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C문화영성위원회 토론회 발제문(1), 2007년 5월31일, 기독교회관강당]
주제: 기독교문화와 에큐메니칼 영성
- 문화영성위원회의 과제와 활동방향을 위한 제언-
[1] 들어가는 말: KNCC 문화영성위원회 신설의 의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제55회 총회에서 ‘KNCC 발전과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제안한 제안을 심의하여 ‘문화영성위원회’가 신설되었다. 급변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복음을 바르고 효과있게 선교하기 위한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하고 ‘문화영성 위원회’의 신설을 축하한다.
그러나, ‘문화영성위원회’라는 위원회의 명칭자체가 암시하듯이, 문화나 영성이라는 어휘는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인간 정신적 삶의 ‘의미와 깊이의 차원’이기 때문에, 문화영성위원회가 추구할 과제, 활동방향, 구체적 사업추진등은 결코 간단하지 않고 당장 실효성이 드러나는 일도 아니다. 농부가 씨뿌리고 농사짓는 맘으로 꾸준히 돌보는 자세, 예술가가 창작활동 맘으로 깨어 영감을 받아 하는 자세, 예언자가 시대를 분별하고 하늘의 말씀을 받는 소명의 태도가 요청되는 전문위원회가 아닐 수 없다.
발제자는, 20-21세기 현대신학계의 동향을 참고하면서, ‘문화영성위원회의 과제와 활동방향’을 제언하는 심정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려고 한다. [2]에서 기독교신앙․문화 ․영성이라는 세가지 주제어 사이의 바른관계성이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3]에서 한국기독교가 ‘문화영성적 선교’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성찰 [4]에서 ‘문화영성위원회’의 구체적 활동과제를 제시하려고 한다.
[2] 기독교신앙 ․문화 ․영성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
2.1. 문화와 그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세계교회협의회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복음과 문화, 문화와 선교 그 상호관계성에 대하여 19세기와는 차원이 다른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새로운 눈뜸의 본질을 간추려 보면 다음같다.
(i)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총괄적으로 표현된 ‘복음’과 지중해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서양기독교문화’ 를 동일시하는 단순한 사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양기독교문화는 복음이 서구역사와 문화상황 속에서 응답하고 창조해 온 하나의 기독교문화형태다.
(ii) 현실문화 안에는 빛과 그림자 그 양면이 있다. 문화는 복음에 순기능과 역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순기능 측면을 생각할 경우에 ‘문화 속에 육화(incarnation as inculturation)'되지 않는 복음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 그 지역의 생민(生民)들에겐 ‘생수와 생명의 떡’이 되지 못한다.
(iii) 하나님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도, ‘진리의 로고스’와 ‘생명의 영’을 통하여,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일해 오셨다. ‘창조의 영성’과 ‘문화의 다양성’은 긍정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계시의 빛’이 더 밝게 변화시키고, 자유케하고 해방시키는 힘과 의미로 증언되어야 한다.
(iv) ‘다양성 속에서 일치’는 문화선교 측면에서도 타당하다. 하나님은 지구촌의 다양한 지역문화속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다양한 색상․음색과 멜로디․예배의식과 상징표현․건축양식과 신학표현으로 찬양받기 원하신다. ‘다양성 속에서 획일성’(uniformity in diversity)은 생명의 역동성을 약화시키며, ‘차이나 다름을 통한 축복’을 단절시키고, 문화제국주의적 이념에 종교가 예속되는 ‘복음의 바벨론 포로’를 재연시킬 위험이 있다.
