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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의 길위의신학] ‘의인’은 과연 믿음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하박국 2:4의 예언과 지푸라기 인간


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베리타스 DB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내가 만난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사상가다. 그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키워온 휴머니즘의 이상을 뿌리째 전복하고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본다. 그가 쓴 책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 의하면, “진보는 신화다. 자아는 환상이다.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 인간의 유다른 특징은... “이성의 능력이나 도덕 원칙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homo rapiens]이라는 점”이다.

하여 계몽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상치되는 이념들조차 인간의 진보라는 헛된 신념 위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미망일 뿐이라고 그는 본다. 이 세상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기에 구원과 계몽은 헛발질이 되고 진리와 진보의 표상인 종교, 도덕, 철학과 과학은 그의 철퇴 앞에서 여지없이 박살난다.

그레이는 노자의 영향 아래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추구[=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는 어록을 화두로 삼아 저러한 파격적인 논지를 펼쳐 보인다. 이에 따르면 인생 또한 우발적인 계기로 태어난 존재로 신이나 섭리의 결과와 전혀 상관없이 단 한번뿐인 삶을 그저 '성의 있는 태도'로 대하는 것만이 최선의 자세라고 한다.

마치 고대 중국에서 지푸라기로 개의 형상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물건으로 삼았다가 제사가 끝난 뒤 불구덩이에 집어넣어 태워버리듯, 같은 논리로 우리 인생도 이 세상의 부조리 가운데 제 몫의 수명을 누리며 생존하다가 지푸라기처럼 가차 없이 사멸의 골짜기로 접어들게 될 뿐이다. 이러한 엄중한 실존의 현실 속에서 역사는 무의미하며 진보와 낙관의 신념 역시 허황된 관념의 체조가 된다.

특히, 인간의 포악한 파괴력이 기승을 부리는 난세에는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제 한 목숨 잘 보전하여 생존을 지탱하는 것만으로 존재의 목적에 부응한다고 노자는 통찰했다. 그레이는 이것을 ‘성의 있는 태도’로 요약하여 '의미'라는 미망과 미신에 휘둘리지 않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처신을 옹호한다. 기존의 사유 체계에 익숙한 관점에서 보면 이런 주장들은 무모하고 극단적인 잡설로 비치는데, 나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하박국의 탄식과 절망 속에서 이러한 치열한 비관주의의 한 단면을 목도한다.

로마제국의 태평성대로 꼽는 기간(Pax Romana)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난폭한 죽음을 당했을 정도이니 난세가 아닌 세상이 역사를 통틀어 어디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하박국 역시 유다왕국의 명운이 다하고 바벨론의 침략 소식으로 목숨을 위협받던 조그만 국가공동체의 일원으로 그 폭력적 난세에 구원이 없음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율법이 느슨해진 상황에서 악인이 득세하고 그들에 의해 의인들이 곤경에 처하는 현실을 그는 절통하게 탄식했다. 폭력과 멸망의 다급한 상황이 그에게도 닥치는 마당에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는 마치 졸고 있는 구원자를 깨우듯, 이런 난맥상의 근거와 사유를 따지며 하나님께 대들었던 것이다.

그가 받은 계시의 환상은 적절한 때에 하나님이 그 사악한 자들을 다룰 것이니까 이드거니 견뎌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남으리라는 것이었다. 내란과 전쟁에 상습적으로 노출된 그런 삭막한 상황에서 난세의 연약한 인간들은 죽음의 공포를 일상처럼 경험하였을 것이다. 폭력을 정복의 무기로 삼은 난폭한 무리들이 기세를 떨치던 때에 그저 율법의 말씀을 의지 삼아 착하고 경건하게 살려는 자들은 가차 없이 지푸라기 개처럼 나뒹구는 게 다반사로 반복되었다. 순간 하박국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진정 의인이 믿음을 견지하면 그들의 그 신실함을 통해 난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면 의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죽어 나뒹구는 이 눈앞의 현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계시적 응답은 동어반복의 신정론적 변론으로 맴돈다. 악한 자들을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다루실 때가 언제일지 모르는 막연한 상황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신탁은 이처럼 삭막한 난세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그렇다’고 답한 셈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렇다’는 답을 이끌어냈다면 그것은 일종의 안타까운 희망사항에 해당된다. 그러한 희망을 포기하면 그 비관주의의 극점에서 단 한번뿐인 삶에 대한 성의 있는 태도조차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하박국의 한 구절은 로마서 1장 17절에 바울이 인용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와 함께 맥락의 왜곡도 불거졌다. 본래 이 구절은 숱하게 의인이 악인들 손에 죽어나가는 황망한 상황에서 그래도 자신은 믿음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으리라는 미래지향적 생존의 소망을 피력한 예언이었는데 마치 의인이 되려면 믿음 위에 우뚝 서서 살아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 주장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생겨났던 것이다. 물론 그 믿음은 본래 맥락에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견지해야 하는 생존의 보루로서 율법에 대한 신실한 태도 내지 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최후의 소망을 가리켰다.

바울은 이를 구원론적 맥락으로 환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의 태도(pistis Iesou)를 가리키는 것인 양 재해석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재해석도 그 믿음의 대상을 다소 변경했을망정 결국 생존의 보루로서 ‘믿음’을 이해했다는 점에서는 하박국과 통하는 것 같다. 바울 역시,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생존의 성의 있는 태도로서 믿음 또는 신실함(pistis)을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하박국의 탄식이 내가 만난 난세의 현실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수많은 생명을 폭압적으로 살상한 독재자는 세습까지 하면서 돼지같이 살이 두룩두룩 쪄서 기고만장한데 순종하는 것밖에 몰라 빼빼 마른 내 동족들은 일용할 양식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채 피골이 상접한 불쌍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며 생존하고 있다. 그들은 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면서 이 땅에 핵공포를 확산시키는 그 압제의 시간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5년, 10년간 고독하게 도서관과 기숙사와 교실을 삼각구도로 오가면서 죽어라 공부해서 간신히 박사학위 받은 동료 학인들은 강의 배정조차 넉넉히 받지 못한 채 손가락 빨면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데, 남의 논문 베껴 가짜 학위 받은 시정잡배 같은 무리들은 높은 자리, 고귀한 직책 차지하고 그 흉측한 미소를 흘리면서 떵떵거리고 있다. 난세의 꼬락서니가 이런데도 의인은 책에 써진 대로 신실하게 살면서 믿음만 견지하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저 열심히 땀 흘려 하루 종일 힘들게 땅 파고 그물 던지고 물건 만들고 그 물건 팔면서 노동한 것 외에 별 잘못한 일 없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렇게 꾸역꾸역 일용할 양식 넘기며 생존한 죄밖에 없는데, 거대자본은 거대자본을 낳고 공룡 같은 몸집으로 이러한 서민들의 밥그릇을 집어삼키려 골목까지 샅샅이 훑어온 마당에 가녀린 그 생존의 믿음은 마침내 생존을 보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하박국의 탄식어린 물음은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이 난세의 구석구석에 메아리치고 있는데 그가 억지춘향으로 내뱉은 동어반복적 응답 가운데 애절한 생존의 울부짖음은 죽여버리고 그 형해화된 교리만 남겨놓은 채 죽어서라도 의인이 되려면 믿음으로 ‘아멘’하며 살아야 한다는 얄팍한 당위적 규범만 난무하는 이즈음이다. 난세의 풍경이 그 기원의 의도를 배반하는 추세야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가끔 나는 하박국의 한 맺힌 저 절규와 탄식에 담긴 그 수상한 기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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