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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의 신화와 현실

'문명의 충돌'인가, 남북의 충돌인가

소련의 해체는 냉전구도의 와해를 의미했다. 정치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립했던 두 체제 하의 국제관계가 무너져내린 것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건재했을 때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 <역사의 종언>을 발표했다. 헤겔의 역사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소련 진영의 붕괴를 정치 경제의 모델로서 자유주의의 완승이라고 보았다. 국제관계에서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세계는 권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증오의 담론


 후쿠야마의 이론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론이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승리주의를 풍자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군축정책의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1992년 그의 논문이 책으로 발간되면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대책 없는 낙관주의라며 무시해버린 비평가들도 많았다.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미국 외교정책기관에서 재직했던 새뮤얼 헌팅턴은 1993년 《포린 어페어즈》에서 상반된 이론을 펼쳤다. 냉전시대의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 대립에 이어 '문명의 충돌'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1996년 발간 즉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에서 헌팅턴은 국제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으나 친밀도 및 헤게모니 싸움을 위한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할 수 있는 주요 '문명'을 구분했다. 이러한 구도에 의하면 그리스정교문명(러시아 영향권)은 중국의 '유교'문명과 연합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문명 및 그 동맹 문명들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헌팅턴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반서구세력의 핵심축인 '유교문명과 이슬람문명' 축이 '그리스정교문명과 힌두문명' 축과 결합함으로써 힘의 균형이 '유라시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헌팅턴의 이론도 전방위적인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했다. 방법론적으로도 '문명' 자체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을 반박하기란 어렵지 않다.


 또 그가 정의한 각 동맹체에는 정치체제와 동맹의 성격이 매우 이질적인 국가들이 한데 묶여 있다. 때에 따라 종교·지리·정치라는 서로 다른 기준을 자의적으로 적용한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도 큰 비판을 받았다.


 헌팅턴의 이론 중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한 것이 서구의 기독교·그리스정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이다. 모순적인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이 명제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세운 '십자군과 유대인'을 향한 증오의 담론은 서구에 식민지 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인종차별주의적인 이슬람혐오증을 부추겼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문명의 충돌' 이론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헌팅턴은 이를 부인하며 '이슬람문명'의 내부갈등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무슬림사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공식입장은 구시대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서구의 '문명교화의 의무'를 반복할 뿐이었다. 중동 주민들은 그중 가장 야만적인 모습인 관타나모, 아부그라이브, 팔루자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기사제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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