2.2. P. 틸리히와 R.니버의 문화신학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선교시대에로 진입
1960년대 까지만 해도, 20세기 선교신학과 문화신학의 이론적 근거는 저명한 헨드릭 크래머, 칼 바르트,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와 리챠드 니버의 영향이 에큐메니칼 교회운동의 이론적 바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틸리히는 그의 문화신학이론의 기본명제를 다음같이 피력한바 있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subtance)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form)이다”. 틸리히가 이러한 문화신학적 기본명제를 피력하는 동기는 두가지 이다. 첫째, 종교를 인간의 정신적 삶의 특수한 한가지 기능으로 축소시킴으로서, 신앙이 사적(私的) 내면세계 관심거리로 변질되어 버리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예들면, 신앙은 개인의 영혼구원과 래세적 영생에 관심 가질 뿐, 이 세상의 문화적 제반현상들인 정치사회 예술 문화제반 문제엔 관심 밖이 되고 만다. 틸리히 신학에서는 종교(신앙)란 ‘사람의 궁극적 관심’이기 때문에, 문화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의 깊이의 차원과 관계되기 마련이다. 둘째동기는, 문화는 항상 인간실존의 모호성이 깃들여있고, 어떤 경우에는 특정 문화이념이나 가치를 절대화시키는 우상화시도 혹은 마성화 유혹이 있기 때문에, 종교(복음)와 문화현상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문화라는 형태와 삶의 질 속에서 ‘생수와 생명의 떡’이 되는 일과, 복음이 ‘문화종교’라는 형태로 변질되는 것은 엄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문화신학자 틸리히의 큰 공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와서 위에서 인용한 그의 문화신학적 기본명제는 심각한 제검토를 하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다. 문제의 초점은 그 기본명제가 ‘실체-형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구조 틀에 아직도 메어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해에 의하면, 문화란 단순한 형식, 틀, 그릇, 도구,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이상이다. ‘종교는 실체, 문화는 형식’이라는 기본도식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개화기 동양의 지식인들이 실패하였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빠진다. ‘종교-문화’관계는 ‘음식물과 그릇’ 혹은 ‘몸과 의복’의 관계가 아니라 ‘씨앗과 나무’ 혹은 ‘유전자와 발현형질’ 관계라는 은유가 더 타당하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숨결이 있고 뜨거운 피가 돌고, 얼이 있다. 복음과 한국문화의 만남이란 복음이라는 내용을 한국문화라는 형식적 그릇 속에 담아 표현하는 일 그 이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문화를 일구어온 얼․ 세계관 ․가치관이 복음의 그것들과 만나 ‘가루서말 속의 누룩같은 변화’를 입게하는 것이요, 동시에 복음이 한국문화를 만나 창조적 생명력으로 꽃피어나는 창발적 사건같은 것이다.
또다른 탁월한 문화신학자로서 리챠드 니버는 한글로도 번역된 『그리스도와 문화』속에서, 시양기독교문화역사 2,000년을 되돌아보며 다섯가지 모델로서 ‘기독교와 문화’의 상호관계를 정리해 냈었다: (i) 문화에 적대하는(Christianity against Culture) 기독교 교회 (ii) 문화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Christianity above Culture) 기독교 교회 (iii) 문화와 병존하는(Christianity and Culture) 기독교 교회 (iv) 문화와 동일시된 (Christianity of Culture) 기독교 교회 (v) 문화를 변혁하는(Christianity transforming Culture) 기독교 교회가 그 모델 들이다.
리챠드 니버의 입장은 위의 다섯가지 모델들이, 각각 역사적 시대상황에서 기독교 교회가 처한 구체적인 문화상황 속에서의 신앙적 반응결과이며 대처방도였음을 말하고, 또 각각의 입장 모델에는 만만치 않는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음도 잘 정리해주었다. 그 5가지 모델 중에서도, 리챠드 니버는 그의 사상 형성과정에서 칼 바르트및와 에른스트 트뢸치의 영향을 받아 다섯 번째 모델 곧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교’를 지지 하였다. 소위 ‘복음에 의한 문화변혁설, 사회변혁설’이론의 근거가 되어, 1965-80년대 말까지 역사사회참여를 강조했던 한국 진보적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리챠드 니버의 ‘문화변혁론’은 타당한 일면이 여전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지구촌 문화의식의 급격한 변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재성찰의 계기를 맞고 있다. 문제의 초점은 두가지 이다. 첫째, ‘문화변혁론’에서 변혁의 힘과 의미는 ‘복음자체’인데, 현실 선교역사 속에서는 역사적 기독교를 ‘복음자체’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화변혁설’ 이론의 바탕에는 복음을 받아드리는 피선교국의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피동적인 수용인으로 간주하고, 오직 복음만이 능동적 변혁의 힘을 지닌 것으로 일방통행적 방향으로 정위된 사고체계라는 것이다.
