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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의 길위의신학] 맛없는 빵을 씹다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신약학)


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이번 주말까지 완성해야 할 원고 세 편 중 하나를 끝내고 소파에 드러누워 맛없는 바게트를 씹어본다.

왜 맛이 없으랴. 다만 곡물의 평범하고 밋밋한 맛일 뿐이다. 일상의 맛이 대개 이렇다. 평정심도 이런 무채색의 내면이 덤덤하고 담담한 시간들과 만나면서 생기는 자리다.
별 의도가 있어 작위적 연출을 한 건 아니다. 차돌 같다는 신장의 결석은 마침내 세 조각으로 파쇄되었고, 그걸 더 잘게 부수기 위해 한 시간 또 누워 레이저의 타격을 감내했을 뿐이다.
물을 많이 자주 마시고 자전거를 타며 땀으로 몸을 몇 차례 적셨을 뿐이다. 얻어맞은 심신의 구석구석 내가 모르게 멍이 들었는지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결석의 고통이 가시니 글을 써야 할 오른쪽 손목이 자주 시큰거린다.
그러저러한 내면의 정조와 바깥의 풍경에 어울리게 본래 생의 맛이 이처럼 밋밋함을 확신하기 위해 꿀도 바르지 않은 채 맛없는 이 바게트 한쪽을 꺼내 씹었을 것이다.
꽤 오래 전 파리에서 이탈리아 폼페이까지 유레일 패스로 기차 여행 하던 중 여비를 절약하려고 프랑스의 시골마을에서 산 검고 딱딱한 커다란 빵 한 덩이를 줄창 씹으며 며칠간 버틴 적이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게 궁상을 떤 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그 기억은 이후로 오랫동안 건조한 몽상의 날들을 견디며 밋밋한 일상의 리듬에 순응해나가는 데 요긴한 밑천이 되었다.
그리하여 괜스레 맥이 빠지는 그저그런 대수롭지 않은 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울컥하는 생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반추하지 않더라도, 별스런 맛이 없는 바게트 한 쪽을 천천히 씹으면서 그 맛을 닮은 내 생의 무덤덤한 시간들을 덩달아 곱씹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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