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2 호신대 탈핵심포지엄 발제원고
핵에 의해 깊어가는 신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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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호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베리타스 DB |
지난 해 3월 11일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사고가 빚어낸 고통 소리는 지금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 그 곳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과 연이은 후쿠시마 1, 2, 3, 4호기 폭발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방사능의 공포에 크게 떨게 하였다. 그 곳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은 지금도 대기와 바다로 방출되고 있는데, 지금까지만도 희생자가 1만 5천 명이고 6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생각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지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사고는 인접 지역을 넘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를 넘어 유럽 각국에서 나타났다. 스웨덴의 순록과 영국의 양들은 집단 매장 처분되었고, 유럽 각국의 우유가 폐기처분되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늘어 갑상선 질환, 백혈병, 각종 암이 발병한 이가 20만 명을 넘었고, 갑상선암이 발병한 어린이는 2천명에 달한다. 2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 반경 30km 이내는 여전히 들어가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시 피폭된 이는 물론 사고 이후 태어난 아이들까지도 암에 걸려 심한 고통 중에 있다.
당대 최고의 원전 기술과 안전시스템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발생한 사고라 해서 다르지 않다. 사고는 일어났고, 사고 1년 후가 되어서는 사고 원전 주변 고 방사능(연간 방사선량이 50mSv 이상) 오염지역에 대한 오염제거 작업이 공식적으로 포기됐다. 그 땅은 직접 피해를 입은 지역의 1/3에 해당하는데, 여의도 면적의 약 11배에 달한다. 또 후쿠시마현에 살고 있는 36%의 아이들은 지금껏 누출된 방사능 탓으로 갑상선 이상증식이 나타나고 있다.
신음소리에 둔감한 이들 ; 핵 불감증
상황이 이럴진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신음소리에 무감각하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신음소리 가운데 들려오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일찌감치 이별을 고한 덴마크나 이별 중인 독일과 달리, 우리 정부는 현재 고리 등 4곳에 있는 2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얼마 전엔 삼척과 영덕을 신규 원전 부지로 선정하고, 2030년에 수명이 끝나는 12곳 원전의 수명을 연장, 발전비중을 59%까지 올리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 신규 원전의 20%를 수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욕심에 눈멀고 귀먹어서다. 피조물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물으실텐데... 아니 그 전에 자연이 우리를 저버릴 지도 모르는데... “너희가 원수의 땅에 끌려가면 너희의 땅은 쑥밭이 되리라. 그 동안에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제야 숨을 돌리며 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레 26:34) 또 한 가지 듣지 못한 건, 피조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죄인이어서이다. 지금 우리는 죄로 인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롬 1:22) 하나님의 명령과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창조주의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렘 5:21~22). 그리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동산에 숨어 책임을 전가하다가 종국에는 하나님을 비난했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다. 그러니 더욱 귀를 쫑긋 세워 원전 사고와 방사능 누출로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그에 따른 필요로 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핵의 부자유함(1) ; 타자의 고통
원자력발전은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희생 위에 있다. 우선은 원전 노동자, 특히 일용직 노동자의 희생이다. 한전 직원이 주로 컴퓨터를 이용한 중앙제어실 운영과 작업지시 감독 등 비교적 깨끗한 일을 하는 반면, 한전 노동자들은 궂은 일을 맡는다. 그 중 가장 위험한 일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다. 파이프 보수공, 연료교체 작업, 전기보수 등 순간적으로 피폭에 노출될 수 있는 일들이다. 원전은 이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돌아간다. 방사능 피폭 허용치를 보면 노동자들은 일반인보다 50배나 많은 50mSv이다.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방사능에 강한 특수체질이거나 방사성 물질에 면역력이 있을 리 없다. 때론 생계를 위해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기도 한단다.
