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부도덕한 재벌에 맞서 예언자적 소리 내라

기독교계, 삼성-이 회장 일가 행실 바로 잡는데 앞장서야

"삼성특검이 삼성그룹과 우리 사회가 새롭게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내다,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의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린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아래 사제단)이 2008년 내놓은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2007년 양심고백을 했다.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 관계에 뿌렸고 이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지시한 장본인이 바로 이 회장이라는 고발이었다. 김 변호사의 폭로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해 11월 국회에서는 '삼성 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고, 이에 근거해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팀(삼성특검)이 꾸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삼성특검은 비자금을 이 회장의 개인재산으로 봤고, 정-관계 로비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내렸다. 이러자 내부고발에 나섰던 김 변호사와 그를 도왔던 사제단이 실망감을 내비친 것이다.

새삼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끄집어 낸 이유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이 회장의 성매매 스캔들 때문이다. 이른바 ‘주요' 언론들은 애써 외면했지만 온라인, 특히 SNS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같은 추악한 스캔들은 이미 예고된 일이나 다름 없다.

2007년 김 변호사는 이 회장과 삼성그룹의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줬다. 그러나 삼성특검은 절호의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 버렸다. 더구나 민주정부라는 평가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현실은 시시한 약자와 시시한 강자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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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뉴스타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스캔들을 보도해 큰 파장을 몰고왔다.

김 변호사의 내부고발을 둘러싸고 뒷말이 없지는 않았다. 내부고발의 순수성을 의심하는가 하면, 심지어 ‘삼성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호사를 누리다가 척졌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약자와 악한 강자가 맞서는 구도로 이뤄져 있지 않다. 오히려 시시한 약자가 시시한 강자를 향해 돌팔매를 날리는 게 현실이고, 이때 공동체는 응당 약자를 지켜줘야 한다. 더구나 김 변호사의 고발은 그저앙심을 품고 폭로했다고 보기엔 너무나 심각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그룹에서 한 사람이 독점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설령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수가 대단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렇다. (중략) 그런데 삼성의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큰 까닭에 우연히 무능한 사람이 삼성을 이끌게 되면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런 위험을 계속 방치해야 하나."

재벌의 전횡을 막을 두 번째 기회, 놓쳐선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 회장의 성매매 스캔들은 또 다른 기회라고 본다. 이 회장을 매도하기는 쉽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선 안된다. 특히 기독교계는 더 큰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 회장 성매매 스캔들은 삼성그룹 비서실이 적극 가담했다. 또 이 회장이 젊은 여성들과 성에 탐닉하는 사이, 삼성에 몸담았던 노동자들은 하나 둘 씩 목숨을 잃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 공동체는 삼성그룹의 윤리의식을 적극 물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계는 이 일의 선봉에 서야 한다.

기자가 이토록 강한 어조로 주문하는 이유는 이렇다. 지난 2007년 김 변호사의 폭로를 도운 이들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당시 그 어느 누구도 김 변호사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사제단도 처음엔 삼성의 권력을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김 변호사의 모습에서 몸 누일 곳을 찾던 요셉을 떠올리고 선뜻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더구나 그 재벌이 삼성이라면 말이다. 개신교계가 막강한 재벌을 향해 돌팔매를 던지려는 한 약자를 보듬지 못했던 건 참으로 뼈아픈 일이다.

이제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성매매의 위법성을 따지는 일은 공권력의 몫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개신교계가 공권력이 또 다시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닌지 면밀하게 감시하는 동시에 삼성을 축으로 한 재벌그룹이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어주었으면 한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삼성과 이 회장 일가는 몇 년 후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추악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다. 개신교계가 2007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김 변호사와 함께 했던 것 처럼 삼성그룹의 행실을 바로 잡는데 예언자적 소명을 감당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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