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5월 17일 설교

경동교회/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본래 자리로 돌아가면

 
미가서 6장 8-13절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들어라! 주께서 성읍을 부르신다.(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분께 순종하여라. 악한 자의 집에는, 속여서 모은 보물이 있다. 가짜 되를 쓴 그들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틀리는 저울과 추로 속인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느냐? 도성에 사는 부자들은 폭력배들이다. 백성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들의 혀는 형벌을 내린다. 너희가 망하는 것은 너희가 지은 죄 때문이다.

야고보서 1장 26-27절

누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혀를 제어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수필 중에 "본립이 도생(本立而 道生)" 이라는 제목의 수필 한편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골의 삼거리 주막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마다 한마디씩 집수리에 관한 소견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주막집 큰 방이 한 달째 통 불기운이 돌지 않고 냉방이 되어서 군불을 지펴도 연기만 겉돌았습니다. 주인이 몇차레 인부를 사서 아궁이 높이를 낮춰보기도 하고 굴뚝을 바람 덜타는 쪽으로 돌려보기도 했고, 방수리 잘한다는 사람을 다 동원하여 이곳 저곳 수리했지만 결과는 영 시원찮았던 것입니다. 그 때 긴 장죽을 입에 문 늙수구레한 분이 "주인장 그 쓸데없는 돈 들이지 말고 방구들장을 죄다 들어내고 구들장을 다시 놓아야해요, 구들장이 한두 곳 내려앉아 방고래가 막혀서 그러는 거예요." 라고 조언했습니다. 주인은 아니나 다를까 방구들을 뜯고 보니 구들장이 두어 군데 내려앉아 방고래가 막혀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파트 신세대는 잘 알아듣지 못할 터이지만 방고래란 불길과 연기가 지나가는 통로로서 방구들장 밑에 터널처럼 뚫려 있는 고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공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본립이 도생"이라, "근본이 바로 서면 길이 생긴다"는 고전 한귀절을 인용하여 그 수필의 제목을 삼았습니다. 세상만사 문제해결에 있어서 지엽말단 문제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고 근본 원인을 바로 잡으면 해결방도는 자연히 생긴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성경도 알고 보면 "근본이 바로 서면 길이 생긴다"는 "본립이 도생"을 강조하는 경전인 것입니다. 다만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어두워지고 원죄에 의해 깊은 병이 들어서 무엇이 본래의 자리에 바로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기에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셔서 인생이 바로 선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하셨고, 그것도 잘 알아듣지 못하니까 독생자 아들을 보내셔서 이렇게 사는 것이 본래 자리에 서는 것이라고 실제로 본을 보여주심으로 해서 인생근원 문제가 풀렸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성경은 IMF경제난국을 해결하려면 경제정책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유전자이식 방법이 연구되어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최첨단 기술이 개발된 이 때, 생물 복제 문제를 하라, 말라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제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데 만약 성경이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라 한다면 그것은 이미 페기처분 되어야 할 케케묵은 고대문헌자료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기야 지금도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문자주의자들은 성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여 666이 어떻고 말세징조가 어떻고 하면서 세상만사를 예언한 구체적 대답이 계시되어 있는 백과사전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인생과 우주의 근본원리를 계시합니다. 그것은 인간 경험을 축적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흔히 상대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원리나 법칙을 만세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여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챙기는 무리들이 역사 속에서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근본, 우리 인생과 생명의 원점, 한 마디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래 자리를 다시 명확히 일러줍니다. 그리고 그 근본 자리에로 돌아가면 너희가 살고 더 나아가 축복을 받을 것이지만, 그 자리를 거부하고 생명원점에서 멀리 이탈하면 할수록 혼돈과 멸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말해주는 사랑의 책이면서도, 엄정한 우주의 공법과 생명의 법도를 선포하는 냉엄한 책이기도 합니다. 은혜란 어물어물이 아니고, 용서란 적당적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구들장을 다시 뜯어 방고래를 소통시키는 일이지 결코 아궁이를 낮추거나 굴뚝을 동남방으로 바꿔내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가서 본문을 보면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미 말씀하셨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제야 처음 듣는 것도 아니고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니까 모르는 척 능청 떨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니까 다시 명명백백 재확인 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첫째, 오로지 공의를 실천할 것. 둘째, 인자를 사랑할 것. 셋째,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할 것이라고 손에 쥐어주듯이 말합니다.

