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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
내 빈곤한 서재를 점검하다 존 마이어의 책 를 빼어들었을 때였다. 흰 봉투 하나가 툭 떨어져서 보니 겉면에 '강사비'라고만 달랑 써 있었고 글씨체는 당연히 낯설었다. 내용물을 확인하니 5만 원짜리 네 장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봉투의 상태로 보아 몇 년은 묵은 채 그곳에 박혀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언제 어떤 경로로 그곳에 숨어들었는지 눈꼽 만치도 확인할 수 없었다. 상상하기조차 까마득한 비자금이었다.
며칠 전에는 또다른 유사한 해프닝이 있었다. 모교회 헌신예배 설교로 받은 사례금을 집에 들고 온 것까지는 기억했는데 그 뒤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찾다가 결국 포기해버렸다.
그러다 월요일 오후 섬진강 옥정호가 내려다 보이는 '애뜨락'이란 카페에서 대학원생들과 산상수훈 세미나 수업 하던 때였다. 내 희랍어 성경을 넘기다가 실종된 사례비 네 장을 발견했다. 땅을 파다 보물을 발견한,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그 농부처럼 그 순간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전자의 경우는 그 기원을 알 수 없기에 나는 '순수한 비자금'이라 부르고 싶다. 후자의 경우는 그 기원은 확인되지만 잃었다 되찾았기에 '엉뚱한 탕자 비자금'이라 불러본다.
이 두 비자금의 합한 액수는 지난 보름 내에 외지에서 나를 찾아주거나 만난 나그네들에게 무상증여하거나 대접하느라 소요된 액수에서 20만원 모자란다. 그 20만원은 아마도 이 달 말까지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예기치 않은 발견의 신학적 의미는 무얼까. 탈탈 털린 비자금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대체 무엇을 겨냥하는 걸까.
다시 보름 내로 날 방문하는 두 팀의 나그네가 있어 그들에 대한 모종의 배려일 듯싶은데,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재화가 하나님의 품아귀에서 돌고 돌면서 우리의 권태로운 생이 가볍게 보상받을 틈새를 허락하신 뜻이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본래 비자금은 이러한 순수한 잉여의 유희적 가치에 그 기원이 있었다는 게 오늘의 발견에 터한 내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