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나라 밖에서 구하는 사법 정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레인 메이커>, 그리고 땅콩회항 공방

▲영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의 <레인 메이커>의 한 장면. ⓒ스틸컷

“법 위에 자본이 있다.”
돈과 이윤추구가 지상 가치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법정의를 기대하기는 흡사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처럼 어려워졌다. 이제 법은 간단해졌다. 돈 있으면 무죄고, 없으면 유죄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법률가 출신 작가 존 그리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97년 작 <레인메이커>는 돈이 법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세계의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새롭지 않다. 1970년대 <대부>, <지옥의 묵시록>을 연출하며 일찌감치 거장 반열에 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작품은 평범하다. 그런데 새삼 이 작품을 꺼내든 이유는 이 작품이 말하는 사법정의가 대한민국을 초라하게 보이게끔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루디 베일러(맷 데이먼)는 멤피스 주립대 법대 출신의 풋내기 변호사다. 그는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보로 일하다가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사건을 맡게 된다. 의뢰인인 토니 레이블랙은 ‘그레이트 베니핏’(회사 이름이 무척 상징적이다)이라는 이름의 보험회사에 가입했다. 그는 급성 백혈병으로 생명이 위독했고, 이에 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회사 측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결국 의뢰인은 목숨을 잃었고, 루디는 의뢰인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줘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됐다. 
루디의 싸움은 쉽지 않다. 먼저 회사 측이 고의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벅찼다. 게다가 회사 측은 리오 F. 드루먼드(존 보이트)라는 거물급 변호사를 기용해 루디와 맞서게 한다. 다행히 루디는 덱 쉬플렛(대니 드비토)이라는 참모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덱 쉬플릿은 변호사를 지망했지만 번번이 미역국을 먹고 변호사의 길을 접었다. 대신 변호사보로 실무를 익혔고, 그래서 법조계의 관행을 훤히 꿰뚫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법과 실제 법정에서 횡행하는 법 사이의 괴리가 심하다는 사실도 진작에 간파했다. 어느 날 그는 냉소적인 어조로 루디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영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의 <레인 메이커>의 한 장면. ⓒ스틸컷

“빌어먹을, 법대에서는 정작 필요한 법을 가르치지 않는단 말이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 했던 소송은 결국 루디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후폭풍은 엄청났다. 도니와 비슷한 일을 겪은 가입자들의 배상청구가 줄을 이었고, 회사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실제 미국 법원은 기업의 잘못에 대해 엄청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나라밖 이야기일 뿐
올해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2006년 미네소타주에서 토요타자동차의 중형세단 캠리가 다른 차량과 추돌,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 캠리 운전자와 그 가족이 가속페달 결함이 원인이라며 토요타 측에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토요타측에 총 1100만 달러(112억원)를 지불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토요타는 앞서 2012년 12월 가속페달 결함 등으로 주행 중 급가속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리콜을 실시한 차량 소유자들에게 11억달러(1조2천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 사법부는 기업인들의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경우에 따라 재벌회장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있지만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됐다고 낙관하는 건 금물이다. 교정 당국은 ‘범털’인 회장님들이 수감 생활 중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아서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브로커를 통해 구치소에서 있었던 시간 대부분을 변호인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조 전 부사장이 구치소에 있었던 2014년 12월 30일부터 2015년 2월 9일까지 42일간 총 81차례였다. 하루 두 번 꼴로 변호인을 만난 셈이다. 
▲영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의 <레인 메이커>의 한 장면. ⓒ스틸컷

마침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조 전 부사장의 ‘갑질’ 피해를 당한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이 지난 9월11일(금) 미국 뉴욕주 퀸스카운티 법원에 “미국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서면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박 사무장은 그러면서 조 전 부사장이 수감생활에서 조차 편의를 제공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하며 한국에서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전했다. 
사법 정의를 미국 법원에 구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법원이 스스로 불러들인 결과다. 아무래도 돈과 권력을 가진 쪽이 더 큰 죄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돈과 권력을 가진 쪽 편이다. 막대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어디까지나 나라밖 이야기일 뿐이다. 땅콩회항 사건이 미국의 사법관할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그나마 박 사무장의 소송이 가능했지, 비슷한 사건이 이 나라 안에서 불거졌다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꼴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박 사무장의 소송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오만한 재벌 회장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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