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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 박형규 목사님 영전에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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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2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는 유가족과 교계, 정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 박형규 목사의 장례예배가 엄수됐다.

지난 22일(월)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고 박형규 목사 장례예배에서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가 낭독한 조사.

유 원로목사는 "고인의 굽히지 않았던 신앙의 투쟁은 미래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지표가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아래는 조사 전문. 편집자 주]

고 박형규 목사님 영전에

존경하는 박 목사님, 견디기 힘들도록 무더운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주님의 나라로 훌쩍 떠나셨군요. 더위도 더위지만 그 더위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정치 때문에도 더 이상 머물러 계실 수가 없으셔서 훌훌 털고 일어나 모든 것 뒤로 하고 자유와 기쁨이 있는 나라로 떠나신 것이겠지요.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그 주일에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에 갈 때 "이 나이에 이민 갈 수도 없고 앞으로 5년을 어떻게 견디지?"라고 한탄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결국 그 5년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 나라로 이민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실 즈음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제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계,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 나라로 들어와 안식과 자유의 기쁨을 누리라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그곳에서 제일 먼저 사랑하는 어머님을 만나셨겠지요. 목사님이 재판정에 서실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우물쭈물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고 호통 치셨던 그 어머님께서 자랑스러운 삶을 마치고 오신 아드님을 영접하며 기뻐하셨겠습니다. 엄격하며 신앙이 투철하셨던 어머님께서 족보를 따른 이름과 별도로 아들의 이름을 거룩할 성, 길도 ‘聖道'라고 지으시면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약속하신 날 목사님의 앞길은 이미 예정되었고, 목사님은 그 예정대로 쉽고 편안한 길 대신에 험난하고 어려운 길인 의의 길 거룩한 길을 끝까지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투지로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랑스러운 마침표를 찍고 미련 없이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7,80년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목사님이 계셨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자랑이며,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한국교회는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지나온 날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참된 신앙인의 길이 무엇임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불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절대로 의인의 길에 선 사람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신념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신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있는 것처럼, 박 목사님의 굽히지 않았던 신앙의 투쟁은 미래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지표가 될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자랑스럽습니다.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길이 간직할 귀중한 보배이십니다. 한국교회가 길이 기억할 신앙투사의 표본이십니다. 목사님, 이제 계신 곳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싸워야 할 후배들을 위해 성령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새 힘을 얻어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릴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이르게 하여 주십시오.

목사님, 자유와 행복이 깃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의 기쁨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16년 8월 22일 안동교회 원로목사 유경재 드림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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