원전 인근 주민과 뭇 생명들의 고통도 크다. 원전은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1초에 68톤의 바닷물을 끌어다 온배수로 내보낸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에너지는 70%가 버져 바다를 오염시키고(thermal pollution), 오직 30%만이 전기로 사용된다. 그로 인근 해역의 수온이 크게 상승되어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 주민들이 여러 형태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핵폐기물로 인한 고통은 더 클 뿐 아니라 현 세대를 넘어선다. 고준위의 사용후핵연료보다 위험이 덜하다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짓기 위해, 안면도, 굴업도, 부안을 거쳐 경주로 결정된 20여 년 동안 그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가동 중인 원전은 수십 종의 핵폐기물을 생성하는데, 한 가정의 1년 치 소비전력을 만든 핵연료에는 약 5만 명이 암에 걸릴 수 있게 하는 방사능이 들어있다고 한다. 가동에 필요한 보조 산업 즉 농축, 가공, 재처리 및 운송과정에서도 많은 양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햭폐기물이 세계 원자력발전 50년 역사 동안 30만 톤이 쌓였고 지금도 매년 만여 톤이 추가되고 있는데, 아직 처분할 곳을 단 한 곳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10년에 걸쳐 잔열을 없애야 하고 안전해지려면 최소 10만 년이 걸린다니 찾으려하는 것이 애당초 무리한 일이지 싶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내 임시 보관 중인데, 그마저도 2016년이면 한계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25~30% 정도가 이런 폐기물을 만들어낸다니, 그 만큼의 전기 사용을 줄일 순 없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전력이 부족해도 인간다운 삶은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핵분열에 의한 환경파괴는 삶의 종식을 의미한다. 핵발전소를 없애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우둔한 물음이다. 대안이 있든 없든 핵 발전은 시급히 중지해야 한다.” <김종철,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까’, 녹색평론 2011년 5~6월호>
핵의 부자유함(2) ; 탐해서는 안될 ‘현대판 선악과’
이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 장점을 강변한다. 첫째는,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쉽게 고갈되지 않아 오래고 안정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발전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아 지구온난화 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보안과 안전관리가 철저해 사고가 일어날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아니 역으로 그 자체가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연료인 우라늄 매장량의 한계 때문에 원자력은 마냥 늘릴 수 없다. 고속증식로가 널리 확대될 수 있다면 사정이 나아질 수 있겠지만, 이미 고속증식로는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라늄의 가채연한은 4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것도 원전의 수가 늘면 줄어들게 된다.
둘째, 원자력발전이 경제적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원자력의 발전 비용만 놓고 보면 아직까지 화석연료에 비해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후 원전의 해체비용이나 핵폐기물 처리비가 아닌, 건설비용만 고려해도 원자력발전은 화력발전은 물론 그 어떤 재생가능에너지원보다도 비싸다. 세계적으로 원전의 건설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건설기간 역시 점점 길어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원전업계는 투자비를 회수하고 폐쇄비용의 지출을 지연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고, 우리도 이미 고리 1호기를 10년 수명 연장하고 월성1호기도 연장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원자력발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양길에 있는 원전산업을 일으키려는 논리에 불과하다. 발전과정만 보면 화력발전에 비해 배출량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우라늄 채굴, 제련, 운송, 원전 건설, 핵폐기물 처분 등 전 과정을 포함시키면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는 원전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2050년까지 6%로 내다보고 있다(에너지 효율과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70~80% 감축 예측). 십분 양보하여 인정한다 하더라도,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가 아닌 그보다 더 위험한 방사능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위험성은 독성이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 ‘반감기’로 표시되는데, 적게는 수 일에서 수 만 년까지 걸리는 방사성 물질에 따라 다양하다. 그런데 이 방사성 물질은 호흡이나 먹을거리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서도 계속 방사능을 내놓아 당사자는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게도 치명적 피해를 입힌다. 그래서 혹자는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것을 일컬어 결코 탐해서는 안될 ‘현대판 선악과’를 따먹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넷째, 드리마일이나 체르노빌,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원자력발전의 안전신화는 깨졌다. 사고는 당대 최고의 원전기술과 안전시스템을 자랑하는 곳에서 발생했다. 원전을 옹호하는 이들은 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백만 분의 일, 즉 영에 가깝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세계 442기의 원전 중 6기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으니 1기당 사고 확률은 1.36%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로 보면 우리나라는 2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니까 사고확률이 30%나 돼 안전하다고 방심해서는 곤란한 상황이다. 더욱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와 고장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만도 200회에 가까운 고장이 발생했다는데(연평균 17.5회), 울진 원전에서는 증기발생기 세관이 터져 끊어지는 파단사고가 일어났고, 태풍 루사가 왔을 때에는 발전소 안에 빗물이 누수된 바 있고, 대전 연구용 원자로에서는 중수가 누출되는 사고도 발생했었다.
2007년 수명이 끝났던 고리 1호기의 경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은 후에 전원 공급 기기의 고장이 생겨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고리 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은 전체 전력소비량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또 올해 11월 20일로 설계 수명을 하하는 월성1호기의 경우도 그렇다. 2009년 수명연장을 신청하고 개선한 후 지난 해부터 재가동 중인데,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세 번이나 발전정지 사고가 났으니 계획대로 그냥 놔두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잦은 사고가 인재(人災)든 천재(天災)로 이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 아닌가. 사고가 날 경우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 때처럼 반경 30km 이내에 살고 있는 이들은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4개 원전 주변으로 그 안에 약 370만 명이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9천만 명이 살고 있다. 75km로 확대하면 그 수는 약 5억 명으로까지 늘어난다는데, 다만 이들을 위해서라도 원전의 안전만을 빌 뿐이다.
