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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존재론적 겸손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


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베리타스 DB

1.

대학시절 학부생이 책을 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자가 나와 거의 같은 나이의 경영대 학생이었을 것이다. 역시 20년도 더 된 내 희미한 기억에 기대자면 제목은 『배우려는 자의 교만』이었던 것 같다. 교내 서점에서 대강 들춰본 그의 책 내용은 여벌이었지만 내가 끌린 건 순전히 그 제목의 도발적인 인상이었다. 아, 교만이 이러한 수사적 맥락에서는 근사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전통 기독교의 분위기에서 훈육받아온 내가 가끔 그 기독교의 최고 미덕인 겸손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의 목소리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성자 어거스틴이 첫째도 겸손,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삶의 지표를 제시했다는 얘기의 틈새로 그 비판은 늘 일리의 매력을 동반했다. 요컨대, 겸손이라는 게 대체로 인간관계의 부드러운 타협과 능란한 처세술, 상황의 조율을 위한 외교적인 제스처로 전락한 나머지 ‘교만한 겸손’을 양산한다는 지적이었다. 남들 앞에서 무조건 굽실거리고 겸양한 표정과 어투와 몸짓으로 대하는 것이 기실 겸손이 아니라 비굴이라는 질타도 곧잘 들려왔다. 위장된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물론 반론이 전혀 없을 수 없었다.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동물의 실존적 한계상황에서 자신의 겉과 속이 동일하고서는 도무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통찰대로 쾌락원칙에 따라 살고자 하는 내면의 정직한 욕망이 현실원칙의 규제를 받지 않으면 이 세상은 폭력과 혼란이 창궐한 아수라가 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이 어느 한 작품에서 자기는 겉과 속이 같은 척하는 사람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투로 말한 것도 위장된 겸손이라는 외교적 수사의 필연성과 유용함을 측면 지원하는 원군이 되었다.

이처럼 겸손과 교만의 이항대립 속에 파열음을 내오던 내 생의 족적이 교만한 겸손과 도저한 교만의 양극에서 파동 치면서 한동안 오락가락과 갈팡질팡의 행보를 내비치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런 생태적 욕구의 한 변용으로서의 교만, 또는 구태와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지경을 향해 탐구하려는 자의 도전적인 몸부림의 한 양태로서의 교만을 퍽 그럴듯하게 미화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청정한 삶의 심연에 다다르고자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향해 순명의 자세를 다하는 서늘한 겸손의 아름다움을 마구 외면하기란 어려웠다.

2.

그러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다다른 겸손의 또 다른 층위가 바로 ‘존재론적 겸손’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자처한 삶의 자리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서 겸손이란 말의 수사적 외피를 벗고 진정성을 시위하는 종류의 자기 해체적 겸손이다. 이 세속의 기준대로라면 뻔히 실패할 줄 알면서도 굳이 고단한 좁은 길을 택하여 뜨거운 상징으로 사는 삶의 자세가 바로 그런 겸손의 방식이다. 내가 아는 아무개들은 그 출신배경이나 학벌, 이런저런 전문분야의 역량에 비추어 21세기 자본제의 현실을 폭넓게 아우르면서 출세하고 성공하여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낮은 자리에 처하여 고난의 진창을 낮은 포복으로 빡빡 기고 있다. 일부러 즐기면서, 버거울 땐 묵묵히 감내하면서, 이들은 저임금과 고단한 노동을 자처하고 가난을 벗 삼아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기득권 세력과의 긴장과 대치가 불가피할 때는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사회의 약자들과 연대하길 좋아한다.

별스런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사회적 존경이나 인정의 수준이 취약한데도 이런저런 시민단체와 각종 개혁운동에 투신하여 100만원 안팎의 월급으로 자원봉사 하듯 살아가는 이들이 그 부류이다. 시골교회 교역자로 자원하여 최저생계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형편 가운데 자족하면서 노쇠하고 황량한 땅의 청지기로 꿋꿋이 버티는 이들도 있다. 먼 이역만리 오지로 들어가 온 가족이 선교현장에서 낯선 타인을 이웃으로 영접하고 섬기면서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결기와 사명감으로 목숨 바쳐 일하는 선교사들도 존재론적 겸손을 일상 속에 체화한 족속들로 보인다.

3.

그러나 그렇게 자처한 장소와 위탁받은 타이틀은 존재론적 겸손의 출발점은 될망정 완성은 아니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 온갖 잡동사니 변수가 넘실거리는 만만찮은 과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한 명분을 쫓아 지독한 고난으로 점철된 삶의 여정이 자가당착의 엇박자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와 의로운 투쟁이, 개혁의 일선에 선 헌신적 희생이, 선교의 사명을 쫓아 탈주한 초월적 삶의 자리가 도리어 그 최초의 의도를 배반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함정이 되는 경우도 잦다.

