전 자기의 장자권을 속이고 빼앗은 후, 자기의 받을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챈 동생 야곱이 20년만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에서는 그 옛날의 분함은 기억하지도 않고 동생 야곱을 맞이하러 수백리길을 달려와 그 목을 껴안고 혈육의 정을 표하는 대범한 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대범한 성격과 활달하고 남성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 설화의 끝에 이런 평가를 붙이고 있습니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배고픔과 갈증 때문에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몇십년뒤에나 그 필요성이 요청될지도 모르는 장자직분 따위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은 대범이 아니라 경솔함이요 단순성이 아니라 너무나 현실성에 사로잡힌 인간의 전형적 행동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마르다 같은 성격자로서 태어나거나 마리아 같은 성격자로 태어나거나 그렇게 결정적인 성격으로 태어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이듯이, 우리 맘에 모두가 마르다와 같은 경향성과 마리아와 같은 경향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 처럼 빼앗기지 않을 좋은 몫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맘안에는 두 가지 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고 그분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선을 행하며, 영생을 구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법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내 멋대로 행하려는 맘과 지극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으로 전락해버리려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면하심과 비취심을 받아 우리가 받은 하늘의 부르심을 완성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찬에 참여합니다. 성찬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은혜로 부르시고 초청하신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를 성찬의 식탁으로 초청하신 것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염려근심 걱정과 들떠있는 마르다의 맘을 버리고 마리아처럼 단순한 것, 참으로 중요한 한가지만을 택하여 인생을 좀더 자유롭고, 가볍고, 단순하고, 사랑하면서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IMF시대가 되어도 이러한 하나님의 권면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잠깐의 나그네 생활이며 보다 영원한 삶을 위한 사랑의 훈련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운명은 본래 지음 받기를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앙증맞게 작은 이름 없는 들풀일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단순성을 잃지 않고 작은 꽃과 꽃씨를 맺고 시들어진다면, 잎만 무성한 체 아무 열매도 꽃도 맺거나 피지 못하고 왕궁정원사의 정지가위에 무참히 잘리우다가 살아지는 궁정 안뜰에 심겨진 관상수 보다 더욱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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