핵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한 움직임
핵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한 움직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처음엔 핵무기를 반대하는 운동이던 것이, 1979년 미국 드리마일에서 사고가 난 후로는 원자력발전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했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이후엔 원전 반대운동이 더욱 거세진 데다 단순 반대운동을 넘어 재생가능에너지 개발로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서부터 시작되어 한 동안 성과를 내는 듯했지만, 지금의 현실이 말하듯 정부의 원전 위주의 에너지정책을 바꾸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더 원전에 매달리고 있으니 ... “원자력의 확대로 에너지 공급이 그럭저럭 원활해지면, 그만큼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 같은 대안 모색은 늦춰질 것이고 그로 인해 결국엔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한 클라우스 퇴퍼 전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의 말에 잠시라도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앉아있는 가지를 톱질했다. /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톱질할 수 있는지를 / 자신이 배운 것을 서로서로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 그리고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 그걸 바라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톱질을 계속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안에 핵 없이 살려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자연 자원의 재생산 기반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도시에서도 그 꿈을 이루어가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들 움직임 가운데는 교회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교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첫 날 ‘빛’을 만드신 것을 보고, 생명이 존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에너지라고 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에너지 위기를 바라본다. ‘열병’을 앓고 있고 또 ‘방사능’의 공포에 떨고 있는 지구가 하나님의 집이며, 그 집을 지켜야 할 의미가 우리에게 있음을 고백하며 위기에 당당히 맞서가고 있다.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햇빛과 바람 등의 에너지로 충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광동, 지평, 청파, 향린 등의 교회들이 햇빛발전을 하고 있는 대표적 교회들인데, 이들의 노력은 삶의 에너지를 태양과 하늘로부터 얻는다는 신앙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외부 도움 없이 자가발전으로 에너지를 쓰려는 이들도 있다. 예장총회(통합)의 경우 2010년 총회 건물 로비에 ‘자전거발전기’를 두 대 설치하고 제작 웍샵까지 열어 고기, 부천제일, 쌍샘자연, 성문밖, 청지기교회에 보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직접 얻은 전기로 십자가 불을 켜는 ‘친환경십자가’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의 지혜를 짜내 실천하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지난 여름철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이하 기환연)를 중심으로 130여 교회들이 교회 소비전력 10% 줄이기 운동을 전개하여 좋은 성과를 낸 바 있다. 또 지난 해 겨울철엔 기환연과 NCC 9개 회원교단이 공동으로 겨울철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전개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1) 내복을 입고 실내온도를 20℃ 이하로 유지합시다. 2) 전기온풍기, 스토브 등 전열기 사용은 자제합시다. 2) 사용하지 않은 전기제품의 플러그는 뽑읍시다. 3) 중식시간 및 퇴실 1시간 전에는 난방기 가동을 중지합시다. 4) 점심시간, 야간시간에는 전체 일괄 소등하고, 필요한 곳은 부분 점등합시다. 5) 전력피크 때(10~12시, 5~7시) 전열기 및 십자가조명을 자제합시다. 6) 교회 내 실내 및 십자가 조명을 LED로 교체합시다.
필요만큼 구하면서, ‘핵 너머 생명 세상’을 꿈꾼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탈핵의 꿈을 꾼다. 의지만 분명하다면 ‘핵 없는 교회, 핵 없는 사회’는 가능할 수 있다. 설령 어렵다 한들 그것은 체념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은 신규 원전이나 이미 수명을 다한 원전을 포기하게 하는 실천을 쉬이 해볼 수 있겠다. 1천만 그리스도인이 모두 60W씩만 줄이면, 수명을 다하여 다른 것보다 사고 위험성이 큰 고리 1호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핵 없이 살기 위한 시작은 ‘자신이(교회가) 소비하고 있는 전력소비량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할 일이다. 원전이 9기였던 1991년 2,412kWh였던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5년 7,403kWh로 3배나 증가해, 이미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국민들보다 더 많아졌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우리는 그 4배나 되는 9,493kWh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늘어난 부분이 필요에 따른 것인지 진진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만약 그것이 끊임없이 이윤을 좇는 이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에 의한 것이 있다면, 그 ‘에너지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리고 있는 풍요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초래하거나, 공기와 물과 땅을 오염시켜 회복되기 어렵게 하고 여러 동식물을 멸종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있음을 보게 해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아둘 것은 정부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를 채운다고, 2030년 1인당 전력소비량을 13,510kWh로 하여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라늄의 경우 2030년이면 2000년보다 20배나 가격이 뛰고 가채연한도 2040년부터 급강하하여 207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 때 가서 멈추려고 하면 멈출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 곧 자신의 ‘에너지에 대한 필요’를 점검하고, ‘탐욕의 선’을 정하여 조절해가는 연습을 해볼 일이다.
“이 세상의 자원은 모든 인류에게 충분하나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간디)
“너희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예수)
주님은 지금 말씀하신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이 땅 지구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기에 충분하다고.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제대로 알아 그 필요만큼만 채우고 산다면 말이다.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풍요롭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마 25:21)이라 칭찬받을 참 그리스도인이요, 신음하는 피조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