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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대학교회설교
2000. 1. 23.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
(출 32:1-14, 눅 5:1-11)
윤응진

1. 종교적 믿음

오늘 우리가 경청한 히브리성서의 증언은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은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을 이끌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발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열 가지 계명을 받고 있는 동안,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히브리인들은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금송아지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금송아지가 그들을 가나안 땅, 곧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리라 믿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이러한 행위는 외관상 매우 진지한 종교적 열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행위는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통해 이제 막 역사의 주체로서 태어났으나, 아직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자유인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할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불안하였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그들의 신을 형상화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였으나, 아직 이집트의 그릇된 가치관과 생활스타일로부터 탈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이집트인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신을 만들고 제사지냄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황금으로 풍요의 상징인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함으로써,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를 갈망하는 그들의 욕구를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관념과 행동은 고대인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를 단순히 '불신앙'의 행위로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금송아지 앞에서 그들은 매우 진지하였고 '경건'한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려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실로 그 금송아지가 그들을 약속된 미래로 인도하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에 낯 선 것은 야훼 하나님의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교적 행위를 거부하고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금송아지 숭배라는 '종교'적 경건, '종교'적 믿음을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모세와 히브리인들을 대면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 대한 심판을 거두시도록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도록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심판하려던 계획을 거두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열 가지 새로운 계명, 곧 새로운 삶의 지침을 주시어 히브리인들을 바르게 교육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종교적 믿음과 열정, 그리고 모든 종교적 경건의 행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게 됩니다.

금송아지 숭배가 우상 숭배 행위로서 비난받고 심판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존재에 굴복함으로써 인간소외를 초래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인간 스스로의 욕망충족을 위한 도구로서 '소유'하려는 신성모독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원하는 하나님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적 욕구를 거슬러 스스로가 말씀하시고, 스스로가 인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인간은 변화되기보다는 옛 존재로서 안주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과거에 머물면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주고 축복할 하나님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를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를 원하시며, 그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갈 새로운 인간들을 원하십니다.

인간은 개인의 욕망 충족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하나님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개인적 욕망들을 버리도록 촉구하십니다. 심지어 개인의 구원에 대한 열망마저 버리도록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서, 동시에 새로운 인류 공동체 형성의 일원으로서 거듭나도록 요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계명을 통하여 히브리인들이 개인주의적인 축복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새로운 공동체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여하도록, '공동체적 구원'을 추구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적 기대와 열망을 파괴하는 분으로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흔히 금송아지를 둘러싼 히브리인들의 신앙 행위를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수많은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저 금송아지 숭배와 얼마나 다를까요? 지난 세기에 한국교회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 배후에는 저 금송아지를 둘러싼 종교적 기대와 환상, 그리고 종교적 신앙심과 종교적 경건의 행위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인의 영혼 구원과 동시에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며 열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저 금송아지 아래에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던(32:6) 히브리인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한국에서 기독교신앙이 전통적인 기복신앙과 결합하여 변질된 배후에는 견딜 수 없도록 가난하고 불안했던 사회적 환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영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을 함께 팔아서 스스로의 몸집을 부풀려 왔습니다. 그 결과 양적인 성장은 이룩하였지만 질적인 성장은 전혀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보채는 유아적인 신앙을 지닌 종교인들을 대량 생산하였지만, 역사의 주체로 서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들을 배출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물질적 탐욕만이 아니라 종교적 탐욕까지 소유한 종교적 이기주의자들이 경건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수없이 기도하지만, 그들의 염원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 충족에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금송아지에 대한 우상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듯이, 우리 사회도 황금에 대한 우상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새해, 새로운 세기, 더 나아가 새 천년을 맞이했지만, 세상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황금숭배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에는 더욱 강한 '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였다하면 주식투자로 억대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주식투자를 안 하면 대화에서 소외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엠에프 사태 2년이 지나면서, 벼락부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주식 값 급등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정보통신 관련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통신업체나 증권사 직원들 가운데는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사주, 스톡옵션 등으로 엄청난 차액을 얻어 '직장인 갑부'로 뜨고 있습니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결혼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바로 인터넷과 정보통신 관련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돈 바람은 직업, 나이, 지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의사도 직장인들도 고시생들도 주식투자에 몰두합니다. 어느 은행원은 "언제 건 쫓겨날 수 있다. 불안해서 돈을 빌려서라도 주식투자을 할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정리해고 사태를 겪으면서 배신감을 맛봤던 직장인들은 "이제 믿을 건 나, 그리고 돈 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 동료의식, 일의 보람 등 기존의 가치가 허물어지고, 수입의 크기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직업관과 가치관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안감은 커지고 이 불안감을 메울 길은 돈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새롭게 맞은 시간 안에서도 황금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냉혹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을 위해 살고 있다.

