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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자] 성차별의 받침대들을 무너뜨림: 메리 데일리

여성신학이 본격적으로 확산 된 것은 메리 데일리(Mary Daly)가 1968년에 쓴 『교회와 제2의 성』이라는 책의 파문에 의해서 일어났다. 영국의 한 출판사로부터 교회와 여성에 대한 한편의 책을 저술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던 데일리가 1965년 로마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여 충격을 받으면서 이 책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바티칸 제2공의회는 로마교회가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여 교회를 세상을 향해 활짝 열고자하는 개방적 신학을 정립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현실은 그러한 공의회의 열림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크림슨 빨강색 의상을 입은 남성 노인 추기경들과 주교들은 마치 교회의 왕자들 같이 높은 단상에서 거만한 자세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하여 침울한 검정색 긴 의상에 머리에 베일을 쓴 소수의 여성집단인 수녀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극적이었다. 화려한 추기경들이 베푸는 성채를 받으려고 긴 행렬을 이룬 수녀들의 모습을 데일리는 마치 소풍을 간 사람들이 떨어뜨려 놓은 부스러기를 모으러 모여드는 개미의 행렬 같았다고 묘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 참석한 여성들은 구석자리에서 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라틴어 문서들을 읽고 있었음에도 기자들이 소감을 물었을 때 자신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음에 대한 고마움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보고 가톨릭 안의 깊은 성차별을 직시한 분노를 가졌고 그것이 책의 저술로 이어졌던 것이다.

데일리는 이 책에서 가톨릭 전통 신학들이 얼마나 성차별 적인가를 파헤치고 있다. 우선 여성에 관한 기독교문서들이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모순적임을 지적한다. 그 하나는 기독교 신학의 ‘인간’과 ‘여성’에 대한 가치정립이 서로가 매우 모순된다는 것이다. 신학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지만 여성에 대한 가르침에서는 억압적이고 혐오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 기본적인 교리를 불명료하게 만들고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일리는 다른 하나의 모순은 여성을 영광된 여성과 혐오스러운 여성으로 상반되게 규정하는데 그 영광은 거짓된 것이라고 폭로한다. 이 모순의 근거들은 물론 구약과 신약에 있는 성서의 구절들과 교회교부들의 성서해석과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신학사상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본다.

창조이야기에 그 연원을 두고 지속되는 여성관 곧 여자는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여성혐오사상)라는 사고와 성서 안에 있는 현숙한 여성상들은 교부들에 이르러 ‘영원한 여성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고양하는 교리와 신학을 발전시켰다. 창조이야기로 인하여 기독교에 확립된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여자는 남자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고 따라서 복종하고 자기를 부정하여야 한다는 덕목이 부여되었고 이것이 창조의 질서라고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복종과 희생이라는 여성의 속성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여성의 본성이라는 주장이 가톨릭 신학의 지배적인 여성관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여성,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영광된 여성은 영원한 여성상인 복종과 희생과 인내와 수동성 등의 ‘여성성’을 고귀하게 소유하여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잘 보존하는 자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의 생리적 몸의 부정을 통하여서만 영적 성스러움에 이를 수 있고 그래서 남성으로 될 수 있다는, 철저한 여성부정을 통해 영광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신학이다.

가부장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모성성도 마찬가지로 비판되며 따라서 모성애 혹은 모성이라는 용어의 사용도 이 비판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에서 생겨난 문화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영원한 여성성’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본성이라고 강압하는 신앙 앞에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영원한 여성상에 관한 신학’을, 데일리는 바로 여성차별과 억압을 가톨릭교회가 뒷받침하는 받침대들이라고 부른다. 이 받침대들은 너무나 단단하여서 가톨릭 안에 새로운 바람이 꾸준히 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고 한다. 곧 데일리는 성차별을 지지하는 받침대 신학들을 비판하여 폭로해냄으로써 가톨릭교회를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나도록 개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73년 데일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라는 책을 펴내고 더 이상 기독교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자신의 여성주의적 사고에서 이제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경계선에 서는 삶을 살게 되면서 기독교가 속속들이 가부장적임을 선명히 볼 수 있었고 그러한 종교 안에서 더 이상 여성들의 자유와 존엄을 뒷받침해 줄 기반을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에서 그는 기독교의 남성중심적 상징들을 근본적으로 문제시 한다.

그리고『교회와 제2의 성』, 이 책으로 인해 데일리는 보스턴 신학교의 교수직에서도 해직 되었고(1년 후에 일단 복직되긴 했지만), 가톨릭교회는 이 책을 금서로 만들어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그 금서지침으로 인하여 이 책은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고 기독교의 신학과 교리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작업들 곧 여성신학이 멀리 멀리 퍼져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여성의 관점을 가지고 전통신학과 교리를 비판하는 일은 데일리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그를 이은 많은 여성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성차별을 떠받치고 있던 받침대 신학들이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신학을 받치고 있었던 가치기준들이 다시 평가되어졌고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 인간이해도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정립되어져 나갔다.

여성신학자 최만자는 <한국 여신학자 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교회 여성운동에 참여해왔다.
 
출처: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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