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자수첩] 당신들의 명예는 어디에 있는가?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목사들

입력 Sep 05, 2014 12:24 AM KST
목사는 성역이다. 목사를 겨냥한 어떤 식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단순한 인간적 흠결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면 차라리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논문표절, 공금횡령, 배임, 성추행 등 보통 사람 수준에선 저지를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의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목사들은 스스로 성역에 안주하려 한다. 
과거 목사들의 비리는 일정 수준 은폐가 가능했다. 모든 정보는 TV, 라디오, 신문 등 전통매체가 독점했고, 이들 매체들은 목사들의 비리를 다루는 데 부담스러워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팽배하다.) 그 이유는 성도들의 집단행동 때문이다. 한 예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지난 1998년 공중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 불륜, 횡령 등 갖가지 비리가 보도돼 곤욕을 치렀다. 이러자 이 교회 성도들은 해당 방송사에 난입해 집단행동을 벌였다. 그런데 이런 집단행동은 사실상 김 목사가 부추겼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전통매체의 입지는 줄어들었고, 블로그·카페 등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특히 최근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까지 도입되면서 정보는 무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교회나 목사가 저지른 비리나 악행은 즉각 폭로되고 있다. 그러나 금고가 진화하면 금고털이의 수법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목사들도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차츰 적응해 나가는 양상이다.   
먼저 최근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여론형성의 패턴을 간략하게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교계 언론이나 일반 언론이 목사, 특히 조용기, 김삼환, 김홍도, 전광훈, 정삼지, 전병욱 등등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를 취재해 보도한다. 그러면 즉각 온라인에선 비난여론이 들끓고, 이들의 행태를 규탄하는 게시물들이 속속 올라온다. 이때 목회자들은 직접 나서거나 대리자를 내세워 게시물을 차단한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강단에서 드러내놓고 자신을 비판하는 게시물 작성자를 거론한 뒤 ‘핍박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이른바 ‘백기사’를 모집하기도 했다.   
한편 대리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다. 안희환 예수비전성결교회 목사가 대표로 있는 이 단체는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운영하는 카페가 전부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유명 목사들이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구원 등판해 목사들에 대한 비판여론의 차단에 앞장서 왔다. 네트워크는 블로그나 카페 이용자들에게 특히 악명이 높고, 이런 이유로 유력 언론에 수차례 보도되기까지 했다. 

대표인 안 목사의 정체도 의문투성이다. 그는 네트워크 대표 외에 <기독교 싱크탱크>, <선민네트워크>라는 단체의 대표도 맡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싱크탱크>는 네트워크처럼 포털에 운영하는 카페가 전부다. 또 <선민네트워크>는 애국을 실천하는 40대 목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9월4일(목) 출범한 <대한민국사랑종교단체협의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정체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더구나 그가 시무한다는 예수비전성결교회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명예훼손이냐 공공의 이익이냐
목사들이 직접 나서거나 네트워크를 내세워 게시물을 차단하는 주된 이유는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의 정확한 법적 정의는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다. 아무리 사실을 적더라도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또는 평가를 저하시키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다만,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명예훼손 조각 사유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목사나 네트워크가 명예훼손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따져 볼 차례다. 이들이 차단하는 게시물들은 비방이나 허위사실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적은 다음 여기에 근거해 비판논리를 제기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네트워크가 차단한 게시물 대부분은 소명 절차를 거쳐 복원됐다.)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문표절이나 성추행, 배임 등은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여기는 중범죄다. 이런 중범죄를 공론화시키지 않는다면 목사들의 영혼이 병들뿐더러 성도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친다. 더구나 정당한 비판이라면 귀담아 듣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며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목사들은 이마저도 듣기 싫어하는 것 같다. 자신이 손수 나서거나 대리단체를 내세워 비판여론의 차단을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행태는 교회의 존재의미를 되묻게 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그토록 듣기 싫다면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돈 욕심을 버리고 교회 공금에 손대지 않으면 공금횡령의 여지가 없어지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자신의 전문 영역을 개척해 학위를 받으면 구태여 남의 논문을 베낄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더구나 집무실에 여성도를 호출해 변태스러운 짓을 하지 말고 늘 거룩함을 유지하면 변태 성추행 목회자 꼬리표가 붙을래야 붙을 수 없다. 
목사들의 비리는 교회의 위세와 비례한다. 교세를 등에 업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이러다가 죄가 커져 세상에 불거지니 입막음에 급급한 것이다. 이런 자들이 무슨 염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겠다고 버젓이 강단에 서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왼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내주라 가르치셨다. 또 당신 스스로 온갖 비방에도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가장 치욕스런 방법으로 죽음을 감수하셨다. 이런 예수를 믿으라는 목사들은 정당한 비판마저 듣지 않으려 하고, 비판 목소리엔 재갈을 물리려 한다. 이들이 과연 예수를 제대로 알고서 행동하는지 진정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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