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북리뷰] 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민음사 刊)

▲프란츠 카프카
법의 문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실 법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의 역사는 법정의 역사와 일치하게 되어 있다. 

체코 출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법의 이런 이면을 꿰뚫어 봤다. 무엇보다 그가 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편 「법 앞에서」(원제: Vor dem Gesetzt)에 압축돼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짚고 넘어가자. 그는 박사 제조기로 불릴 만큼 독문학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작가다. 국내에도 그의 옷깃을 붙잡고 학위를 받은 이들이 꽤 많다. 그러나 정작 카프카 자신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탓에 『심판』, 『판결』 등 그의 주요 작품은 법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는 법학 공부가 무척 싫었던 것 같다. 그는 작가로서 꿈을 키우려 했다. 그런 그가 법학을 공부한 이유는 바로 아버지 헤르만 때문이었다. 헤르만은 “법학(Rechtswissenschaft)은 밥학(Brotwissenschaft)”이라며 아들을 다그쳤다. 사실 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안정된 밥벌이와 높은 지위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다. 헤르만이 아들 프란츠에게 법 공부를 시켰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카프카는 법학 공부를 통해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그 통찰이란 바로 법이 기득권 유지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통찰 때문인지 그가 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단편 「법 앞에서」의 주인공 시골 농부는 ‘법’ 앞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문지기가 농부의 발길을 막는다. 그럼에도 농부가 자꾸 법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문지기는 냉소적인 어조로 쏘아 붙인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도록 해보라구.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걸. 그런데 나로 말하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거든. 방을 하나씩 지날 때 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셋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도 어렵다구.”  
농부는 법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야 마땅한 것이거늘 하고 생각하지만” 문지기를 보자 입장허가를 받기로 마음먹는다. 농부는 그때부터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문지기 눈치만 본다. 때론 문지기를 매수하려는 시도도 해본다. 그러나 문지기는 문을 열어줄 듯 열어줄 듯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농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문지기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들이 법을 얻고자 노력할진대, 이 여러 해를 두고 나 말고는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지요?”  
이러자 문지기는 농부의 귀에다 대고 고함을 지른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문을 닫고 가겠소.”   
법, 일반인이 다가가기엔 ‘넘사벽’   
일반인이 들어가기에 법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예로부터 사법권은 최고 권력자의 수중에 있었다. 구약성서에서도 솔로몬 왕은 궁정에서 재판정을 열어 서로 아이의 부모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의 친자확인 소송에 대해 심판을 내렸다. ‘법정’을 뜻하는 영어단어 ‘Court’가 ‘궁정’과 똑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민주주의가 확산되었음에도 법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누가 더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법정에서 승패가 갈라지는 실정이다. 각 나라마다 도저히 법정 비용을 댈 수 없는 일반 서민들에게 법률 구조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법조계의 내부 관행은 여전히 법의 문을 굳게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관예우’가 대표적이다. 힘없는 일반 국민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서 법정에 정의를 구해 간간히 승리를 거두기는 한다. 그러나 2심, 3심으로 갈수록 고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기용한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운다. 교회와 관련된 분쟁에서도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기에 “방을 하나씩 지날 때 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라는 카프카의 문장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모골이 송연하다. 
더욱이, 재력을 가진 재벌가 사람들의 경우 죄를 지어도 이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더욱 우려스럽다. 전도유망한 여대생을 살해한 재벌가 사모님이 무기징역을 받았음에도 이를 비웃듯 호화병실에서 소일하다가 언론에 발각되는가 하면,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끼친 재벌 총수에겐 경제활성화를 내세워 집행유예를 남발한다. 그리고 교계 관련 소송에서는 대형교회가 대형로펌의 주요고객이 된 지 오래다. 결국 힘 있는 쪽이 약자에 온갖 횡포를 부리는, 이른바 ‘갑질’은 사실상 법조계가 부추기는 꼴인 셈이다. 
만약 카프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환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법 앞에서」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부조리극을 매일 신문 칼럼 한 편 쓰듯 써낼 것이다. 
카프카도 울게 할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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