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부도덕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선택

매즈 미켈슨 주연,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한 장면. ⓒ스틸컷

권력은 양면적이다. 마치 칼이 의사의 손에 들려 있으면 생명을 살리는 메스가 되지만,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생명을 빼앗는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철혈정책’으로 독일을 부강한 근대국가로 성장시킨 비스마르크가 전자의 예라면, 극한의 공포정치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스탈린은 후자의 모범이다. 이 대목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만약 부도덕한 권력자가 권력을 마구 휘둘러 약자를 다치게 한다면, 약자들은 이에 맞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의 원작을 극화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이런 문제에 답을 찾아준다. 말 장수였던 미하엘 콜하스는 민란을 일으킨다. 발단은 아주 사소한데서 비롯됐다. 남작은 통행세를 요구했고, 이에 콜하스는 통행세 지불을 약속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이 와중에 남작은 콜하스가 맡겨 놓은 말을 함부로 부려 큰 부상을 입게 한다. 콜하스의 하인은 거세게 반발한다. 이러자 남작의 부하들은 오히려 하인에게 가혹한 보복을 가한다.   
콜하스는 처음엔 법에 호소하려 한다. 그러나 남작과 인척관계에 있던 공주는 그의 고소를 번번이 기각한다. 그는 참다못해 공주를 직접 만나고자 한다. 이때 그의 아내가 앞길을 막는다. 분에 쌓인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근심하면서도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는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다. 남작의 부하들의 소행이었다. 그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사람을 모아 남작의 부하들을 공격한다. 남작은 황급히 도망치고, 그는 맹렬한 기세로 남작을 뒤쫓는다. 그의 봉기는 급기야 전국적인 민란으로 번진다.   
이 영화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처럼 민란 장면을 스펙터클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보다 미하엘 콜하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그의 어린 딸은 아빠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냐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는 그의 표정엔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타이틀 롤 미하엘 콜하스 역은 <007 카지노 로얄>,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더 헌트>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친 덴마크 출신 매즈 미켈슨이 맡아 열연한다. 그의 과묵한 표정 연기는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한 장면. ⓒ스틸컷

미하엘 콜하스의 내적 갈등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데니 라망)와의 논쟁에서 정점에 오른다. 그는 평소 루터가 번역한 성서를 탐독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래서 루터를 처음 만나자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루터는 콜하스를 냉대한다. 그는 정의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이었냐고, 고작 남작이 말을 다치게 한 이유 때문에 이런 엄청난 짓을 벌였느냐며 콜하스를 심하게 질타한다. (루터는 실제로도 봉건제도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공주의 화평안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콜하스는 심한 갈등에 휩싸이다 이내 화평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콜하스의 납득할 수 없는 선택 
콜하스의 결심은 내란죄를 스스로 인정한 것임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는 죽음마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귀족의 전횡으로 농민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부도덕한 권위에 반기를 드는 행위조차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사구조는 비단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독일 고전주의의 거장이며 대문호 괴테와 쌍벽을 이뤘던 프리드리히 폰 쉴러(1759-1805)의 처녀작 『도적떼』(원제: Die Räuber)도 역시 비슷한 서사구조로 짜여져 있다. 주인공 칼은 자신의 친동생인 프란츠의 모략으로 인해 거리로 내던져진다. 이러자 스스로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돼 부조리한 사회에 맞선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도적의 우두머리가 된 칼을 보고 절명한다. 이에 칼은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고백하고 스스로 법의 심판대에 선다. 칼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 세상을 폭력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할 수 있고 국법을 유린함으로써 국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폭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지고지순한 수단은 아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약자들을 향해 전횡을 일삼는데, 이에 맞서 약자들이 몽둥이를 집어든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메시지는 수긍하기 어렵다.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한 장면. ⓒ스틸컷

사실 <미하엘 콜하스>나 『도적떼』의 메시지는 독일의 뒤늦은 근대화의 산물이다. 독일은 오랜 봉건제도로 인해 부르조아 시민사회의 싹이 늦게 자라났다. 인접국 프랑스가 이미 1789년 대혁명으로 국왕의 머리가 잘려나간 경험을 한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또한 독일의 맹주인 오스트리아 제국이 프랑스 혁명의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주도적으로 앞장섰기 때문에 독일에서 시민혁명은 더 늦어졌다. 그래서 독일의 18세기 문학에서는 기존질서의 전복보다는 유지와 순응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순응의 미덕은 종종 자기파괴적인 정신분열로 귀결됐다. 가장 대표적인 유파가 1815년 전후 등장한 비더마이어(Biedermeier) 문학이다.   
비더마이어는 사회변혁에 거리를 두고 기존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삶의 미덕을 설파했다. 그러나 슈티프터, 그릴파르처, 드로스테-휠스호프, 라이문트, 네스트로이, 에두아르트 뫼리케, 레나우 등 이 유파의 작가들 대부분은 자살이나 우울증 등으로 생을 마감했다. 거대한 사회변혁의 흐름과 괴리된 채 소시민적 내면세계만 추구했던 결과였다.   
콜하스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심판대에 선 그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다. 그는 심판대에 서기까지 번뇌에 번뇌를 거듭했을 것이다. 
섣불리 그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횡포 아래 신음하는 약자들에게 그의 선택의 타당성을 납득시킬 자기변호가 부족했다는 점만큼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배우 매즈 미켈슨의 연기가 빛이 바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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