복음이 지닌 창조적 변혁적, 심판하고 속량하는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피선교국의 문화와 사회경험이 지닌 주체적 책임성, 가치, 능동적 공헌을 고려하지 않는 선교신학구조라는 점이제3세계 선교신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한마디로 ‘복음씨앗- 피선교국 토양’이라는 도식에서 ‘토양’은 아무생명력이 없거나 심지어 제거되어야 할 잡초만 무성한 땅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자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문화신학자 유동식의 ‘풍류신학’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관련된 창조적 응답의 좋은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 복음적 영성은 한국인 종교적 심성의 원형구조인 풍류도적 영성과 만남으로서 다른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기힘든 선교결과가 발생하였다고 본다. 특히 유동식의 ‘풍류신학 선교론’은 한국인의 풍류도적 영성중의 멋으로 그가 언표하는 단어로서 표현하는 예술성․역동성․신명성이 기독교신앙의 ‘성령론적 복음주의’와 공명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한국 기독교의 ‘문화영성적 선교’분야에서 회고와 상황분석
3.1. 한국기독교가 문화영성선교에 소홀하게 된 이유
한국기독교 역사 120년은 충분한 문화-영성차원의 열매를 맺기엔 아직 이른 청년교회일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 전래역사가 타종교에 비하여 짧다는 이유외에도 복음의 문화-영성차원에서의 토착화가 지연되거나 외면되어온 몇가지 이유들을 성찰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기독교역사 제1기(1884-1910)는 기독교 전래부터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길 때까지, 이나라 역사적 상황은 반봉건운동․전통문화해체와 개화운동․반일국권회복운동의 감정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나라문화를 이끌어왔던 전통종교문화인 유교․불교․민족종교들은 생기를 상시한지 오래였다. 기독교는 서구과학문명의 전래와 함께 ‘개화의 물결’로 수용되었다. 인권존중․신분제 철폐․남녀평등․미신과 구습철폐․의술과 서구과학사상의 도입등을 촉매하는 기독교는 민중의 희망이요 지식인들의 미래비젼이었다.
그러나, 이무렵 한국에 선교사로 자원하거나 파송된 교회지도자들이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정수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세대들이고, 그들의 복음주의적 열정이 기독교문명 이외의 ‘이교문화’를 정복하거나 기독교문화로 대체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기독교수용은 곧 전통문화와의 단절과 전통문화의 파괴를 의미했다.
둘째, 한국기독교역사 제2기(1910-1945)는 항일독립운동시기요, 기독교는 문화계몽운동 시기였다. 일제의 식민통치시기에 교회는 신사참배강요와 민족주의운동의 온상이 될 위험이 있는 교회에 대한 감시로 인하여 극히 제한된 문화선교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상황에서도, 야학운동․농촌계몽운동․성경보급을 통한 한글지키기 운동․기독교 사립학교 교육사업을 통한 인간존엄과 자유평등의 교육은 이어져갔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너무나 가혹한지라, 제대로된 문화선교는 펴볼 기회조차 없었다. 일부기독교계에서는 종말론이 말세론으로 변질되어 몰역사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신비주의 운동이 퍼져가기도 했다.
셋째, 한국기독교역사 제3기(1945-1965)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닥친 민족분열과 이념적 남북대결,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교회의 분열․민주주의 초창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두차례의 혁명을 거치는 시기였다. 전반적으로 분열․대립․갈등․혼돈․파괴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념이 동아시아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 한반도에 강하게 작용하던 시기였고, 한국기독교는 미국기독교의 지원과 후원을 받아 황폐해버린 국토위에서 간신히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던 시기였다. 그 대가로 한국교회는 친미반공정책을 체질화해 갔고,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정책과 정치적 민주주의 가치를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동일시하는 ‘미국적 기독교문화’를 닮은 한국교회가 되어갔다.
