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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그리운 금강산?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설교
1998. 11. 22.
그리운 금강산?
(시편 95: 1-7, 로마서 8: 19-22)

열린 뱃길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부터 2000년 이전에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들에게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귀와 마음을 두드리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오늘 아침에 받아 든 신문처럼 읽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아침에 읽는 신문을 오늘의 시간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일을 파악하려는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벌어지는 숱한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성서와 신문을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오늘의 삶의 현실을 향한 증언으로서 어떤 메시지가 요청되는지 숙고하면서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지난주에 발생한 사건들 가운데 어떤 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무엇보다도, 분단 반세기만에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다는 사건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수요일(1998. 11. 18.) 오후 5시 43분 금강산 관광객 등 1400여명을 태운 현대금강호가 동해항에서 역사적인 첫 출항을 감행했다는 것은, 관광객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감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의 첫 출항으로 그 의미가 축소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념사처럼, 이 일은 "남북간 대규모 인적 교류의 첫물꼬를 트는 뜻깊은"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결코 발생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기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들, 그리고 금강산 관광도중에도 발생한 간첩선박 침투 의혹 등 숱한 장애요인들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위한 뱃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 앞에서 저는 오늘의 메시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곡의 제목인 "그리운 금강산"을 오늘의 말씀을 위한 제목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설교준비 과정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노래 가사가 단순히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제목에 "?"를 첨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그러나 짓밟힌 산? 그러므로 탈환해야 하는 산?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2.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후렴)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우리가 무심코 즐겨 듣던 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1962년 6. 25전쟁 12주년을 맞아 문공부의 청탁을 받아 한상억이 작사하고, 최영섭이 작곡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분단으로 인하여 갈 수 없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는 금강산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냉전 이데올로기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강산은 짓밟히고 더럽혀졌으며, '자유만민'의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아름다운 자태가 가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산이 그렇게 더럽혀지고 짓밟혔을까요? 이른 바 '자유만민'이 소유하고 관광할 수 있는 산이 아니라면 그 아름다운 자태도 빛을 잃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즐겨 듣는 가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분단극복의 의지와 꿈을 심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분단으로 인한 원한과 증오심 그리고 편견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곡의 내용과는 달리 금강산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합니다. 금강산 관광 탐사팀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소감은 한마디로 "금강산은 역시 금강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산은 여전히 거기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분단으로 인한 비극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공산치하에서도 여전히 그 산은 말 그대로 '금강산'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 산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던 저 노랫말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자유만민'의 '맺힌 원한'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에서 히브리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야훼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왕이시다.
땅의 깊은 곳도 그 손안에 있고,
산의 높은 꼭대기도 그의 것이다.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지으신 것이다.
마른땅도 그가 손으로 빚으신 것이다."(시편 95: 3-5)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마도 이 시편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씌어졌으리라 추측됩니다. 여기에서 히브리 신앙인들은 그들에게 고통과 고난을 안겨 주는 모든 세계사적인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야훼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땅의 깊은 곳도, 산꼭대기도, 바다도, 심지어 마른땅마저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설령 세계 한복판에서 강자들과 부한자들이 동료인간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실 때문에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손상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야훼는 '크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왕'이십니다. 인간의 자연환경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고 인간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자연환경이 인간들의 범죄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전되는 것은 바로 이 '크신 하나님', '뛰어나신 왕'의 은총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금강산도 '공산주의자들'의 것이거나 이른바 '자유만민'의 것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전하시는 것입니다. 지배자들이 만들어 놓은 체제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것들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비극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이 여전히 금강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은 야훼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 하나님의 보살핌과 돌봄이 거기에도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산을 소유하고 가꾸고 보살피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산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더럽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자들에 의하여 더 아름답게 보전될 수도 없습니다.

