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논란 속에 퀴어 문화축제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여진은 계속되는 양상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동성애에 대한 반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있다. 일반 사회 여론은 ‘신앙’을 내세운 혐오가 과연 기독교적인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황병구 한빛누리재단 상임이사는 자신의 SNS계정에 동성애 혐오론자들의 심리에 접근을 시도했다. 황 이사는 기독교인들의 동성애 혐오에 두 가지 시선이 가능하다면서, 두 시선 모두 자기성찰의 숙제가 남는다고 결론지었다. 황 이사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동성애가 죄라는 전제 하에, 기독교 신앙을 근거로 한 극단적 혐오론자들이 [유독] 다른 죄보다 이 죄에 더 공격적인지에 대해 그간 오고간 생각들을 갈무리해본다면, 두 가지 관점으로 일차적인 설명이 가능할 듯합니다.
먼저는, 자신은 그 죄와 무관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정죄의 대담성과 자유입니다. 성경이 자주, 더 엄하게 다루는 다른 종류의 간음이나 간통, 불륜 등의 성적 유혹과 악행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그리 높지 않고, 이혼이나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원론적 경계나 권면에 그치는 것은, 현재 자신의 가족구성원과 가까운 교우들은 물론, 미래의 자신까지도 예외이기 힘들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한 때 잘나가던 탑 클래스의 사역자들에게도 일어났다는 학습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 동성애 이슈에 대해서는 적어도 자신은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일종의 확신이 있기에 평균 이상의 ‘자기의’를 발동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좀 다르면서 비근한 예가 있다면,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 병역회피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족속이 되는 것이지요. 병역을 이미 필한 자신은 현역을 회피할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인데, 물론 정당한 비판입니다만 예비군 동원훈련이나 민방위훈련 중 일부를 창의적으로 ‘땡땡이’친 무용담은 여전히 술안주감인 것을 보면 잠시 돌아볼 지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조금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 분야는 저도 인생을 통해 배우는 입장이니 선배 고수님들의 손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는 일종의 페르소나(사회적인 가면)와 그림자에 대한 적용인데, 사회적 존재로서 품격을 지키느라 자신이 애써 절제해온 본성적 기질이나 성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과민하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엄마에게 낭비벽이 심한 자녀의 소비생활은 엄청 불편한 심기를 제공합니다. 겸손을 미덕으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살아온 선비족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칭찬거리를 만드는 출세지향족들이 아주 못 마땅 하구요. 페르소나가 견고할수록, 반대의 그림자(본능)는 더 깊이 숨게 되고, 외부에서 이 그림자를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면 극단적 혐오가 발동하는 일련의 심리기작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합니다. 보수적인 신앙인들에게 이른바 성욕은 절제와 관리의 대상이고 이를 오래도록 잘 인내한 이들을 분노하게 하는 가장 치명적인 자극은 이 욕구를 자유롭고 극단적으로 방출하는 이들의 존재입니다. 매우 불편하지요. 그것도 [몰래]가 아니라 [공개]적이라면 말입니다.
두 가지 관점 중에 처음 것은 다소 비겁한 동기로 해석될 수 있고, 다음 것은 보다 순수하고 중립적인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 모두 자기 성찰의 숙제가 남습니다. 비단 동성애 이슈가 아니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