넷째, 한국기독교역사 제4기(1965-1990)는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군사정부아래서 근대화․공업화․도시화를 최단기 기간에서 달성하려고 가속화하던 시기였고, 그만큼 사회적 갈등도 심했던 시기였다. 이 제4기에 한국기독교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라는 뚜렷한 색깔로 양분되었고 양진영의 복음와 선교이해에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소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대조, 성령운동교회성장강조 교단과 역사사회참여와 변혁운동을 강조하는 교단간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보수진영교단에서는 반전통문화적 기조를 강조했고 진보진영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와 신학쇄신에 자극을 받아 토착화 담론, 민중신학 담론, 문화종교신학 담론이 시도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전히 본격적 문화․영성적 측면과 복음을 연계시켜야 한다는 거교회적 자각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다섯째, 한국기독교역사 제5기(1990-현재 2007)는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시민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과학혁명과 후기산업사회가 동이트고,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지구촌인류들의 문화의식이 갑자기 만개되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대두되었다. 때마침, 1970-80년대 양적 급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속화(俗化)와 시대착오적인 종교독선 독단주의에 대하여 시민문화의 차거운 반응에 직면하면서, 한국기독교는 교회의 정화(淨化)와 교회쇄신, 그리고 영성회복을 절감하게 되었다.
3.2. 한국 기독교 4가지 교회유형과 문화영성신학 측면의 고찰
현재 한국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갖춰야 할 4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형태(Gestalt of Jesus Christ)중에서, 각각 어느 한가지 측면이 정면으로 강하게 드러나고, 다른 측면은 배면으로 물러가거나 무시되는 형국을 노정시키고 있다. 4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i) 치유자이신 영그리스도 예수(Pneuma Christ Jesus as Healer)
(ii) 속량자이신 로고스 그리스도 예수( Logos Christ Jesus as Redeemer)
(iii) 변혁자이신 예언자 그리스도 예수 (Prophetic Christ Jesus as Transformer)
(iv) 교사이신 지혜자 그리스도 예수(Sophia Christ Jesus as Teacher)
교회협의회 안에 ‘문화영성 위원회’가 전문위원회로 신설되면서, 그 명칭을 ‘문화영성’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명명된 의미를 심도깊게 성찰 할 필요가 있다. ‘영성’(spirituality)이란 개념은 이해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인간생명현상 혹은 정신적 삶이 ‘초월자 하나님의 현존으로서 성령’과의 관계성 속세서 창발되는 창조적․ 역동적 ․자기초월적 생명현상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영성’은 흔히 인간의 정신적 삶의 세가지 범주적 현상인 지성(知性 mental intelligence)․감성(感性 emotional sensibility)․덕성(德性 virtuous morality)에 덧붙여 추가한 제4의 인간정신의 현상이 아니다. 차라리, 영성은 그 세가지 능력이 하나님의 영과의 접촉 및 관계를 통하여 더 높이 고양되고 통전된 전인적 생명의 영근모습이다. ‘영성’은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고전12:28-30) 중의 한가지만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의 영적 기능만도 아니다.
영성이 바르게 성숙할수록, 지성과 감성과 덕성은 더욱더 명료하게 순수해지고 한계를 자각하고 동시에 한계를 돌파하면서 옛것을 심판하고, 변혁시키고, 치유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그 변혁의 과정은 급진적일 수도 있고, 점진적일 수도 있으며, 인간 내면의 영혼의 혁명일 수도 있고, 그 힘이 사회구조변혁에 이르기까지 사회성을 지닐 수도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거듭나게 중생시키며(요3:5),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 현존시키며(마12:28), 각종 성령의 열매들(갈5:22-23)을 맺게한다.
‘문화영성’이란 단어는 이러한 영성이 일으키는 창조적․역동적․자기초월적 결과들을 특히 문화영역에서 꽃피어나도록 할 때 ‘문화영성’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된다. 그러므로 ‘문화영성’의 개념과 과제와 범위를 다음같은 다섯가지 테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테제1. ‘문화영성’은 인간의 문화적 활동들이 ‘창조의 영이시며 생명의 영’이신 성령과의 끊임없는 조우를 통하여, 문화활동이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되도록’ 추동하고 촉매하는데 있다.
테제2. ‘문화영성’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인간의 문화창조활동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과 창조성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동시에 ‘문화영성’은 문화가 지닌 마성적 위험과 ‘가치의 우상화’를 복음의 빛으로 비판하고 인간을 해방시킨다.
