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헐리웃 상술, 작가정신 퇴색시켜

재탕 그친 <쥬라기 월드>, <터미네이터-제니시스>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의 한 장면. ⓒ스틸컷

최근 헐리웃 영화계는 ‘리부트’가 대세다. 원래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뜻의 리부트는 기존 작품의 주요 캐릭터만 살리고 모든 설정을 다시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놀란 감독의 성공 이후 헐리웃이 리부트에 본격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쥬라기 월드>,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 등 지난 두 달 사이 공개된 리부트 작품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오로지 기술적인 면만 따져볼 때, 리부트 작들은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쥬라기 월드>가 구현한 공룡의 디테일은 공룡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올 듯한 느낌을 자아낼 만치 사실적이다.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는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노년으로 접어든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한 프레임에 등장시킨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쥬라기 월드>의 원작은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쥬라기 공원>(원제: Jurassic Park)다. 이미 <죠스>, , <인디아나 존스> 등으로 기술력과 연출력을 쌓은 스필버그인지라 기술적 완성도는 더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작품에서 구현한 그래픽 기술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충격파를 던진 요인은 따로 있었다. 
원작 <쥬라기 공원>에서 해먼드 박사는 DNA를 이용한 유전공학으로 공룡들을 되살려 내는데 성공한다. 해먼드 박사는 무시무시한 공룡들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다는 자연 법칙을 간과했고, 이로 인해 야심차게 기획한 쥬라기 공원은 쑥대밭이 돼 버린다. 
2015년 판 <쥬라기 월드>는 쑥대밭이 된 쥬라기 공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마파크로 각광 받게 됐는지, 그 과정은 훌쩍 건너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룡들은 흡사 진짜 유전공학 기술로 공룡을 살려내 출연시킨 듯 생생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억지스럽다. 쥬라기 월드의 보안책임자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가 공룡을 피해 하이힐을 신은 채 전력 질주하는 장면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의 한 장면. ⓒ스틸컷

무엇보다 원작의 문제의식, 즉 유전공학이 가진 힘과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동어반복에 그친다. <쥬라기 월드>에서 과학자들은 온갖 유전자를 뒤섞어 하이브리드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를 탄생시킨다. 이 공룡은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몸을 숨겨 인간을 속인 뒤 우리를 탈출해 말썽을 일으킨다. 연출자인 콜린 트레보로우는 “인도미누스 렉스는 실제 존재했던 공룡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대가로 인간은 최악의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사실 이런 영화적 설정은 이미 원작이 충실히 사용했고, 관객은 위험상황을 충분히 겪었다. 새로운 것이라면 하이브리드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뿐이다. 
기술 진보가 작가정신의 진전을 담보하는가?  
<터미네이터> 후속작들은 더욱 심각하다. 제임스 카메론이 1984년 연출한 <터미네이터> 1편의 백미는 흉측한 몰골을 드러낸 살인 기계 ‘터미네이터’ T-800이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를 향해 달려오는 장면이다. 당시만 해도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T-800의 움직임은 스톱모션 기법, 즉 움직임 하나하나를 찍은 뒤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지금 보면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SF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91년에 나온, ‘심판의 날(Judgement Day)’이라는 부제가 붙은 속편은 기술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뛰어난 SF의 고전이다. 액체금속인 T-1000의 동작 하나하나는 지금 보아도 감탄스럽다. 더욱이 살인기계 터미네이터가 인간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린다 해밀턴의 음성으로 나직이 흐르는 엔딩 내레이션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함축한다.
“기계도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배웠기에,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속편 <심판의 날> 이후 <터미네이터>는 모두 세 편의 후속작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하나 같이 원작의 주제의식을 뛰어 넘는데 실패했다. 특히 리부트작 <터미네이터-제니시스>는 원작의 아우라에 기대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원작자인 제임스 카메론은 <제니시스>에 대해 “기대 이상의 반전으로 가득한 스토리다. 반드시 <터미네이터-제니시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며 칭찬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섣불리 립 서비스를 위해 칭찬을 남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측컨대, 후속작들이 자신의 오리지널을 뛰어넘지 못하고 재탕, 삼탕에 그치는데 대한 우월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헐리웃이 오리지널을 리부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작품의 아우라에 기대는 편이 제작도 쉽고, 돈벌이도 쉬우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얄팍한 상술로 인해 작가정신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 진보가 인간 내면의 의식마저 심오하게 이끌 것이란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눈요기 거리보다 심오한 작가정신이 아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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