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함께 생명을 향하여 - WCC 선교와 전도에 대한 새로운 확언(2)

  …자료(1)에 이어



   78. 교회는 각 지역의 정치적 ·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봉사(diakonia)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을 증언하면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지닌 믿음과 희망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는 봉사를 통해 종 되신 주님의 길을 따르면서 봉사를 통해 하나님 선교에 참여한다. 교회는 봉사의 힘이 지배의 힘보다 우월함을 나타내고, 생명을 위한 가능성을 육성하며, 하나님 통치의 약속을 설명하는 봉사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변혁하는 은총을 증언하는 봉사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79.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 깊이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의 외적인 특성이 전도로 나타나게 된다.
 
    V. 오순절의 성령 :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
 
    복음화로의 부름
 
    80. 증언(martyria)은 온 세계 안에 있는 온 인류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한다는 구체적인 전도 형태를 취한다. 증언의 목적은 세상의 구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에 대해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 그리고 부활의 중심성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전하는 선교활동이다. 그것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과 이 좋은 소식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하도록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81.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흘러넘치는 것이다." 오순절에 제자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행 2 : 4, 4 : 20). 전도는 선교의 서로 다른 차원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과 제자도를 향한 개인적 회심으로의 초대"를 포함하는 복음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의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령은 어떤 사람들을 전도자로 부르시지만(엡 4 : 11),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설명하도록 부름받았다(벧전 3 : 15). 개인들뿐만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전도하도록 부름받았다(막 16 : 15, 벧전 2 : 9).
 
    82. 오늘날 세계는 공동체를 치유하고 양육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파괴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종교적 정체성과 신념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개종(proselytism)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령은 사람들의 설교와 복음의 증언과 동역할 것을 선택하시지만(롬 10 : 14 ‐ 15, 고후 4 : 2 ‐ 6 참조), 새 삶을 창조하고 거듭나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다(요 3 : 5 ‐ 8, 살전 1 : 4 ‐ 6). 우리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 수단이나 권력의 악용을 통해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에 때때로 전도가 왜곡되었고 그 신뢰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상황에서, 억압된 정체성을 가지고 비인간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을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지배 집단들의 의도에 의해 강제 회심(conversions)에 대한 고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83. 전도는 우리의 믿음과 확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고수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들을 제자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눔은 신뢰와 겸손을 가지고 할 때, 그리고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는 표현으로 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그들과 복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혹은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정직성에 대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에 대해 나누고 소개하는 것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은 없다.
 
    84. 전도는 회개, 믿음과 세례로 인도한다. 죄와 악과 대면하면서 진리를 듣는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을 요구한다(요 4 : 28 ‐ 29, 막 10 : 22 참조). 그것은 태도, 우선순위, 목표의 변화를 수반하는 회심을 촉발한다. 그 결과 전도는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 병든 자들의 치유, 억압당하는 자들과 온 창조세계의 해방을 가져온다.
 
    85. "전도"는 선교의 서로 다른 차원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과 제자도를 향한 개인적 회심으로의 초대"를 포함하는 복음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의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교회들 안에는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시는지에 대해 다른 이해가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 전도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개인적 회심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는 억압받는 사람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함으로 기독교적 증언을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전도를 하나님 선교의 한 구성요소로 생각한다. 서로 다른 기독교 전통들은 선교와 전도의 측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leitourgia)가 증언(martyria), 봉사(diakonia), 코아노니아(koinonia)와 불가분리하게 연결되는 지역교회의 삶 속에 근거를 둔 전도를 이해하도록 성령이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고 여전히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전도
 
    86. 전도는 말과 행동으로 좋은 소식을 나누는 것이다. 언어적 선포 혹은 복음 설교(kerygma)를 통한 전도는 아주 성서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도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언어적 진술과 보이는 행동이 결합되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목적을 증언하게 된다. 전도는 일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을 증명하고(요 13 : 34 ‐ 35), 반면 분열은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전 1장).
 
    87. 생명의 충만함을 일으키기 위해서 성령의 동역(同役)을 받아 자신의 지역 현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충성되고 겸손한 봉사의 본보기들이 역사 속에 있고 현재에도 있다. 또한 자신의 문화적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선교사로서 살며 사역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겸손과 상호성과 존중을 가지고 일을 했다. 하나님의 성령 또한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셨다.
 