테제3. ‘문화영성’은 기독교복음이 지시하는 가치들과 비젼들을 이념적 혹은 형태적 문화형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성육화’ 시킴으로써 ‘생명의 떡과 생수’가 되게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이 먹고마셔 영생을 얻도록 그리스도를 ‘성례전적으로․상징적으로“(sacramentally-symbolically) 매개하는 기능을 감당하도록 한다.
테제4. ‘문화영성’은 문화의 장르가 다양함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문화선교’의 주역들로서 복음선교와 하나님나라 확장에 기쁨으로 동참하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의 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
테제5. ‘문화영성’의 관심영역은 문화영역의 전문성과 다양성에 상응하지만, 특히 (i)생명문화 창달을 위한 문화이념 비판 (ii) 복음의 한국정신문화와 및 현대사조와 대화 및 통섭과제 (iii) 음악 미술 연극 시문학 건축등 문예예술적 창조활동 (iv) 예배의 경건성을 헤치지 않는 영상매체와 IT문화 활용과제 (v) 기독교적 상제례 예식 정립과 이웃종교와의 대화협력 과제들이 중요하다.
[4] ‘문화영성위원회’의 구체적 연구과제
위 테제5에서 발제자는 이미 5가지 분야의 중요한 ‘문화영성’관계의 선교신학적 과제를 제시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각 항목의 중점과제를 언급하자면 아래와 같다.
4.1. 생명문화 창달을 위한 문화이념 비판 영역
‘문화영성 위원회’는 세속적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문화가치체계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정치사회적 이념들 속에 내포된 반복음적이고 마성적인 요소를 폭로 비판하는 문화이념비판적 과제에 관심해야 한다. 이 과제는 이론적이고 매우 문화신학적이어서, 좁은 의미의 문화영성 운동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홀히 생각하기 쉬운 과제이다.
그러나, 항해하는 배가 어디로가고 있는지, 오늘의 ‘공중권세 잡은자들’이 백성을 끌고가려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생활의 구체적 삶이 ‘세계-내-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므로,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적 우상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별해 내고, 비판적으로 극복하게하면서, 새로운 가치질서와 세계관 형성에 촉매적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21세기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생태계와 자연파괴가 가속화되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지구촌의 절대빈곤층의 생명을 살려내는 이른바 ‘생명문화’ 창달에 최우선 과제와 목표를 두어야 한다. 창조주․사람․자연 삼자(三者)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시급하다. 생태학적 윤리란 무엇인가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다수 한국 기독교 교회지도자들이 의례히 당연시하는 소위 ‘세계화’라고 부르는 강대국중심의 신자본주의적 정치경제학 이념이, 어떤 점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부합되고, 어떤 점에서 비판적으로 극복되어야할 이념인지 명료하게 밣혀내면서 보다 바람직한 ‘제3의 길’을 꾸준히 제시하는 비젼제시과제수행이 중요하다. 이 과제는 기독교사회윤리학, 생태여성신학, 사회양극화 극복의 연구결과와 밀접한 관계를 지속시켜나가야 한다.
