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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호 칼럼] 생명 길로 인도하는 자발적 불편

유미호·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유미호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베리타스 DB
우리는 날마다 갈림 길에 섭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입니다.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는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입니다. 선택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만이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생육함, 곧 풍성함(fruitfulness)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구 동산에서 복 주실 때,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창 1:20,22)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생명들이 동산 안에서 오랜 동안 ‘생육하고 번성하며’ 서로 서로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공기와 물, 먹을거리 뿐 아니라 입을 거, 쓸 거까지 다 취하고도, 크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흙, 물, 공기는 물론 지구 위 어느 것 하나 창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못합니다. 흙은 더 이상 자력으로는 생명을 내지 못하게 되었고, 물 소비량은 지속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여 이미 심각한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의 허파 열대우림도 이미 절반 이상 파괴되었습니다. 증가하는 차량과 산업의 발달은 에너지 고갈은 물론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재앙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대로 2100년을 맞으면 뉴욕 시드니 상하이를 다시 볼 수 없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해수면이 최대 91.4cm 상승, 세계 주요 도시들이 해수면 상승 피해를 겪고 있는 투발루와 같은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게 IPCC의 보고입니다. 한반도 해수면은 1.36m나 상승해, 여의도 면적의 33배가 침수되고 9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짓기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고 하였습니다. 씨앗을 소중히 여겨,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죽을지언정 앞으로 지을 농사를 위해 종자(種子)를 남겨둔다는 말입니다. 씨앗 안의 미래를 보고 그 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그냥 먹어치우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지킨 것이겠지요.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요? 미래를 위해 남겨둘 씨앗을 지니고 있는지요? 현재를 살기도 힘든데, 미래의 씨앗을 지키고 돌볼 겨를이 어디 있느냐고요?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는 모두 씨앗까지 먹어버리는 농부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허락받은 ‘풍요’, 즉 ‘필요’ 이상을 지구 동산에서 취하고 있고, 사용 후에는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까지 버리고 있으니까요. 이웃은 물론 다음 세대들의 몫인 씨앗까지,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한참을 먹어왔으니 시간이 촉박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좁은 길로 걸으라 하십니다. 만물의 화해자(골 1:20) 되셨던 주님이 걸으신 길이요, 날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으라 하십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롬 8:32)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욕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불편’이라는 이름의 십자가를 지고 길을 나서야 할 듯도 합니다. 
 
그러나 풍요와 편리를 가져다주는 넓은 길을 마다하고 좁은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동안 누려오던 풍요와 편리를 좇던 삶의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입니다. 더구나 생명이 심히 고통당하는 이 시대에 누려야 할 것 이상을 누리고 있으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기꺼이 ‘자발적 불편’으로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을 위해서도, 서둘러 회개하고 돌아서서 편리함이 아닌 ‘불편’한 삶, 절제의 삶을 살아볼 일입니다. 그리하면 비록 더딜지라도 생명이 풍성해져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절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두가 골고루 누리도록 하는 성령의 열매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도록 조절해주니 말입니다(갈 5:22~24). 
 
혹여 우리가 직면해 있는 상황의 위급함에 무기력해진다면,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한 이들에게 ‘잘했다’ 칭찬하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들로 인하여 받게 될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이라는 상급을 그려보아도 좋습니다. 
 
한 개인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합성세제를 삼가고, 중고품을 사용하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육식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고(생명밥상), 시간에 쫓기지 않게 살고, 소비광고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작고 단순하고 불편한 것을 구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노력(녹색기독인십계명)은 하찮은 것일 수 있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노력에 임한다고 한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일례로 생명밥상을 차리고 먹는다는 것은 깨끗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만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세상을 전 지구적으로 독점하고 착취하는 수단인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폐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그것은 파괴되고 해체된 공동체적 관계와 자연의 순환성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실천하는 이 스스로가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개인들이 한 마음 되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노력한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세상은 충분히 바뀔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앞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자가 환경을 해치는 습관은 고치지 않고,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음식, 입지 않아도 될 옷, 갖지 않아도 될 물건, 타지 않아도 될 차를 즐겨 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바꾸려 해도 그것은 위선일 따름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은 우리 개인의 생활방식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우리 각자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울 때 다소 불편하더라도 꼭 필요한 것만 취한다면,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하루의 양식만을 구하라 말씀하십니다(마 6:11). 지나침도 모자람도 다 창조의 목적에 벗어나는 것이라 하십니다. 아니 덜 가지고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리기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이 생명을 유지하고 증진하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실 것(시 104)이라 믿으라 하십니다. “너희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
 
당장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자발적 불편’으로 생명 길을 걷는 변화를 시도해 봅시다. 비록 지금은 다소 불편하고, 미래가 희망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로 인해 모든 생명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마다 ‘자발적 불편’, 곧 ‘절제’의 삶으로 생명 길을 걷는 녹색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끝>
 
본 글은 유미호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월간 ‘성광’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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