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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의 길위의신학] 타인에게 말걸기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신약학)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상기 제목의 소설작품을 쓴 작가 은희경을 몇 년 전 전주 홍지서림 내 문화공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독자와의 만남 행사장이었다. 작가의 짧은 연설이 끝난 뒤 질문 시간에 내가 일번 타자로 손을 번쩍 들어 물었다.

"스타일의 자유를 추구하는 당신의 작가정신과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조선일보와 그렇게 친밀하게 사귀며 인터뷰하는 이유가, 상업적인 홍보 목적 이외에 또 있다면 무엇이냐"고.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표정으로 출판사와 언론사의 관행을 들먹이며 더듬거리는 어색한 말투로 답했던 것 같다. 관행과 용감히 싸우며 저항하지 못하는 걸 탓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자신의 책 제목의 적극적 암시와 달리 타인에게 말을 걸고 말을 섞는 일에 심히 서툴다는 인상만이 꽤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박혔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타인에게 말걸기의 화두가 다시 한번 내 머리를 타격한 계기는 알랭 바디우의 책 <사도 바울>을 읽었을 때였다. 거기서 그는 철학자로서 성서학자들이 놓친 중요한 주제를 돋을새김해주었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이래 그 인연의 충실성을 길게 끌고나가 숱한 타자들을 향해 그들의 어법으로 말을 걸며 자신의 복음을 변증하고 설득해나간 그 개방적 포용성은 2천년이나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참신하게 다가온다.
이 페이스북 공간은 타인에게 말을 걸며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대화와 소통을 실험하는 기회의 자리다. 오늘 지난 글을 복습하며 살피다 보름도 더 지난 이원재 님의 댓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답글을 달아드렸다. 타인인 내게 말을 걸며 댓글을 올린 것은 공감이든 소통이든 뭔가 반응을 구하는 정성의 마음을 손가락에 담아보인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여 response를 생략하는 것은 정의의 책임(responsibility)을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전적 개념으로 정의의 기반을 이루는 대전제가 쌍방간 균등과 형평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정의를 구현할 관계의 기본 틀이 잡히지 않고 그것이 가장 사소한 제 일상의 구동축으로 작동하지 않을진대 그 가운데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하고자 하는 내용이란 게 본질상 얼마나 부정의한 것이겠는가 말이다.
듣자 하니 한 유명 목사가 정의를 논하면서 정의를 논하는 자들이 빠지기 쉬운 불의의 가능성을 경고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런데 내가 알기로 타인에게 순순히 말을 걸 줄 아는 위인이 못된다.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이들의 댓글에 예의상의 답변을 정성껏 하는 방식으로 정의가 유통되는 관계의 기본 구도를 형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 앞에 앉아 있는 부교역자한테도 얼굴을 감추고 이메일로 메시지를 전한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떠드는 정의가 자주 거대담론의 구호로 표류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개체에 대한 균등한 응답이 실종된 마당에 덩어리라는 추상체를 대상으로 아무리 연막을 피워본들 그 페르소나는 살아 숨쉬며 생동하는 육체로써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몸의 정치적 기술이란 견지에서 우리는 이제 정의를 관계론적 기틀 위에 세우며 그 실속있는 알짬을 채워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타인에게 공손하게 말을 걸고 정성껏 세심하게 응답하는 형평과 균등의 쌍방향 소통의 관계 위에서 가능해지리라 나는 믿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시시콜콜한 모든 댓글 콤멘트에 빠짐없이 응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 못하는 저 어린 새싹들조차 물끄러미 바라보며 따스한 시선을 비추어주면 모락모락 생명의 온기를 피워올리며 감응력을 발휘한다. 하물며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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