4.2. 복음의 한국정신문화 및 현대사조와의 대화 및 응전의 과제
이 과제 또한 매우 이론신학적 면이 강하지만, 복음이 전통문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문화영성신학적 방향제시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천주교와 비교 할 때,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이점에서 매우 약한 편이다. 다행히 근래에 민속학이나 민속종교, 유교의 양명학이 말하는 ‘심즉리’ 철학과 수행방법연구, 동학사상과 생명신학관계, 특히 유동식 교수의 ‘풍류신학’ 연구결과가 매우 중요한 결실로서 축적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둘째번 ‘문화영성 선교사업’들은 한국의 ‘문화신학회’ 연구결과를 활용하고 상호 밀접한 유대관계를 지속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성직자나 예배위원들이 착용하는 가운이나 복식(服飾)이 기독교의 경우 너무나 연구되어있지 못한 상태이다. 간단한 문제같지만, 깊이 연구하여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현대는 과학이 국민의 일상생활을 이끌어가는 시대이다. 특히 생명기술과학(BT)이나
정보기술과학(IT)은 단순한 기술과학적 기능을 넘어서 젊은 세대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형국이다. 예들면, 분자생물학자 에드원드 윌선(Edward Wilson)은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나 『지식의 대통합 : 통섭』(CONSILIENCE)과 같은 저서를 통하여 물질주의적 환원주의 세계관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영성 위원회가 이런 문제를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20세기 전반기에 유물론적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기독교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던 것처럼, 21세기는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인간의 문화영성을 ‘물질주의적 환원주의’로서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4.3. 음악․ 미술․ 연극․ 시문학․건축등 문예예술적 창조활동
이제 보다 실천적 과제로서 ‘문화영성 위원회’가 가장 깊은 관심과 연구기회사업을 벌여야 할 영역이 전문적인 문예예술적 창조활동과 관련된 사업일 것이다. 이 분야는 한국 기독교역사 120년이 흘렀기에 매우 역량있는 전문가들이 상당수 배출되어 있지만, “구슬 서말도 실로서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기독교지도층이나 연합기구들이 이들의 창조적 활동을 격려 지원하고, 정기적 발표의 장(場)을 마련해주지 못한데서 정체상태라고 보아야 한다.한국 기독교가 개교회 중심적이거나 교단중심적인 근시안적 선교정책 때문에 발생한 매우 유감스런 현상이다.
우선 음악분야는 그 중에서도 가장 형편이 좋은 상황이다. 주일마다 정기예배나 교회력에 따르는 축제로서 음악이 필수불가결인 ‘시공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발간된 ‘새찬송가’는 이전의 588곡에서 645곡으로 확충보완하고 새롭게 편집속에 들어간 대부분의 곡들이 한국인의 작사․작곡자 들의 작품일 것은 기뻐 할 일이다. 부활절․추수감사절․성탄절등 교회절기에 정기연합성가대 공연과 활동이 그나마 음악분야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을 알려온 셈이다.
한국교회들 중에서 연극이라는 예술장르를 통한 복음의 표현과 선교는 추석을 한국교회 추수감사절로 고백하고 지켜온 경동교회의 풍부한 인적자원들(이강백, 김문환, 박수길, 최승환등)에 의하여 창조적 활동으로 시도되어 왔으나, 한국교회 전반적 상황은 아직 미개척분야라 할 수 있다.
기독교 미술과 교회건축분야 같은 시각예술분야는 음악이나 연극분야에 비하여 아주활동이 침체된 상태라고 진단된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미술가나 건축가의 인적자원이 부족한때문도 아니고 그들의 창작활동 및 역량부족도 아니다. 범교단적 기독교 연합체의 관심과 지원 및 기획사업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본다. 예를 든다면, 한국 기독교교세의 1/18에 해당하는 원불교 종단에서는 몇 년전 종단 창립행사의 일환으로서 원불교의 상징인 ‘일원상’(一圓相)을 테마로하는 미술작품전시회가 원광대학에서 열렸다. 동그라미 원을 중심테마로하는 다양한 미술작품전시회는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외국인으로서 기조강연자로 초빙되었던 한스 큉교수를 비롯한 서구종교인들의 주목을 받은바 있었다.
기독교는 훨씬 풍부한 시각적 예술표현을 기다리는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예들면 은총의 빛․생명의 떡과 생수․하나님의 모성적 긍휼심․ 용서와 신생․육화(肉化)․성령의 생기등 무진장 할 것이다. KNCC와 한기총이 연합하여 기금을 모으고, 봄가을 한차례씩 미술 국전(國展)에 버금가는 작품전시회를 마련할 만한 역량이 갖춰졌다고 본다. 그리하면, 한국 교회당 안에도 ‘문자’로만 장식된 건물내부 공간들이 종교적 영감으로 가득찬 미술작품들로 균형을 이루며 걸리게 될 때,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영성은 무언중에 자라 갈 것이다. 시문학이나 교회건축분야의 언급은 같은 취지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4.4. 예배의 경건성을 해치지 않는 영상매체 선용문제
요즘 생각있는 교인들은 ‘예배의 위기’ 시대라고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예배시간은 기독교신앙의 심장박동과 같은 기능에 해당한다. 예배는 종교활동의 핵심이다. R. 오토가 갈파한바와 같이 ‘경외의 신비와 황홀의 신비’(Mysterium Tremendum & Mysterium Fascinosum)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생명이 정화되고 생명으로 재충전되는 거룩한 시간이다. 본래 한국 기독교 예배분위기는 초장기 선교사들이 대체로 ‘복음주의적 경건주의 전통’의 영향을 받고 훈련되었던 지도층이었기에, 대체로 예배분위기는 경건성을 잘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영상매체의 발달과 전자기 음향기기의 무분별한 남용은 예배를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고 생각 할정도로 위험수위가 심각하다.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당 전면 공간은 청년들의 ‘찬양예배’ 음악 악기들로 배치되어있고, 교회당 천장이나 공간 뒷면은 조명등이나 각종 전자확성기 장치로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예배분위기가 한국인의 탈선된 풍류적 감성기질과 야합하여 한바탕 집단흥분의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본예배가 진행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은 내면적 심령부흥이 아니고, 집단심리적 감정북돋기에 불과하다.
