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의 방한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특히 오늘 한일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교류와 협력증진을 논함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입니다. 어느 국가보다도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입니다. 국가 간 거리가 1시간 거리입니다. 양국 사이에는 문화나 역사나 인적조건도 가장 유사한 국가입니다.
또한 양국의 기독교는 더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기독교라는 동질의 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교회라는 동질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일 교회는 지금까지도 많은 교류를 이루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증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양국 기독교간에 활발한 교류나 증진을 도모하는데 몇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례적인 교류입니다. 지금까지 한일 기독교간의 교류는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부정기적 만남이라는 말은 깊은 교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를 정기적인 교류로 발전시킨다면 양국 기독교간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는 교류의 파트너쉽 입니다. 그동안 일본 기독교는 한국교회의 기구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그동안 교류해 왔던 한기총은 현재 더 이상 교류할 명분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일본 기독교는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차제에 일본 기독교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정기적인 교류를 통하여 관계를 증진할 것을 제안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 어려울 때 돕는 일입니다. 지난번 일본의 원전 폭발 사고 때 한국교회가 도왔던 일이 한 가지 사례일 수 있습니다. 이웃 국가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양국 모두에게 복된 일입니다. 한일 양국의 교회가 돈독한 관계의 증진을 이루고 있을 때 이와 같이 서로 격려하는 일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는 거시적인 방안입니다. 한일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일관계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한 번도 시원스럽게 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일 간 기독교의 만남에서 매번 나오는 말이 지난 역사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언급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마음을 흔쾌하게 열고 교류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번 사과한다는 말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말로 들리기 쉽습니다.
차제에 일본 기독교에서 이 역사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할 수는 없는 일인지, 이 일을 일본 기독교가 앞장서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일본 국내사정은 여의치 않을 것입니다. 극우적 정부가 들어서서 지난 정권 때 사죄한 내용까지 부정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기독교계가 나서서 어떤 반론을 제기하였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일본 기독교계가 기독교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강하게 정부에 요구하여 관철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지, 그리고 이제는 이 과거문제는 떨쳐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자 하고 선언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 한일 간의 모든 분야의 교류 증진은 이 지점에서 급진전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