    88. 유감스럽게도 이따금 복음을 성육화하기보다 배반하는 방식으로 전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선교란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긍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름받았고(막 10 : 45, 마 25 : 45 참조) 착취나 어떤 형태의 미끼 사용도 없어야 한다. 어떤 모양의 기독교적 생활을 택할 것인지 우리가 결정하는 오늘의 개인주의적 상황에서, 전도를 마치 "상품"을 사고파는 것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만인을 위한 예수의 복음이 자본주의적 용어들 아래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절하신다. 성령은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회심과 변혁을 일으키고 만인을 위한 생명의 충만함을 선포하도록 인도하신다.
 
    89. 진정성 있는 전도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겸손과 존경에 근거하고 있으며 대화의 맥락에서 잘 이루어진다. 전도는 말씀과 행위 속에서 복음의 메시지와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촉진시킨다. "연대 없는 전도는 없다. 도래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메시지를 공유하지 않는 기독교 연대는 없다." 그러므로 전도는 개인 간 관계성 및 공동체 관계성을 건설하도록 고무시킨다. 그러한 진정성 있는 관계성은 종종 지역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잘 육성되고, 지역의 문화적 상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말뿐만이 아니라 현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신앙을 공개적으로 진술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단순하게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마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0. 서로 다른 종교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 증언에 관한 다양한 해석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진정성 있는 전도는 다음의 진술처럼 항상 생명을 긍정하는 가치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세계교회협의회, 교황청 종교 간 대화촉진평의회, 세계복음주의연맹의 공동성명서 <다종교세계에서의 기독교의 증언 : 행동지침>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심리적 혹은 사회적인 권력 남용을 포함하는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에 의해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차별과 억압을 거부한다.
    •보복이나 협박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 없이 신앙을 준수하고 고백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정의와 평화와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의 선을 증진하는 일에 서로 존중하며 연대한다.
    •모든 사람과 모든 인류 문화를 존중한다. 반면, 우리 자신의 문화 안에 가부장제도, 인종차별제도, 카스트 제도 등 복음에 의해 도전을 받아야 하는 요소를 분별한다.
    •거짓 증언을 포기하고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해하기 위해 들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가 결심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분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공동선을 위한 깊은 상호 이해, 화해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다른 종교인들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정립한다.
 
    91.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 도전하는 개인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다른 이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복음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지만, 기만과 부정의와 억압을 일삼는 세력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전도는 또한 그 영향력의 범위만큼, 희망과 사랑 안에서 권력을 향해 진리를 말하는 것을 포함하는 예언자적 소명이다(행 26 : 25, 골 1 : 5, 엡 4 : 15). 복음은 해방적이고 변혁적이다. 복음선포는 정의롭고 포용적인 공동체를 창조해내려는 목적을 지닌 사회변혁을 포함해야 한다.
 
    92. 악과 부정의에 저항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때때로 억압과 폭력에 직면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고난과 박해, 심지어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진정성 있는 전도는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비우신(빌 2 : 5 ‐ 11)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연약하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로마의 박해 아래서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 된다. 예수는 그를 따르라는 부름과 영원한 구원을 그러한 자기부인(self ‐ denial)과 연결시키셨다(막 8 : 34 ‐ 38).
 
    전도, 종교 간의 대화와 그리스도인의 현존
 
    93. 오늘날 세계의 다원성과 복잡성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다른 많은 종교와 이념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께서 기쁨과 생명의 충만함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 전통들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진정성 있는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선교의 동반자로 만든다.
 
    94. 대화는 생명을 긍정하고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관점에서 우리의 공동의 삶과 목표를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종교적 차원에서 대화란 우리보다 앞서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그들과 함께 현존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그곳에 계시기에(행 17장),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을 운반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재(先在)하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대화는 양편의 각자가 개방적이고, 참을성 있고, 존중하는 태도로 모든 것을 테이블로 가져 나올 수 있도록 진솔한 만남을 제공한다.
 
    95. 전도와 대화는 구분되지만 서로 관련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하지만, 전도가 대화의 목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화는 또한 "헌신된 자들의 상호 만남"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는 것은 대화 안에서 정당한 자리를 갖는다. 더 나아가 진정성 있는 전도는 삶과 행동의 대화라는 맥락에서, 그리고 "대화의 정신" 즉 "존중과 우정의 태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전도는 우리의 가장 깊은 확신을 선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 의해 도전을 받고 경험을 넓히는 것을 포함한다(행 10장).
 
