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 날들을 그대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본회퍼 지음 / 만프레드 베버 엮음 / 권영진·송상섭 옮김, 『본회퍼와 함께하는 하루』 (홍성사, 2014)

▲『본회퍼와 함께하는 하루』 겉 표지.

이 책은 디트리히 본회퍼가 1927년부터 1944년 사이에 쓴 묵상, 설교, 연구서, 편지, 기도와 시, 비망록 등에서 발췌한 글들로 엮었다. 그의 글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지 않고 교회력에 따라 주제별로 배치한 것은 독자들이 매일매일 1년간 묵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엮은이의 배려이다. 이 책의 매일매일의 제목과 본문은 Dietrich Bonhoeffer Werke (디트리히 본회퍼 작품전집)에서 인용한 것이다. 
본회퍼는 신앙생활의 힘이 종교성의 추구에서 나오기 보다는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영성, 즉,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실천적 신앙에서 드러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 2차대전 전에 미국에 머무를 때 망명 권유를 뒤로 하고 귀국하였고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 운동을 주도하며 나치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양성교육을 지속함으로써 일신의 안위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의 존립을 더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올곧게 붙드는 강인함을 실제로 보여주었던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영원한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진지한 기도와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하고 그것에 응답하시는 분”(12월29일)이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예수는 “책임 있게 행동하는 현실 속의 인간으로, 삶의 현실로 들어온 인간으로서 죄인이 되신”(3월28일) 분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에서 현실과 책임의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십자가의 본질을 논하면서 “제자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값싼 믿음의 위로로 만든 사람들, 그래서 우리의 자연적인 실존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현실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불행이라든가 삶에서 발생하는 절박한 일이나 불안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3월7일)라고 규정한다. 물론, 그가 이렇게 신앙의 실천적 통찰을 고백하는 근본 이유는 “예수님[이] 인간을 위한 대리적 책임 속에서 현실의 인간을 위한 사랑 때문에 죄책을 짊어지[셨]다”(3월28일)는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으면서 하루의 일을 사랑하며 살고자 했던 본회퍼는 자신의 신앙의 여정을 신앙의 동지들과 나누고 싶어했다: “선한 힘들에 감싸여 신실하고 고요하게/ 놀라운 위로와 보호 아래서/ 이 날들을 그대들과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12월31일). 그가 지하감옥에서 쓴 위의 시에 실린 그의 소망처럼 날마다 ‘선한 힘들’의 인도를 확인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본회퍼를 그 ‘선한 힘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의 본문으로부터 몇 점의 편린을 아래에 제시한다.  
현실 속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그분을 죄책 가운데 있는 인간과 교제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책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죄책 가운데 내버려 두는 사랑은 현실의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위한 대리적 책임 속에서 현실의 인간을 위한 사랑 때문에 죄책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가 그분에게 지워졌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리고 무한한 사랑으로 지십니다. 예수님은 책임 있게 행동하는 현실 속의 인간으로, 삶의 현실로 들어온 인간으로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3월28일)  
성육신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과 부활의 신학을 각각 별개의 체계로 세우고 그중 하나를 잘못되게 절대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을 적용하여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육신에만 기초한 기독교 윤리는 쉽게 타협적인 해결책으로 나아갈 것이고, 십자가 신학이나 부활 신학에 기초한 윤리는 급진주의나 열광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세 신학이 하나가 되는 곳에서만 분쟁이 해결됩니다. (5월2일) 
교회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세상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했음을 증언함으로 세상을 섬기기 위해 공간이 필요한 것이므로, 그 이상의 공간을 갈망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자신의 영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해 투쟁함으로써만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자신의 문제를 위해 싸우는 ‘종교 집단’이 되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6월13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역경 가운데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저항력을 주시고자 하심을 
나는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을 미리 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모든 불안을 극복하게 됩니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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