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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예언자들의 무덤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 설교
2000. 3.5.
예언자들의 무덤
(미가 3:1-4, 마태 23:25-36)
윤응진

1. 3.1절 '행사'유감

저는 먼저 지난 3.1절 관련 신문 보도들을 몇 군데 인용하겠습니다:

- 김대통령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3·1절 기념식 연설을 통해 “지역주의는 3·1정신을 거역한, 민족에 대한 죄악으로 우리는 이를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세계화 시대를 맞아 남북한조차 화해해야 하는 시대인데 대한민국 내에서 지역을 가르고서 우리가 어찌 선열들을 대할 면목이 있겠느냐”며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주의를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나라당 이사철(李思哲) 대변인은 '3.1절’을 맞아 논평을 내고 “먼저 가신 순국선열에 깊이 머리 조아려 경의를 표한다”며 "81년 전 그 날 울려 퍼졌던 만세함성소리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또 “자주, 독립은 새로운 형태로 국민들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황제적 권위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오늘의 외침이기도 하다”면서“새 천년 새로운 세기를 맞아 제2의 독립만세를 불러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 민주당, 자민련, 한나라당, 민국당 등 여야 4당은 3.1절인 1일 총선 홍보전의 일환으로 독특한 3.1절 이벤트 경쟁을 벌였다. 민주당은 총선 출마자들 가운데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앞장서 보훈병원에 입원중인 애국지사를 위문했고, 자민련은 이한동(李漢東) 총재가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돼 있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했으며, 한나라당과 민국당은 30분 차이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3.1 운동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투쟁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우리는, 3.1절 기념행사가 81년 전에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선열들의 투쟁이 지니는 오늘의 의미를 되살리려 노력했다기보다는 대부분 총선을 앞 둔 각 정당의 정치선전 도구로 이용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3.1절을 정당의 정략적 선전도구로 삼는 것은 3.1 운동에 참여했던 선열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3.1 운동을 초래했던 불행한 역사를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3.1 운동은 나라 잃은 민초들의 비폭력 저항투쟁이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선말기의 정치 지배자들과 사회 지도층은 무능하고 무책임하였으며, 부패하고 타락하여 정치적 파산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나라의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송두리째 강탈당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초래한 비극적 역사 속에서 고난은 고스란히 민초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므로 3.1 독립만세 사건은 다만 일제에 대한 저항 투쟁만이 아니라, 조선의 사악한 지배계급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민초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를 전환시키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3.1 절을 기념할 때마다 우리는 일제의 만행만이 아니라, 동시에 민족의 고난을 초래한 조선의 지배자들의 죄악을 되새기며, 아울러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선조들의 투쟁정신을 계승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이 나라를 지배하는 자들은 조선말기의 지배자들과 진정으로 얼마나 다를까요? 그들은 제국주의 세력들의 침투를 막아내기 위해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이 나라의 민초들의 정치적 경제적 삶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권력과 부를 누리던 자들, 쿠데타로 나라를 송두리째 강탈했던 자들, 군사독재체제에 저항하던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처벌하던 자들, 그리고 부정부패와 무능때문에 나라를 경제적 파멸로 이끈 장본인들 - 그 범죄자들이 여전히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며 큰소리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망합니다. 바로 그들이 저 3.1 정신을 짓밟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단지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알리바이' 때문에, 아니 저 3.1 운동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국선열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자신들에 대한 기만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순된 현실을 바라보면서,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세우면서도 그들의 뜻을 거스르던 이스라엘 지도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이 귀를 기울여야 했던 예언자의 말씀은 무엇이었던가요? 그들이 예언의 말씀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다보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3.1 운동의 의의를 왜곡시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 이스라엘의 예언자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흔히 오해하듯이 미래를 점치는 점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적 신앙인들에게 미래는 늘 인간들의 결단에 따라 변화 가능한 것, 즉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늘 보다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현실화하기 위해 인간들의 철저한 회개, 곧 생각과 삶의 방식의 방향전환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을 대변인으로 부른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하나님 야훼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을 위하여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늘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예로서 예언자 미가의 예언을 경청하였습니다. 그의 예언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인으로서 기원전 8세기 초에 활동했습니다(예 26:18, 사1:1). 따라서 그는 사마리아 함락(BC. 721)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정치적 격동기에 활동한 것입니다. 당시는 아시리아 제국이 팔레스틴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왕은 아시리아에 도전했다가 패망하였으므로, 유다왕국은 아시리아에게 막중한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아시리아에 보낼 조공을 마련해야하는 일은 유다왕국의 가난한 민중들의 몫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고통분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배자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한 반면에, 민중들의 삶만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가는 지금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예언합니다:

"야곱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미가 3:1-2)

지도자들은 법질서를 알고 있고 그것을 정당하게 집행할 당연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법질서란 하나님의 계명들로서 강한 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약한 자들을 보호하고 부자들의 착취로부터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최우선적 임무는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줄 토대인 법을 수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선을 사랑한다는 것과 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미가 3:2, 암 5:14). 법과 도덕에 대한 그들의 기본자세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과 특권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법은 지배자들이 가난한 백성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오히려 억압하고 착취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법은 하나님의 계약 및 공동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지침이 아니라, 권력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지배자들의 범죄를 매우 상징적이고 입체적인 언어로 묘사합니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미가 3:2-3)