    96. 특히 서로 다른 신앙인들 사이에 대화는 다종교적 상황 안에서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 인구가 대다수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소수집단의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공동의 선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창 1 : 26)으로 창조되었다는 인간 존엄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와 신앙의 신봉자들은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전도와 문화
 
    97. 복음은 특수한 문화적 · 정치적 · 종교적 실재에 참여함을 통해 여러 상황에 뿌리내린다. 복음이 그러한 여러 실재 안에 뿌리를 내리려면,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적 · 상징적 삶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곳에 어떻게 현존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미리 활동하고 계시는 곳이 어디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복음은 더 넓은 상황에 참여하고 대화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98. 선교 역사에서 복음과 식민 세력들이 결탁된 까닭에 서구 기독교를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충성심을 판단해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만들어졌다. 경제적 힘이나 문화적 패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도는 복음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소유를 빼앗긴 사람들, 소수자들과 동역관계를 찾아야 하며, 그 약자들의 신학적 자원과 비전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99.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개인의 유일성을 손상시킨다. 바벨(Babel)은 획일성을 강요했던 반면에 오순절에 제자들의 설교는 개인의 특수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손상되지 않고 존중되는 일치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복음을 들었다.
 
    100.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비전을 보이시고,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자유, 평화의 증인이 되라고 성령의 권능을 주심으로, 우리 자신의 왕국, 우리 자신의 해방, 우리 자신의 독립(행 1 : 6)이라는 좁은 관심에 서 우리를 불러내신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 자신이나 제도가 아니라 모두에게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며,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빌 2 : 3 ‐ 4 참조). 우리는 한 지배문화의 관점을 가지고 성서의 복잡성을 파악할 수 없다. 문화의 다원성은 우리의 믿음과 상호 이해를 더 깊게 만드는 성령의 선물이다. 가령, 다문화 공동체가 함께 예배드리는 문화 간(intercultural) 신앙 공동체는 문화가 진정성 있게 서로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문화가 복음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복음은 문화우월주의적 개념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하고 사람들의 문화 속에 성육화(肉化)하거 나 뿌리를 내려야 한다. ... 우리는 어떤 곳에서 복음이 특정 문화를 도전하는지, 승인하는지, 변혁하는지 더 잘 분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령의 통찰을 구해야 한다." 생명을 위하여.
 
    VI. 생명의 잔치 : 결론적 확언
 
    101. 우리는 모든 인류와 창조세계에, 특히 생명의 충만을 고대하는 억압과 고난의 사람들에게 복음선포의 선교를 허락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종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 증언인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눅 14 : 15)로 초대하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는 그 연회를 준비하고 모든 사람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 잔치는 풍요로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창조와 풍작에 대한 경축이다. 그것은 선교의 목적이 되는 온 창조세계의 해방과 화해의 징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이 성명서의 첫 부분에서 제기했던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102. 우리는 하나님 선교의 목적이 생명의 충만함(요 10 : 10)이며 그것이 선교를 분별하는 기준임을 확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충만함이 있는 곳에서, 특히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 깨어진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그리고 온 창조세계가 회복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분별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우리는 여러 문화 안에서 생명을 긍정하는 영들을 분별하고, 생명을 긍정하고 보존하는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도록 도전받고 있다. 우리는 또한 죽음의 세력들과 생명 부정이 경험되는 곳에서 악령들을 분별하고 대적한다.
 
    103. 우리는 선교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로부터 시작되고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재창조 가운데 지속되고 있음을 확언한다. 오순절에 불의 혀와 같이 부어진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드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셨던 성령은 우리를 감동시켜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는 삶의 스타일로 이끄시며, 우리가 말씀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사람들과 동행하신다. 진리의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이끄시고 권능을 주사 귀신의 권세를 물리치고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게 하신다. 우리는 구속받은 공동체로서 다른 사람들과 생명수를 나누며 온 창조를 치유하고, 화해시키고, 갱신하기 위하여 일치의 성령을 찾는다.
 