가령, A는 민주화 운동 시절 지독한 옥고를 치르면서 험한 세월을 헤쳐 온 분이다. 그 고난의 체험을 우려낸 그의 책 한 권은 스테디셀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가 고난의 경험을 온축시켜 쌓아온 상징권력은 그의 명성을 아는 처처의 대다수 독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삶의 귀감이 되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매체의 원고청탁을 줄곧 거부해왔다. 내가 들은 원인인즉 그러한 매체들이 자기의 ‘급’에 맞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회적 명성이 유통되는 지형에서 지켜야 할 개인의 자존감과 사회적 섬김의 자리에서 발현되어야 할 겸손이 충돌하면서 기묘한 자가당착을 낳는 경우다. 내 보기에 그가 한 시절 추구해온 겸손한 고난의 삶과 그 뜨거운 상징은 진정성의 오리무중 상태에서 지금 그 자취조차 희미해져버렸다. 겸손이 존재의 심장을 벗어난 탓이려니 한다.

B 역시 민족과 민중을 향한 애정이 뜨거운 기독교 목사이다. 웬만한 정보력을 지닌 이 땅의 기독교인이라면 언론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그의 이름 석 자에 익숙할 거다.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활약상도 대단하고 고난받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의식도 출중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만나고 접한 그는 능글능글한 어투와 냉소가 체질화된 사람처럼 보였다. 공영방송에서 초청 패널에게 지켜야 할 인지상정의 예절은 온데간데없고 치기 어린 분노의 말을 토해낸 적도 있었다.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가 등치된 노선에서 외줄을 타는 듯한 언행을 자주 드러낸다. 소박하고 빈한한 자리에 초청받는 경우, 시간 약속을 어기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뻔뻔함의 속내를 헤아리기란 참 쉽지 않다. 그가 자처한 존재론적 겸손의 자리와 삶의 지향점이 일상의 소소한 태도나 언행과 어긋나는 사례다.

반면 C 역시 A와 B의 족적과 같은 방향에서 유사한 삶의 지향점을 가지고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는 활동에 열심이었지만 막상 만나 대화해보니 투사답게 거칠고 당당하리라는 내 선입견과는 딴판이었다. 그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 극진한 온기가 넘쳤고 시종일관 소박하고 겸손한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다. 자신의 성취와 성과를 보잘 것 없이 여기며 상대방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흔히 봐온 겸양의 자세가 편하게 다가왔다. 이른바 ‘외교적 겸손’의 모범생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일관된 삶의 지향점과 족적이 그 ‘외교’의 표피를 상쇄하고도 남을 무게로 느껴졌다.

4.

존재론적 겸손을 지탱해주는 자처한 삶의 고난이 어떻게 펼쳐지느냐가 중요하다. 고난이 다 아름다운 결실로 귀착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고난의 여정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의 길이 있다면 반대로 ‘아픈 만큼 망가지고’의 길도 있다. 이 갈림길의 교육적 배경은 멀리 플라톤과 스토아 사상으로 소급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도 그 사상의 지형 속에 한 가닥 걸쳐진다. 내가 헌신과 희생이란 말의 부정성을 발견하는 맥락은 바로 후자의 경우이다. 선한 명분에 입각하여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는데 그 삶이 피워내는 일상 속의 꽃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처럼 이타적 희생의 삶을 통해 지극한 존재론적 겸손의 자리로 내려왔는데, 그 고난의 아들이 괴물처럼 뒤틀리고 흉측한 모습으로 출몰하더라는 것이다.

이렇듯 존재론적 겸손의 길은 험하고 멀다. 그 종말의 꽃과 열매를 보기 전에 그 명분과 자리만으로 섣부르게 겸손을 논하고 재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차라리 욕망의 존재로서 인간이 그 체질상 도무지 겸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존재론적 겸손의 희망이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교만한 모습을 순간순간 투시하면서 그 언행심사를 틈틈이 성찰의 풀무질과 회개의 담금질로 단련해나갈 때 이른바 ‘외교적 겸손’의 수사조차 겸손한 빌미가 되어 제 몸과 삶 속에 진정한 겸손의 알속을 키워나가며 그걸 조금씩 체질화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겸손한 삶의 지향이 일상의 겸손한 마음의 풍경에 물들고 그 언어에 스며야, 마침내 겸손한 몸으로 성육할 수 있겠다. 제 앎과 사상, 이타적 헌신과 희생의 최대치를 하나님의 의를 향한 그저 그런 자기 의의 연습으로 되돌릴 만한 여유와 유머가 싹틀 때 우리는 대낮에 치열하게 투쟁한 연후 소박한 저녁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환한 대낮의 광명을 지어주신 뒤 캄캄하고 서늘한 밤의 시간을 허락하신 겸손한 하나님의 섭리다. 그 섭리의 선순환이 우리의 생체 리듬 속으로 물꼬를 틀 때 존재론적 겸손은 덤덤한 일상 가운데 담담하게 자생하며 자라날 수 있다. 그 성장의 극점에서 이 대안적 겸손은 ‘존재론’의 수사적 외피조차 벗어던지고 장난기 짙은 수더분한 얼굴로 스리슬쩍 우리 가운데 출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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