그들은 백성들에게 안정된 삶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대신에 백성들을 삼켜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결국 백성의 적이요 파괴자로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소시민의 희생 위에서 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가는 그들의 잔인성과 탐욕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죄가 파멸을 초래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살려 달라고 주께 부르짖을 날이 그들에게 온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미가 4:4)
하나님과의 관계는 동료인간에게 지은 죄로 인해 이미 끊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실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마저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4:4) 이러한 불가피하고 철저한 심판선언은 물론 지배자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언자들의 무덤 가꾸기: 마태 23:27-36 (누가 11:45-52)

우리가 경청한 신약성서의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예수님 당시보다는 초대교회 선교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 자치기구인 산헤드린에서 실권을 지니고 있지 못했으나, 초대교회 선교 당시에 유대인들의 지도자들로서 실권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복음서 저자가 예수님 당시의 지배자들(헤롯,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파 등)에게 행하여졌던 비판의 내용 가운데서, 초대교회 상황을 고려하여, 비판의 대상을 수정하여 편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청한 비판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백성을 통치하는 지배자들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지배자들에게,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지배층이 사용하는 잔과 접시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먹고 마시는 값비싼 음식과 음료는 부정의와 탐욕의 결과물입니다. 그것들은 본래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을 약탈한 결과물입니다. 그들이 사치스럽게 먹고 마시는 동안에, 바로 그들로 인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을 깨끗이 하는 일, 즉 노동을 통해 정당하게 얻은 '일용할 양식'만으로 그릇을 채우는 일이 우선되어야만 그릇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지배자들이란 겉으로는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이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유대풍습에 따르면 유월절 전에 정기적으로 무덤을 하얗게 회칠합니다. 이것은 순례자들이 부주의하여 그 위를 밟고 지나감으로써 부정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외관상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28). 그래서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이 위선자인 또 다른 이유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미며,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29-30)

유다의 문서들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라. 그들의 말이 그들의 비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은 희생자들의 무덤을 장식하면서, 자신들은 희생자들의 학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조상들의 행위에 대하여 발뺌함으로써 책임감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예언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오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결국 조상들의 범죄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는 너희 조상의 분량을 마저 채"(32)우라고 아이러니칼한 명령을 합니다. 이 명령은 이미 그들이 조상들의 범죄에 가담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옛 예언자들의 경고를 외면함으로써, 또한 현재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심판의 경고가 주어집니다.

4. 마치는 말:

지난 2월 말, 이른 바 '고위 공직자'들의 지난해 재산변동 내역이 공개되었습니다. IMF한파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고통을 겪던 지난해에도, 행정부의 재산 공개 대상자 609명 중 11.8%인 72명의 재산이 1억원 이상 늘어났습니다. 1억원 이상 재산이 줄어든 공직자는 16명(2.6%)에 불과했습니다. 재산을 불린 공직자들은 대부분 부인, 자녀들까지 동원한 주식투자 등을 돈불리기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그들 가운데에는 직무상 얻게 되는 정보들을 활용하여 주식투자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체 그들이 벌어들인 그 돈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날도 지도층이 된다는 것은 국민들을 위한 봉사보다는 개인적인 출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고위 공직자'가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재산증식의 기회와 각종 특권을 향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서로 국회의원이 되려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과 근거 없는 폭로들은 물론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해묵은 전략들을 다시 꺼내어 듭니다. 이미 범법자들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세비만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려고만 한다면, 과연 그들이 그처럼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면서, 그처럼 각종 추악한 권모술수를 동원하면서 국회의원이 되려 노력할까요? 그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려고 노력한다는 현실 자체가 이미 국회의원 자리가 부정부패로 치부할 수 있는 자리이며, 각종 특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자리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사회가 민주화되었다지만, 정치인들의 행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을 3.1운동을 초래했던, 조선말기의 그 정치인들과 비교할 때, 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은 많은데, 정작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칭 '야당'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만 가는데, 정작 진정한 의미의 '야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 대다수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던 부패 정치인, 무능한 "지도자"들이 여전히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양심수들을 고문하던 자들이 박해를 받는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행사하면서 온 나라를 어둠과 공포로 몰아넣던 자들이 아직도 '음모론'을 내세우며 표몰이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으며, 학벌과 지연으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삼국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오늘 날 3.1 운동을 기념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해야 할까요? 그 '기념'이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는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또 '지도자들'에게 그 위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강요'하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이미 찾았습니다. 공천반대 운동과 낙선운동이야말로 3.1운동을 이 시대에 재현하는 투쟁인 것입니다. 이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이 주인으로 되는 세상을 만들려는 '독립만세 운동'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시대에 적합한 신앙고백적 운동입니다! 우리는 이 운동에 참여해도 좋고 외면하여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운동에 참여할 때에만 우리는 예언자들과 예수의 뒤를 따르는 신앙인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을 내세워 이 운동을 훼방하고 박해할지라도, 우리는 이 운동이야말로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임을 확신합니다. 이제 국민들이 주체적 정치참여를 통하여 사악하고 무책임한 정치꾼들을 심판함으로써만,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해묵은 과거가 청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 천년은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만 할 것입니다 - 만일 예언자들의 무덤을 가꾸는 일에만 머물지 않겠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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