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아카이브

[윤응진]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청년헌신예배)

 

 

대학교회 '청년 헌신예배'(음악예배) 설교
2003. 5.25.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예레미야 1:4-12)

1. 청년 예레미야의 소명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영적 통찰력과 깊이를 소유한 사람이었고, 시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서 호소력 있는 웅변가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용감하고 정열적인 사람이었으며,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언자'로서 기억되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성서가 증언하는 예레미야의 활동 연대는 기원전 627-587년 (요시야 13년- 여호야킴-시드키야 11년) 사이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왕국이 강대국들의 잇단 침략으로 인하여 존폐 위기에 처했던 역사적 격동기였습니다. 그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40여 년을 동족과 함께 살면서, 민족의 패망을 막기 위해 정치적, 종교적 개혁과 민족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정치가들과 부자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대중들도 예레미야의 예언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몰락해 가는 유다 왕국의 최후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은 청년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살아가도록 소명을 받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부름 받았을 때, 그 사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6절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그는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명에 적합하지 않은 애송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개인적인 자기실현의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젊은이가 평범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하지 말아라"(7) 어리다는 것은 젊음을 구가하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명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구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핑계를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이해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파트너로 삼음으로써 여러분 개개인의 인생 행로가 순탄하고, 결국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성공과 출세가 보장되기를 희망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청하는 것임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자리입니다.
예레미야가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지배자들의 죽음의 정치에 저항하여 하나님의 정치, 곧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 위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왕들에 맞서야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대토지 소유자들('땅의 백성')에 맞서야 했으며, 억압과 착취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던 제사장들에게 맞서야 했습니다.(1:18)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청년 예레미야가 느꼈던 두려움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런 핑계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고 하지 말아라!
문제는 여러분의 관심과 열정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만 몰두한다면,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 관심과 열정이 뿌리를 내릴 여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레미야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의 관심과 열정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위하여 활용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2.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도, 그가 전하는 말이 실현될지, 그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으로 입증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정원을 거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11)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저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11)
그런데 12절에 이어지는 말씀은 예레미야의 대답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 같습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에 대한 상식이 필요합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과 비슷한 어휘로 '쇼케드'가 있습니다. 이 말은 '지켜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을 때 연상작용에 의해 '지켜보다'라는 단어를 떠 올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살구나무 가지를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말씀을 현실화하시기 위하여 역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깨달음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성급하게 피었던 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는 허무와 죽음이 깃들은 것이 아니라, 더 힘찬 생명력이 분출하고 있습니다. 봄을 열은 개나리꽃이 진 자리에는 녹색의 잎새들이 자리잡고 여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부르고 있습니다. 푸른 잎새들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의 역사는 생명을 짓밟던 군인들의 횡포를 경험했습니다. 5.16과 5.18로 인하여 이 땅의 숱한 젊은이들이 생명을 꽃피우지 못한 채 죽어 갔습니다. 폭력이 현실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군사독재 체제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전두환은 죽음만도 못한 삶을 연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월은 폭력이 승리한 역사가 아니라, 폭력이 패배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푸른 오월에 온 땅을 뒤덮고 있는 신록을 통하여, 생명을 창조하시고 보전하기 위하여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생명력이 넘치는 오월의 주인공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바로 생명력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강한 자가 승리하는 피상적인 현상만을 바라보며, 약육강식의 원칙이 진리라고 여기고 있습니까? 그래서 더 강한 자가 되고 더 부유한 자가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약한 자를 통하여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까?
예언자 예레미야의 신앙과 삶이 여러분을 통하여 새롭게 현실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