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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자] 흑인여성신학

광야의 자매들로부터의 전통위에 서다: 들로 윌리암스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가부장적 종교이며 지극히 성차별적인 종교라는 것을 드러내기 시작한 여성신학의 확산은 미국 내에 있는 흑인여성신학자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람은 잭클린 그란트(Jacquelyn Grant)와 들로 윌리암스(Delores Williams)를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들로 윌리암스를 중심으로(그의 대표적인 글은 ‘Sisters in the Wilderness: The Challenge of Womanist God-Talk' 1993) 이야기 될 것이다.

흑인여성신학은 시작에서부터 그들의 경험이 백인여성신학자들과는 철저히 다르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여성신학자들이 명명하는 여성신학 곧 Feminist theology란 표현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여성신학을 명명하여 Womanist theology라고 한다. 백인여성신학이 단순하게 기독교의 가부장제만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경험은 가부장제는 물론 인종차별과 가난의 문제, 계급의 문제, 그리고 제국주의에 의한 억압의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인여성들의 feminist theology 만으로는 자신들의 억압의 경험을 결코 다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인여성들이 가부장주의(patriarchy)의 악에 대항한다면 자신들은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이 모두 포함되는 악마주의(demonarchy)의 악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로 팔려 아메리카에 강제 이주된 자신들이 아메리카에서는 노예제도에 의해 착취, 억압당하고 도무지 인간으로서 살 수 없는 조건과 환경에 버려졌고 그 고통과 투쟁하며 생존해 온 삶의 경험이 백인여성들과는 어림없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들의 경험은 모두 같다는 백인여성들의 주장은 인종차별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즉 백인남성만 아니라 여성들의 신학에도 인종차별주의가 내재되어 있음을 밝힌다.
 
흑인여성신학 곧 Womanist Theology의 womanist란 어떤 것인가? 이 말은 흑인여성 소설가 Alice Walker가 쓴 의 맨 앞에 사전식으로 적어 놓은 정의에서 온 말인데 어머니가 딸에게 하는 흑인민담에 나오는 표현으로 ‘여자다운’이라는 뜻이다. ‘여자다운’이란 말이 경솔하고 부족하고 수줍다는 부정적인 뜻도 한편으로 가지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흑인 민담에서는 어머니가 ‘너는 여자같이 행동하는구나’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놀라게 하는’ ‘대담하고 용기 있고 확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매우 긍정적인 말이란다. 앨리스 워커는 이 긍정적 개념을 극대화 시켰다. 곧 더 많이 더 깊이 알아 어른이 하는 행동에 관심을 두고 어른같이 행동하고 어른이 되려고 하는 소녀의 모습을 의미하는 이 말은 감성적인 융통성이 있고 여성의 강함을 가치 있게 평가하고 선호하며 인간 모두의 생존과 전체성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모든 일반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말이며 바로 생존과 해방을 내면에 내재한 모든 흑인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개념화하였다. 가난한 흑인여성들이 백인사회 안에서, 흑인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딸에게 전수하고 그 방식에서 형성된 흑인여성문화와 그 안에 있는 여성의 힘을 ‘여자다운’ 것으로 표현하였고 그러한 ‘여자다운 여성신학’을 전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으로서의 여성의식만이 아닌 나와 공동체의 삶 전체와 관련되는 여성의 영성을 지적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흑인여성신학은 자신들의 신학의 자료를 그들의 지혜와 속담, 민담 등의 전통에서 찾고 동시에 이들을 사용해 흑인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흑인여성작가들의 소설 작품들에서 찾는 특성을 보인다. 들로 윌리암스는 이 작품들을 종교적 진술(religious narratives)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소설들은 흑인공동체의 궁극적 관심을 그리고 있으며 그 줄거리들이 종교적 언어, 행위를 드러내고 그리고 종교적 문제들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작품들은 흑인여성의 현실을 탁월하게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통과 시공을 초월한 자매애를 보여주며 특히 흑인여성들이 이끌어 온 투쟁의 힘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현재의 흑인여성에게 힘을 부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본다. 윌리암스는 소설중의 여자 주인공들의 삶을 중심으로 무엇이 흑인여성에게 생명을 주는 힘이었고, 또 무엇이 흑인여성들을 죽음의 세력 속에 헤매게 했는가를 분석하고 그 위에서 우머니스트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노예제도 시대부터 지금의 체제까지 흑인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이 소설 안에서 세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첫째, 흑인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있어 선택의 박탈이다. 노예제도 하에서 그들은 백인남성들의 성욕의 대상이었고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임신을 강요당했고 태어난 아이들은 언제든 노예로 팔려가곤 했다. 둘째는 백인들의 미와 가치체계를 가지고 흑인여성들을 평가함으로서 자신감(self-esteem)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흑인공동체 역시 백인여성들을 미의 이상적 기준으로 삼아 흰 살색과 푸른 눈을 선호하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 ‘푸른 눈동자’(The Bluest Eye)에서 이 문제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흰 것이 옳은 것(white is right)'이라는 노예제도의 핵심적 원칙에서 기인한 미의 기준이 흑인여성들의 자신감을 다치게 하고 자기비하의 의식을 내면화시켰다. 세 번째는 흑인여성이 긍정적이고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인간관계를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노예이면서 여성인 이들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우정관계 등에서 자신이 선택하거나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들은 소설 컬러퍼플에서나 허스튼의 소설 등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는 주제들이다.