금강산이 반세기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강산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이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저 히브리 신앙인처럼 그 산을 거기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금강산

금강산은 금강산일 뿐입니다. 그것은 더럽혀진 산이 아니며, 더럽혀질 수 있는 산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이 더럽혀지고 짓밟혀졌다고 노래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양, 하나님께서 보살피고 보전하시는 대상이 아닌 양 여겼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북한의 땅과 바다, 하늘을, 그리고 그 안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님의 은총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와 체제 때문에 억압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면서도, 우리들 자신도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저 가곡 "그리운 금강산"에서 우리 스스로를 '자유만민'이라 부르던 그 시대에 우리는 군사독재체제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노랫말 속의 '자유'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였습니다. 실상 금강산이 더럽혀진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우리 스스로가 금강산을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으므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들의 죄와 악으로 인하여 피조물들마저 신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은 구원에 참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 창조의 때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 곧 하나님을 대신하여 책임 있게 자연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깨닫기보다는 우리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서 착취하고 이용하려고만 듭니다. 그 결과 자연환경은 파괴되고 결국 인간의 생존자체가 위협받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발길이 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금강산을 이데올로기로 더럽혀 왔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진정으로 노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럽혀진 땅, 아름다워서는 안 되는 땅으로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금강산을 다시 금강산으로 바라보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연한 일이 현실화되기까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했습니까! 지금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숱한 음모들과 방해들이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수입으로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면 어쩌냐는 우려에서부터, 북핵시설에 대한 의혹제기, 잠수정 침투와 "간첩선" 출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금강산 관광 길을 막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남한에나 북한에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여전히 분단으로 인하여 이익을 누리고 특권까지 누리던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남북교류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며칠전(98. 11. 14.) 국회에서 진행된 대정부 질문에서는 햇볕정책 및 금강산 관광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동복(자민련) 의원은, "황혼기에 접어든 노기업가의 감상적 귀소본능과 현대 특유의 상업주의에 의해 맹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설령 이 사업이 '감상적 귀소본능'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분단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연인에게 아직 남아 있는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더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회의석상에서 정형근(한나라당) 의원은 "현대 그룹이 연간 2억달러씩 바치는 금강산 수익금이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겠느냐"고 추궁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추궁이 어떻게 '총격요청' 사건의 진원지에서 제기되고 있는지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강경책 일변도로 나갔던 김영삼 정부보다는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는 현정부가 오히려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한민족의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간인 교류가 오히려 남북 군비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은 지속되어야 하며, 그것을 통하여 금강산을 금강산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경제적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금강산 개발'로 인하여 금강산이 훼손되고 그곳에도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금강산이 더럽혀질 위험은 바로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인간에 의해 정복될 때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칭하는 우리가 남한의 산과 강, 그리고 심지어 바다까지도 어떻게 더럽혔는가 돌이켜 볼 때, 금강산 관광에서는 관광의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스타일이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즉 관광을 통해 그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산에 의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발생하여야 할 것입니다.

통일을 꿈꾸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수 없습니다. 그 노래가 불려지던 시대는 갔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재발견한 금강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던 그릇된 선입견이 극복되고 왜곡된 인식이 바로 잡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방향전환을 추구할 때에만이 금강산 관광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북녘 땅에 아직도 남아 있을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금강산 관광이 평화통일의 길을 닦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아름다운 가곡대신에 문익환 목사님께서 남기신 시, '꿈을 비는 마음'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만은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에서 문목사님은 그의 꿈을 소개합니다: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다라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이하 생략)..... "

그는 유신독재의 칼날이 서슬 시퍼렇게 살아 있던 1977년, 세칭 '명동사건'의 주범으로 전주교도소에 갇힌 몸이 되어 그의 말대로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냉전체제로 야기된 민족의 비극을 묻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문목사님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향하여 비난하거나 원한을 품는 것으로는 비극의 역사가 끝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남과 북이 함께 분단시대의 희생자였음을 인식하고 그 희생과 그 원한을 함께 '합장'하고 그 무덤에서부터, 곧 공동의 희생과 아픔과 슬픔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산천초목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그의 꿈을 몽상가의 잠꼬대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는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남한의 국민 누구보다도 앞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제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꿈이 현실화되려 합니다. 그것은 문목사님을 비롯한 숱한 민주인사들의 희생과 고난, 그리고 그들이 간직했던 꿈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김대중 정부의 굳건한 화해정책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꿈의 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에 저항하여 이 꿈이 완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귀환중인 관광객들은 "역시 금강산"이었다고 그들의 감격을 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역시 같은 동족이라는 느낌도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금강산이 제대로 보이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시대가 열리려 합니다.

금강산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듯이, 북한 주민들도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저 아름다운 산 앞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방식, 그리고 행동방식 역시 평화통일 지향적인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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