돈의 노예가 된 것은 성인들만이 아닙니다. 청소년들, 특히 소녀들도 돈을 벌기 위해 떡장사도 하고 심지어 원조교제나 매춘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저 '금송아지'입니다. 금송아지 숭배는 이제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밤잠도 포기하고 심지어 몸까지 내어 던지는 헌신은 이미 '종교적'인 것입니다. 화폐에 대한 신뢰, 화폐에 대한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게 확고합니다. 이것은 세속화된 종교적 열정인 셈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직면하여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즉 위기가 스스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IMF 사태는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황금만능주의가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하여 황금만능주의의 실체를 바르게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들이 그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바로 그 황금만능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는 결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파멸로 인도하고 말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특징

누가 5:1-11에는 예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보도는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밀려왔을 때" 예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밀려들어옴에 의해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신앙공동체, 즉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과 부름에서 생성됩니다. 예수님의 부름 없이도 그분을 따르는 신봉자들은 있을 수 있으나, 예수님의 제자, 사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제자들의 따름을 미래의 교회를 위한 위로가 되는 약속으로 가득 찬 이야기로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에 가장 가난한 주변환경 안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우리의 전라도처럼 차별대우를 받던 지역이었습니다. 그 갈리리 지방의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어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어부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입니까? 지금처럼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소농민들은 빚에 시달려 농사일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커져갔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 바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이란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그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 시몬의 배를 설교단 삼아 군중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진리를 전하십니다. 교회는 이처럼 초라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어부들은 절망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청중들도 그 어부들과 같은 사회계층에 속했을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도 아마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호기심을 지니고 예수의 말씀을 경청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씻을 그물을 방치해둔 채 손을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몬에게 예수께서는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중들을 향한 예수님의 일반적인 말씀은 이제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명령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를 사로잡고 그가 하던 일을 멈추게 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이 명령에 대하여 복종할 것인지 결정하여야만 합니다.

시몬의 입장에서 볼 때, 목수의 아들인 예수께서 고기잡이에 대하여 훈수를 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예수께 대한 종교적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시몬은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의 전문적인 판단을 내세움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종교적인 영역에 국한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5)
시몬은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고기잡이가 전혀 가망이 없다는 그의 판단을 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밤에, 가장 잘 잡히는 장소에서도 아무 것도 잡지 못했는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 불리한 시간과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시몬은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환상을 지니도록 유혹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여' 그는 예수님의 명령에 동의하도록 요청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주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들이 직면한 어려운 상황들을 다스리는 주님이기도 합니다. 시몬은 그것을 인식했습니다. 이 인식을 신약성서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잡아올린 고기는 두 배에 가득 실렸습니다. 믿음은 풍부하게 보상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명령'은 '약속'임이 확증되었고, 그 약속은 성취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얻은 성과에 대하여 자부심을 지니고 호숫가로 되돌아 왔을까요? 아니면 놀라운 능력을 지닌 예수님을 동업자로 삼아 그의 사업을 확장할 꿈이라도 꾸고 있었을까요?

그러나 베드로는 그의 믿음이 성취된 데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그의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은 베드로에게 그가 얼마나 가치가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인식은 시몬이 지니고 있던 기존의 존재의식을 산산조각내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허물어지면서 그는 그가 예수님과 가까이 있음을 견딜 수 없음을, 혹은 예수에게 그와 가까이 있음이 견디기 어려울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과 동업을 하거나 독점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께 그를 떠나가시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죄인으로서 고백하고 있는 바로 그 시몬을, 자신의 전 존재가 깨어지고 허물어지는 경험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그 시몬을, 예수께서는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 사실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이 사실이 이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기적'인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옛 존재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옛 존재방식을 죄된 것으로서 고백하고 철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시몬에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위한 사명과 책임을 다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시몬의 믿음은 그를 현실에 안주하게 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 나서게 하였습니다. 시몬은 예수께 대한 믿음 때문에 그분의 부르심을 경청하였고, 그 자신의 실존 문제나 생계 문제보다도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특징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 금송아지에 대한 우상숭배자들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양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 믿음의 행위가 교회의 토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제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상황, 제자들이 경청하고 있는 근본적인 명령,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약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살아가려는 우리들은 절망적이고 불리한 상황들에 직면하여, 종종 우리들 자신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에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약속과 위로가 넘쳐흐릅니다. 이 근본적인 경험으로 무장한다면, 아무리 세계가 어둡고, 아무리 시대가 불리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우리들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는 절망감이 엄습할지라도, 그것들은 신앙인들과 교회를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사람을 낚아야 하는 그물인 말씀, 절망과 한숨을 몰아내고 희망과 용기를 줄 그 말씀은 '결코 빈 채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약속은 야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서로 통합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사 55:10-11)

예수님의 명령은 약속이며,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킨다는 시몬의 저 첫 경험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경험될 것입니다. 절망의 시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하여 그물을 던지라고 요청하십니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사업과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동업자로서의 하나님과 예수를 소유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일에 참여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만을' 갈구하는 종교적 중독자들이 되었으나, 그 믿음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더 많은 재물과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이웃과 세계를 위해 봉사하기 위한 믿음입니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믿음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올바른 믿음을 허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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