이 같은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흑인여성들을 살아남게 한 힘이 있었다고 윌리암스는 본다. 그는 이것을 ‘생명선의 정치’(lifeline politics)라고 부른다. 생명선의 정치는 흑인여성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진 다양한 억압에 대항해서 싸우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전략을 총칭하는 범주이다. 그것이 바로 여성의 유산인데 그들의 신앙, 의식(ritual) 등을 통해 알려져 온 것으로 매우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생명선의 정치를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하나는, 흑인여성들이 반항적 태도와 육체적 힘을 키운 것, 둘은, 다른 흑인여성들과 흑인 남성들과 강한 연대를 맺음으로써 자신감을 증대시키고 상호적인 관계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간 일, 셋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제로부터 도망쳐 나오기를 한 것, 넷은, 자신들에게 주입되어 온 백인들의 가치체계를 부수고, 자신들의 의식을 새롭게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 것 등이라고 한다.
 
윌리암스는 흑인해방신학자들이 흑인해방을 신학화하기 위해 말하는 블랙 경험(black experience)에는 흑인여성의 경험이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는 흑인 공동체 전체 경험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광야 경험(wilderness experience)이 전통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광야경험은 하갈의 이야기이다. 윌리암스는 흑인여성신학은 성서의 두 전통위에 서는데 그 하나는 노예해방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하갈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성서에 만약 하갈의 이야기가 없다면 흑인여성들은 성서와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창세기 16장과 21장에 나오는 하갈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브라함이 그의 부인 사라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어 씨받이로 삼은 이가 바로 사라의 여종인 하갈이었고 하갈이 임신하게 되고 사라를 업신여긴다 하여 사라의 학대를 받고 이를 못이겨 광야로 도망쳐 나간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라에게로 다시 돌아가라는 권고를 받고 사라의 수하로 다시 들어간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이미 아들 이삭을 가진 사라는 상속문제에 예민하여 이스마엘과 함께 하갈을 광야로 쫓아내고 광야에서 목마름으로 죽음 직전에 이른 아들 이스마엘의 고통을 보며 울부짖는 하갈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마실 물을 찾게 하고 이스마엘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하갈은 사라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의 시조모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윌리암스는 바로 이 하갈의 경험이 흑인여성의 경험이며 흑인 공동체의 경험이라고 한다. 광야경험은 여성의 임신, 출산의 역사와 억압당하는 여성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자녀(가족)의 생존을 위해 힘을 부여받고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비젼을 받는 이야기이다. 광야경험은 여성의 경험은 물론 가족, 민족, 공동체의 문제를 모두 내용으로 포괄하고 있어 남성중심적이지 않고 전체적 시각을 갖게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윌리암스는 광야 경험의 특성이 해방에 있기 보다는 생존에 더 비중이 주어져 있다고 본다. 억압자를 피해 도망갔으나 생존 기반이 없는 광야에서 다시 억압자에게로 돌아가라 말함으로 하나님이 생존에 더 관여한다. 두 번째 억압자에게서 쫓겨났을 때도 생존의 자원을 보는 새 비젼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생존과 해방의 투쟁에서 어머니인 여성이 주도적이고 지도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갈의 이야기는 지독한 억압의 노예생활에서 자식들을 백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다 키워내면서 그 공동체를 유지시켜온 흑인여성들과 어머니들의 생존유지를 위한 강한 힘의 전통이라고 본다. 또한 하갈의 탈출시도 경험도 백인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한 흑인의 전통과 일치시킨다. 100년 이상 하갈은 미국 흑인들 문화의 축적물-시, 민담,-등에서 나타났다. 흑인여성들이 유대인 사라보다는 하갈과 자신을 동일시해왔음을 주목하게 되면서 성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흑인여성들은 하갈의 경험을 아프리카 노예로 겪은 흑인여성 경험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윌리암스가 예리하게 지적하는 하갈의 이야기의 독특성은 그 이야기에 나오는 하갈의 해방을 위한 노력은 하나님이 주도하여 모세를 앞세운 노예해방과는 다르게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갈 자신, 곧 인간의 자발성에 있었다는 지적이다. 성서에 나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주목하면 이와 유사한 유형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하나님의 인도없이 하나님이 할 일을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여성들의 모습(룻기에서도)들-성서기자가 하나님과 여성들을 관계지우려 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아니면 여성들의 행위를 더 성숙하게 본 까닭일까?

흑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의 삶을 인내하고 새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 힘은 예수의 사랑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자신들의 기독교와 백인들의 기독교는 다른 기독교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하나님은 노예를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이고 백인들의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성서해석들이 나올 수 있는가를 우리는 흑인여성의 경험에서 보게 된다. 처절한 억압의 경험을 한 그들의 신앙과 성서이해는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신앙과 성서해석과 먼 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흑인여성신학이 흑인해방신학을 향하여 매우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까닭은 흑인 남성들이 인종차별의 억압경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적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또 다른 억압자로 여성들을 차별하기 때문이다.

흑인여성신학은 서구여성신학은 물론 아시아여성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신들의 경험과 문화 전통 위에 굳건히 서서 성서와 교회를 이야기하는 당당함은 모든 백인여성들에게도 그리고 유색인 여성들의 신학하는 방법과 태도에도 자극과 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자 최만자는 <한국 여신학자 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교회 여성운동에 참여해왔다.


출처: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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