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이경숙 교수, "아시아성서학은 광야의 경험처럼 희망을 모색해야"

아시아성서학대회 기조연설 "광야를 방랑하는 아시아 성서학"에서 제언

leekyungsuk
(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구약학 권위자 이경숙 명예교수(이화여대)

세계성서학대회가 7월3일(일)부터 7일(목)까지 연세대학교 신학관 및 백양누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회 하루 전인 7월2일(토)에는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아시아성서학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아시아의 현실적 상황을 기반으로 한 성서신학적 논의들이 전개됐는데, 이는 세계성서학대회가 개최국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서 이해를 기조로 한 것에 따랐다. 대회의 주제는 "가장자리 옮기기"(Moving Margins)이다.

대회의 기조연설은 이경숙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광야를 방랑하는 아시아 성서학"을 주제로 아시아 신학자들의 성서연구 방법과 그 방향성을 논하면서 "서구식 성서 해석에 짓눌렸던 상황에서 벗어나 아시아인의 경험에 비추어 아시아적 시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작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아시아 성서학이 서 있는 '광야'가 "괴롭고 힘든 여정"을 암시하지만 "언젠가는 약속된 땅으로 진입하는 희망을 잉태하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여정을 수행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적 성서학이란 서구 성서학이 서구의 우월주의를 전수하는 통로라는 각성 위에, 서구 성서학의 주조인 객관적인 역사-비평학을 거부하면서 아시아 전통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으려는 시도이다. 이는 텍스트보다 컨텍스트, 즉, 성서 해석의 상황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가 중첩된 아시아에서는 다양한 성서해석법들이 공존하면서도 인도의 달리트 신학, 일본의 부락구민 신학, Bamboo theology, Rice theology 등의 독특한 관점들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적 독해, "두 이야기의 합류," 아시아 고전 텍스트 원용 등의 세 가지 연구 경향이 형성됐다. 영적 독해는 아시아적 직관을 강조하며 성서를 분석하기보다는 성서를 10번이고 100번이고 계속 읽음으로써 성서가 펼쳐 보이는 깊은 신비의 세계에 이르려는 시도이다. "두 이야기의 합류"는 서남동 박사의 용어로서 아시아 민족이 각 민족이나 지역에서 유산으로 받은 민담, 전설, 시 등을 성서해석의 중요 자료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한(恨)과 관련된 전설이나 민담이 많이 활용됐다. 그리고 아시아 고전 텍스트를 원용하는 방법은 민중들의 민담이나 구전 전설들이 아니라 인도의 산스크리트나 베다 문서 등과 철학 수준의 중국 고전들을 성서 해석에 도입하는 시도이다. 이는 경전 비교연구와 유사하다.

이러한 경향에는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적 접근방식이 성서를 이해하는 관점으로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페미니즘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창세기 1장26절의 말씀을 근거로 인간을 개체적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이해하고, 성, 인종 등 외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유로 차별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탈식민주의는 탈서구적, 탈보편주의적, 탈절대적 해석을 지향하고, 해석학적 제국주의를 벗어나 그동안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교수에 따르면, 각각의 관점이 현장에 적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자기모순에 대해서는 경각해야 한다. 즉,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처럼, 식민지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탈식민지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설의 말미에 이 교수는 "성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늘 성서적 메시지를 생각하게 하고 또 그 실천을 위해 함께 고민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성서학"이라고 전제하고서 아시아 성서학 연구의 방향에 대해 네 가지 관점을 제안했다. 첫째, 성서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희망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들과 연대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 우리는 성서에서 우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성서학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아시아의 문화를 열등하게 여기거나 비하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을 균형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아시아 성서학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나라의 사정과 특성을 습득하고 배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어 이 교수는 "아시아성서학회에서는 어떤 우월주의도 생기지 않고 탈식민담론이 생겨나서 서로 서로 무지개가 펼쳐지듯이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기를 희망한다"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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