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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
어제 산통보다 심하고 신선만이 견딜 수 있다는 고통의 지옥을 두어 차례 경험하고, 오늘은 천연덕스럽게 다시 자전거를 탄다. 아무래도 어제 오후 수업은 무리였던가 보다.
새벽 1시 반에 둔중한 통증에 깨어나 혼자 응급실로 달려갈까 하다가 모종의 환상에 이끌려 기도로 견뎌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자꾸 움직여야 좋다고 해서 이렇게 길게 두 바퀴를 끌고 왔다. 소양천변 길 위로 갈려죽은 잿빛 새와 푸른 뱀의 시신을 목격했다. 요즘은 온통 시체와 부패의 상상력이 나를 지배하는지 눈길 닿는 곳에 이런 것들이 주로 나뒹군다.
위안의 풍경이 없지 않았다. 상큼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내 오염된 후각을 세척해주었다. 조금 더 가니 5월의 숙녀인 찔레꽃이 내 상한 몸을 품어주었다.
찔레의 "찌"가 경색된 음가로 몸의 환부를 찌르는 가시처럼 다가오다가 "ㄹ레"의 부드러운 이중 유성음으로 풀어지는 그 이름의 조화는 영락없이 이 소박한 피조물의 자태를 빼다꽂았다.
장미처럼 화사하지 않고 아카시아처럼 상큼한 매혹은 덜해도 은은한 향기로 숨어서 피는 이 꽃을 내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구나.
그 향기, 벌들과 질펀하게 어울리다 숙질 무렵, 빨갛고 동그란 열매로 머잖아 또 성숙해갈 테다. 그 결실은 시간의 은총이 허락한 찔레의 살뜰한 자랑이요 영광이겠다.
그런데 내가 도력이 높은 고승도 못되건만 어찌 그리 단단한 사리를 만들어 여린 속살을 들쑤시는 애물단지를 품게 되었을까. 육체의 가시가 따로 없다.
일찍이 유마거사는 질고로 몸져 누은 처지에서도 석가세존이 위로차 보낸 문수보살 앞에 '세상이 온통 병들어 신음하는데 어찌 내 한 몸 성하길 바라겠냐'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던데, 그럼에도 병든 세상과 함께 더불어 아프기란 만만찮은 과업이다.
그렇다면 꿀벌의 침을 아랑곳하지 않는 저 찔레의 해맑은 얼굴은 이 고통스런 압제와 죽임의 세상에 무얼 그리 간절히 말하고자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방실거리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