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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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
교황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설교어록집에 남긴 말이란다.
교회가 거룩하게 보존되고 단일 대오로 통일되고 세상의 상처로부터 견고한 도피성이 되길 원하는 통상적인 관점에 비추어 이런 교회론은 대단한 파격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진술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읽을 때 역설적인 진리의 빛을 발한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오늘의 종가가 2% 하락된 것은 기삿거리가 되고 집 없는 노인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이 외면받는 세태를 개탄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조항이 이 시대에 가난한 자의 몫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드는 경제적 살인까지 포함시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체제를 보수해야 할 최고수장의 입에서 발설되니까 신선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러나 한 체제를 건강하게 보수하는 현명한 길은 그 체제의 변두리와 그 외연을 섬세하게 살펴 하나님의 품 안에 포용하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건강한 보수, 합리적인 보수를 대변한 교황, 성서적 교훈의 기초와 근본을 당연한 상식으로 선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알았던 최초의 교황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개신교회도 불의한 체제에 짓눌린 약자들의 권익과 부당한 조직논리에 휘둘려 신음하는 가난한 자들의 딱한 입장을 향해서라면 무참하게 깨지고 치열하게 상처 입고 참혹하게 더러워지길 자청해야 한다. 그동안 고통과 상처의 문제에 대처하는 교회의 자세는 자발적 도전의 수용보다는 억지춘향 식의 타율적 기제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우리에게 약화된 것은 영적인 저항의 항체이고 심해진 것은 정신적인 무기력이다. 고통은, 그것이 어떤 종류든 가릴 것 없이, 그냥 무조건 피해야 상책으로 치부하고, 상처는 최대한 거부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면 신속히 제거해야 할 암세포처럼 여겨져 왔다. 그것이 이 세상의 불의한 체제에 대해 교회를 철저한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방치하게 만든 심리적 방어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처 기피자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려는 우리의 고요한 체제 지향적 본성에 교황의 저 한 마디는 훅 찬물을 끼얹는 듯하다. 그 찬물이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갱신하는 쪽으로 계몽의 화두망치가 되고 각성의 보루가 되면 좋으련만, 자폐적인 편리지상주의와 체제보수주의의 논리로 무장한 현실의 장벽은 여전히 강고하다. 그 장벽을 깰 수 있을까. 하여 교회가 이 세상의 낮은 자리로 집단 성육신하여 연약한 생명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그들과 조건 없이 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더러워지고 더 상처 입고 더 깨지는 아픔을 무릅쓰며 감내할 수 있을까. 교인들이 그런 교회의 방향 설정에 흔쾌히 동조하고 동참하려고 할까.
그건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가. 대다수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그런 쪽으로 나아가길 두려워하고, 그리하여 자꾸만 주저하는 듯하다. 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이신칭의’의 그 믿음을 주구장창 복창할망정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담대하게 옹호해야 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소치 아닐까.
오늘날의 발전하고 안정되었다는 교회는, 내가 경험한 반경 내에서 보더라도 너무 깔끔하고 너무 정숙하며, 너무 자족적인 기관처럼 보인다. 그 내적인 역량으로 ‘치유’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해 그 일정한 분량의 사역을 자임하긴 하지만, 온 몸으로 상처 입고 더러워지길 자청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발전’과 ‘안정’은 교회를 망치는 스캔들의 원흉일 수 있다는 건데... 그래서 그런 부정적인 스캔들을 내파하는 창의적인 스캔들이 또한 필요할 테다. 예수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이중적 스캔들(치욕이면서 동시에 영광의 빛)의 원조였다. 누가 모르겠는가. 교회가 이런 스캔들의 주역이 된다는 것은 교회 목회 현장의 일선에 서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참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가 깨지는 교회에서 받은 트라우마가 너무 치명적으로 작용한 탓일까. 우리는 이타적으로 깨지는 경우가 얼마나 드물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