예배는 영혼의 깊은 울림과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경건하고도 환희에 찬 감사분위기 곧 회개․용서․감사․찬양․헌신같은 숭고한 영혼의 정화와 고양체험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문화영성 위원회’는 영상매체와 전자기적 기술공학 음향기기들을 어떻게 예배에 올바르게 선용될 수 있을가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가며 진지하게 연구하고 교회들로 하여금 ‘바르게 예배드리기’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4.5. 기독교적 상제례 의식의 정립과 이웃종교와의 대화협력증진 방안 연구영역
어느 종교가 새롭게 특정문화공동체에 전파해 들어온 후, 그 문화공동체에 완전히 토착화되었는지 여부는 상제례 의식(儀式)으로서 자리잡았는지의 사실로서 판단 할 수 있다. 유교나 불교가 한국에 전파해온 후에, 유교적 혹은 불교적 상제례 의식이 자리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독교가 한국민에게 완전한 토착된 종교로서 느껴지지 않고 서구종교로서 인지되는 것은 ‘喪祭禮儀式’이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례와 제례는 아직 기독교적신앙으로 토착화 되어있지 못하다. 특히 제례는 ‘추모식’이나 ‘추모기도회’정도로 그치고 있다. 유교의 제례엔 가정의 가장이 제례를 주관하는 집례자 가 되어 유교가 정한 제례의 법도대로 행하면서 그 나름데로 종교적의식을 온가정이 잘 지낸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우는 흔히 교역자가 와서 ‘추모가정예배’를 인도하며, 제상을 진설하거나 절을 하는 모든 의례를 다 버렸기 때문에 먼저 타계한 가족식구와 이 땅에 아직 남아 있는 가족식들과의 ‘영적 교감이나 감응의 시간’이 박탈당해버린 것이다. 추모예배는 남아 있는자의 도덕적-영적 재다짐 시간으로서 그 의미가 반감되어 버렸다.
추석, 신정, 기일(忌日)에 성묘를 갔을 경우에도 ‘단순하고도 의미심장한 추모의 몸짓’에 관하여 전통적인 음식진설․향피우기 ․절하기등의 행위의례를 폐기 금지시킨대신 다른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한두가지 아니다. 제사문제로 순교자 10,000명을 배출한 한국 천주교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상제례의 토착화에 성공한 후에 선교현장에서 상당한 전진을 이루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음식차리기나 향피우기를 다시 복원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추모의 예로서 절하는 예식’을 우상앞에 절하는 것과 동일하게 해석하는 율법적 금계단죄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을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지 않는지 연구 할 필요가 있다.
종교간의 대화협력의 정신은 기독교를 혼합주의로 만든다던지 선교를 약화시킨다는 논리는 근거가 박약한 것이다. 포용주의 입장을 취하는 한국 천주교회가 그 좋은 방증(傍證)이 된다. 어차피 한국사회는 불교․유교․천도교․원불교등 다양한 종교에 귀의 하는 사람들과 공존해야 할 종교다원사회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적․독선적 태도는 기독교선교의 장(場)을 스스로 축소시키고 닫아버리는 심각한 문제점이 되어가고 있음을 직시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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