    104. 우리는 영성이 선교적 활동력의 근원이며 성령 안에서 선교는 변혁적임을 확언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와 영성과 창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관점을 재조정하려고 노력한다. 예전과 예배로부터 흘러나오는 선교 영성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와 더 넓은 창조세계를 재연결한다. 우리는 우리가 선교에 참여하고,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고,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은 상호 변혁적이기 때문에 함께 엮여 있어야 한다고 이해한다. 창조와 함께 시작된 선교는 모든 차원에서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경축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105.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가 온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것임을 확언한다. "땅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 : 1).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 인간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온전성을 보살피는 책임이 있다. 지속적인 자연파괴를 초래하는 과도한 탐욕과 무절제한 소비는 중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구원이 온 창조세계의 갱신에서 분리된다고 선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목적을 넘어서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하나님 선교는 모든 생명을 향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선교 방법으로 그것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회개와 용서를 위해 기도하지만 또한 지금 행동해야 한다. 선교는 창조세계를 그 중심에 품고 있다.
 
    106. 우리는 오늘날 다방향적이고 많은 양상을 지닌 선교운동들이 지구 남반구와 동쪽으로부터 출현하고 있음을 확언한다. 기독교의 지구 인구 비중이 남반구와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의 상황, 문화, 영성에 근거한 선교학적 표현들을 탐구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상호 우애와 동반자 관계를 더 발전시켜야 하고, 선교와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 상호 의존성을 확언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적 실천은 고난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및 자연과의 조화를 보여야 한다. 전도는 자기 비움의 겸손으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또한 다른 문화와 신앙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또한 전도는 이 지형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가치와 모순되는 억압과 비인간화의 구조와 문화에 맞서는 것을 포함한다.
 
    107. 우리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선교의 대리자들이며 만유를 위한 생명의 충만을 강조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확언한다. 사회에서 주변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 선교의 주요 동역자들이다. 주변부화되고, 억압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고, 무엇이 그들의 위험한 삶에 나쁜 소식인지를 구별하는 특별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살림 선교에 헌신하려면, 무엇이 생명을 긍정하는 것이고 무엇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주변부화된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한다. 우리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정의와 연대와 포용성은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를 표현하는 핵심 용어이다.
 
    108.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가 모든 사람과 자연을 위한 사랑과 정의의 가치에 기초해 있으며, 변혁적 선교는 자유시장 경제 안에 있는 우상숭배에 저항하는 것임을 확언한다. 경제 지구화는 사실상 생명의 하나님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신, 맘몬으로 대체했다. 그것은 부당한 부의 축적과 번영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는 그러한 우상숭배적인 비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문화적이 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선교는 생명, 정의, 평화의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사람과 자연에 불행과 고난을 가져오는 이러한 거짓 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는 탐욕의 경제를 규탄하고 사랑과 나눔과 정의의 신성한 경제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10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좋은 소식이고, 사랑과 겸손의 성령 안에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확언한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와 복음을 전하는 방법 안에 성육신, 십자가, 부활의 중심성이 있음을 확언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제도가 아니라 늘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전도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 교회의 예언자적 소리는 들려야 할 그때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설득, 감동, 확신을 가지고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 방법을 갱신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110. 우리는 생명을 위한 대화와 협력이 선교와 전도에서 필수적이라고 확언한다. 진정성 있는 전도는 하나님의 형상인 모든 인간을 위하여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존중함으로 이루어진다. 폭력적인 수단, 경제적인 이익 제공 혹은 권력 남용을 통해 이루어진 개종은 복음의 메시지와 반대된다. 전도할 때에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 관계를 성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각각 혹은 모든(each and every)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며, 복음은 특정 단체에 의해 소유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교지로 하나님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행17 : 23 ‐ 28). 성령과 연합한 우리는 생명을 향해 함께 일하기 위해서 문화적 · 종교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
 
    1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교하기 위해 교회를 움직이시며 권능을 주심을 확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선교를 계속 수행할 때에 역동적이고 변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 기독교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증언이 일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하면서 함께 여행하고, 사도들의 선교를 지속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이 사실은 실천적인 면에서 교회와 선교가 일치해야 하며, 서로 다른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생명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112.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요 10 : 10)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사 65 : 17)라고 하나님의 통치의 비전을 확증하시는 성령을 통해 온 창조물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겸손과 소망 가운데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한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자료 출처 : WCC 제10차 총회 자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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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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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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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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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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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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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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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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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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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