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말라위 소감 - 4월 4일, 계속되는 만우절

강요섭·아프리카 말라위 좀바신학교와 말라위대학교 종교/신학과 교수

모든 게 느리고 되는 게 없어 보이면서도 그런대로 굴러가는 이곳의 일상인데도, 시간의 여백이 많아 가다리기가 일인데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저녁을 맞는다. 미국에서 아예 손목시계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 다섯 시가 되면 영락없이 새들이 조잘거리기 시작한다. 그에 맞추어 이슬람교 모스크에서 아침 기도시간을 알리는 주문이 확성기를 통해서 울린다. 미국 같으면 소리공해로 당장 경찰출동을 요청하련만...

 
와서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용변을 보고 다시 잠자리로 가며 본 시각이 11시 45분경이다. 그때 까지 바깥 안전등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여보, 전기가 나갔어요!" 라고 한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이다. "조금 전에 불이 있었는데. . ." 하며 다시 일어나서 부엌에 있는 Fuse box로 가서 옛날 그랬던 것처럼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다시 올렸다. 그래도 전기는 없다. 그런데 다른 집들의 외등은 모두 켜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했다.
 
아침식사는 전기가 없으니 커피도 만들 수 없고 요리는 못했다. 식빵은 그대로 토스트 하지 않은 채 버터만 바르고 바나나와 아바카도를 잘라 대충 먹고는 강의를 해야 했다. 출근시간이 되어 학교에 가서 학장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그때서야, "아, 전기를 사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전기를 사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이를테면, Pre-paid system이란다. 당장 학교 운전수에게 돈을 주어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운전수가 영수증 같은 종이를 가지고 왔다. 바로 집 앞 벽에 있는 box를 열더니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있는 계산기 같은 것에 영수증에 있는 code number를 입력하니까 전기가 들어온다. "이 사람들아, 이런 정보를 미리 좀 주어야지, 아무 말도 안 해 주면 우리가 바뀐 system을 어떻게 알아?"하며 좀 핀잔어린 투로 말하니 빙그레 웃으며 미안하다고만 말한다.
 
Pre-paid를 해도 온종일 전기가 있는 날이 드물다. 하루에도 한두 번씩 전기가 간다. 그래서 숱을 가마니로 사서 둔다. 숱으로 불을 지필 용도로 사두었다.
 
여기서는 셀폰도, 인터넷도 모두 선지급(Pre-paid) system이다. 길에서도 티켓을 살 수가 있다. 지불한 만큼만 쓰면 꺼져버린다. 다시 티켓을 사서 거기에 적힌 number들을 입력하면 작동을 한다. 아프리카의 상화화된 전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회를 두 번째로 가졌다. 한번 모이면 3시간이 보통이다. 이도 미국 같으면 1시간 안에 줄일 수 있으련만...옛날 내가 학장을 할 때는 그 버릇을 바꾸었었는데, 세대 교체를 해온 이 젊은 교수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격식이 그리 많다. 실용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을 만들려고 부엌에 들어가 미국서 가져온 프리이팬을 집어 들고는 기절초풍했다. Force-lain enamel로 된 걸 아내가 힘들게 구해서 가져왔는데 안면이 하얗게 벗겨져 있지를 않는가! 집 청소와 아침, 점심 식사 후 설거지를 돕는 Kidman이라는 말라위 사람이 쇠 솔로 벅벅 문질러 댄 것이 틀림없다. 이 친구는 우리가 말라위에서 일할 때 야경을 보던 사람이다. 와서 이틀이 되었을 때 찾아와서 일(job)이 없다며 일을 달라고 해서 구면이기도 하고 또 정직한 편이어서 일을 준 것이다.
 
그런데 바로 며칠전에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냄비에 쇠 솔질 하여 반짝거리도록 잘 닦아 한라가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며 좋아하는 소리를 들었다. Kidman은 이 프라이팬이 까만 색깔인 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흰색 바닥이 드러낼 때까지 문질러댄 것이다. 마담을 기쁘게 해 주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그랬음이 분명하다. 아내와 나는 서로 그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어댔다. 오늘부터 Kidman 이름을 바꿔 kidding-man으로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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