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간] 사람의 아픔, 시대의 아픔 ‘곁으로’

김응교 지음, 『곁으로』(새물결플러스 刊)

▲신간 『곁으로』 겉 표지.
문학은 자기와 이웃의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싹을 틔운다. 문학이란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들의 말 나눔’이며 이야기가 담긴 예술 매체이기 때문이다. 숙명여대 리더십교양학부 김응교 교수는 바로 그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이는 문학작품 그 자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생산한 작가의 삶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학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르포 형식의 이 책은 작품이 태어난 진원지에 가서 문학의 눈으로, 그리고 문화의 눈으로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 

“‘곁으로’ 가는 저 방향성이야말로 나 자신을 희망이 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곁으로’ 가겠다는 생각, 방향성만이라도 우리는 희망이 될 수 있다.” (본문 49쪽)   
저자의 발길은 먼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진실을 밝히려는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작은 자와 가난한 자, 약한 자의 곁에서 쓰인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기만의 이득에 갇혀 있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생각하는 ‘사회적 영성’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타자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역 노숙인과 성매매 경험자, 망루에 오른 노동자 등 우리 시대의 맑고 가난한 친구들이 바로 우리가 그 존재를 의식하고 곁으로 다가가야 할 자들이다.   
저자의 시선은 시대의 아픔과 고통에도 집중된다. 여기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한때 감옥 생활을 했던 저자의 경험은 “옥중문학, 현저동 101번지”의 구체성과 현장성을 더한다. 냉랭한 남북관계는 철원과 판문점에서 쓰인 작품들을 더 아프게 읽히게 한다. 노근리에서 자식 둘을 잃은 정은용 작가가 “이제 내 생애에 있어서의 모든 행복은 끝이 났다”고 절규하는 대목에서는 한 개인의 절규가 아닌 한 공동체 혹은 민족의 절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저자는 비극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바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눈길은 보이는 풍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근저에 자리한 무거운 삶의 땀방울과 질곡에도 꽂힌다. 마지막 장에서 강과 바다, 산으로 간 저자는 낭만적인 휴양지로만 알려진 동해안을 실향민의 아픔과 노동의 의미가 쌓인 ‘삶의 교실’로 환기시키고, 비극의 유토피아 제주도를 돌아보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지 않고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어두운 처지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며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니체는 꾹 눌러앉아 끈기 있게 쓰는 것이 정신에 유익하지 않다며 ‘걷기’야말로 정신의 출발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손끝이 아닌 발바닥으로 온 거리를 누비며 쓴 이 책은 땀이 흥건한 훌륭한 정신의 기록물이자, 탁월한 독서력과 해박한 문학지식을 바탕으로 삶과 역사 속에 문학이 어떻게 배어 있는가를 예리하게 파헤쳐낸 생생한 보고서다.   
생래적으로 따뜻하고 겸손한 저자의 성품은 서울역 노숙인부터 뒷골목의 기지촌 사람과 광화문, 그리고 고단한 삶의 그물을 짜는 어촌과 산촌에도 가 닿는다. 그곳이 고통의 중심이 아닌 ‘곁’이나 ‘겉’이라 할지라도 그 ‘곁으로’ 가겠다는 상상과 방향성만으로도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일 것이다. 이 책은 이제 독자들에게 그 여행을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희망 없는 환멸의 시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그럼에도 함께 걷자고 말한다. 이 책의 초청을 받는 독자들은 사방이 콱 막힌 산을 슬쩍 넘어갈 수 있는 숲길을 만드는 일을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김응교 교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2012년 CBS TV 시사프로그램 <크리스천 NOW>를 진행한 바 있으며 현재는 KBS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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