첫째 말씀인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시시한 말이고, 원론적인 말이고,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라고 우리는 말하기 일쑤입니다. 그 일을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으며 단지 원론에 그치는 일인가요? 우리 속에 진정 공의를 실천하는 정열과 용기가 있어나 보았던가요.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란 내 좋을 대로 내 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정의를 세우는 일이요, 구체적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입니다. 십계명에 따라 좀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말한다면 거짓말 하지 않는 일이요, 도둑질 하지 않는 일이요, 살인하지 않는 일이요, 네 이웃의 제물과 소유를 탐내지 않는 일입니다.

너, 사람아, 너 한국 사람들아! 지난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때 근대화, 공업화, 한강의 기적, 재벌의 탄생, 대학과 언론과 연구소의 증가, 그 모든 일 속에서 공의로움이 관철 되었던가요?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한점 부끄러움 없는 "오로지 공의를 실천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정경유착, 관치 금융, 은행 특혜대출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하고 기업을 일으켜 세운다 말인가 하고. 그런 일 없이 어떻게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재벌의 탄생이 가능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부동산 투자없이, 세금포탈없이, 이중장부 만드는 일없이, 적당한 촌지없이 어떻게 한국에서 집장만을 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고 구멍가게라도 꾸려갈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성경의 말이나 목사님의 말씀은 원론적인 말이 그렇다는 말이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너희가 생명의 제일원리인 공의를 유린했으면 마땅히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IMF시련으로 나타난 것이니 직시하라 하십니다. 생명은 개인이면서도 전체적인 공동체인 것이니까 주범과 졸범이 함께 당하는 것이요, 도둑을 도둑이라고 소리치지 않고 수수방관 오불관언한 자들도 방조죄로 함께 책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그런 책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 둘째 윈리는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인자란 히브리어 '헷세드'를 어질 仁, 자비로울 慈, 그렇게 두글자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仁慈입니다. 인자로 번역된 '헷세드'란 본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아파하시는 마음을 말합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병 앓는 것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안쓰런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룹니다. 자녀가 실직을 당한다든지, 죄를 지어 감옥에 가도 부모는 마음이 편치 않고 자기들이 부족해서 자식들이 고생한다고 마음 아파 하십니다. "측은지심은 인지단야"라고 했던가요.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엔 생명이 상하고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헷세드'를 닮아서 사람의 마음이 지음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헷세드' 측은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소외당하고 굶주리고 고통 당하는 생명을 보면 자기도 아파하면서 그 고통을 덜어주고 함께 나눠지려는 마음 그 마음이 '헷세드'요 '인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둘째번 사항이 바로 그 헷세드, 인자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자리는 시혜나 선심 쓰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래자리입니다. 그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건국 후 50년간 헷세드를, 인자를 사랑했던가요. 형제동포가 굶주리는데 연락하고 사치하고 낭비하지는 않았던가요. 제3세계 노동자가 이국 땅에 와서 노동을 할 때 으스대고 냉정하지 않았던가요.

셋째로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그 명령을 따르기는 커녕, 하나님께 체불임금을 요구하듯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권리를 주장하듯이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명령하지는 않았던가요, "왜 이렇게 요구한대로 하지 않았소?" 하고 책임추궁하는 식으로 원망하지는 않았던가요. 오늘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 진정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태도 인가요." 하나님을 독점하고,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교회당과 신학체계안에 가두어 놓고 온갖 자기 잇속을 챙기는 형국은 아닐런지요?

온 세계가 몹시 어지럽고 우리사회가 극심한 고난의 진통을 겪어야 하는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시대를 걸어갈 지라도,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을 생각해야 하고 본래의 인생자리에로 돌아가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국민 구성원 전체가 IMF시대의 시련 속에서 도리혀 인생의 근본을 되찾고 인간으로서의 자기 진면목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지 못할 지라도 그렇게 살려는 의인 열 사람을 보시기만 하면 하나님은 이 백성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 다시 싸매시고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본립이 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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