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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단일민족은 없다

한신대·기독교교육학과 교수

단일민족은 없다

시편 33:8-22, 에베소서 2:14-22

윤응진 목사

지난 1999년 7월 5일, 경기도 여주군 3개 학교에서 단군좌상의 목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군상 설치를 둘러싸고 개신교계와 민족운동단체인 한민족문화운동연합이 극한 대립을 빚어온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어서 광적인 개신교 신도들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제(99. 10. 2.) 고대 총장이 회장으로 있는 이른 바 "단군학회"가 주최하는 모임에서는 "한국 종교의 단군 인식"을 주제로 토론이 있었다. 전 피어슨 신학대 교수인 박영규는 "한국적 신학 형성과 단군 연구의 의미"라는 발제문을 통하여 창세기 창조설화와 단군신화의 유사성, 웅녀와 마리아의 비교 등을 통해 기독교의 토착화 논의를 고찰하였다. 그는 "단군 신화가 지니고 있는 민족사적 의미에 대한 탐구를 거부할 때 한국 교회의 신앙적, 신학적 주장들은 호소력을 결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오늘 아침, 전국으로 생중계된 "개천절" 기념식에서는 어느 역사편찬 위원이 '건국의 기원'을 소개하면서 단군신화를 역사적인 사실로 주장하였다.
"개천절"날 아침에 우리는 대체 단군신화와 개천절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1. 한국사의 시작

한국이라는 역사적 무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는 헤아릴 수 없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대체로 약 3만년 전에서 2만년 전쯤 구석기인들이 한반도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 한국인의 조상인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기원전 4000년경에는 신석기인들이 한국에 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 시대는 혈연중심의 씨족 공동체 사회를 이루며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석기인들은 우주의 만물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인간의 영혼은 죽음이후에도 불멸한다는 영혼불멸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신석기시대에는 태양숭배 신앙이 지배하고 있었다. 신석기인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는 기원전 9세기경에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을 이용한 농업용 도구들이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상용 무기도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에도 서민들은 석기와 목기를 사용하였고, 소수의 권력자들만이 청동기를 사용하였다. 청동기는 지배자들의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이 지배자들은 흔히 부족국가를 다스렸다. 그러나 부족국가는 부족적 (혈연)전통 이외의 다른 요소들을 포함한 지연 중심의 정치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성읍국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 성읍국가가 한국 최초의 국가 형태였다(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77, 25-26).

청동기 사용과 더불어 각지에 성읍국가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적 사회(송화강 유역의 부여, 압록강 중류의 예맥,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 동해안의 임둔, 황해도의 진번, 한강 이남의 진국 등) 가 탄생했다. 기원전 4세기경에는 성읍국가들이 상당히 성장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조선이다. '고조선'의 본래 이름은 '조선'이었으나, 편의상 '기자조선'이나 '이씨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는 '고조선'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조선은 평양 부근의 평야를 지배하는 조그만 정치적 사회였을 것이다. 그 사회를 지배하는 군장(君長)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 불리어졌고, 그는 제정(祭政)을 겸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이 고조선 성읍국가가 다른 성읍국가들과 연합하여 커다란 연맹체를 형성하고, 그 통치자가 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이른바 단군신화를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2. 단군신화의 해석

단군신화는 고려시대 승려였던 일연(1206-1289)이 쓴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이하 신화 해석은 주로 이이화,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한국사 이야기 제1권)} 서울:한길사, 1998, 137-152 참고):

옛날에 환인(桓因: 하늘에 있는 초월적 신, '환'은 '환한 세계'의 뜻으로 보아 태양을 상징한다)의 서자 환웅(桓雄)은 인간 세상을 탐내어 다스리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 太白山: 삼위는 <서경>에 나오는 산 이름, 세 위태로운 산, 즉 세 높은 산. 태백은 그 중 하나)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弘益人間- 원시공동체사회의 평등이념. 노동, 소유, 분배를 공동으로 하여 삶을 꾸려나가는 이념. 계급이나 독점을 위한 갈등과 투쟁이 없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평등이념.) 만한 곳이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신의 위력과 영험한 힘을 보여주는 신성한 물건. 거울, 칼, 방울로 추측됨. 인간세상을 다스리라는 신의 위임을 받은 통치권의 상징: 일연(장백일 역해), {삼국유사} 서울: 하서출판사, 1996, 11)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일연은 묘향산으로 해석, 그러나 근세조선 후기의 실학자들과 구한말의 대종교 관계자들은 백두산으로 해석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묘향산이 국경선 부근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국경선이 백두산까지 뻗치게 됨에 따라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을 태백산으로 해석한 듯 하다. 이처럼 신화적 내용은 후세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었다.)의 신단수(神檀樹: 거목신앙의 표상) 아래에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神市)라 부르고 천왕이 되었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원시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폭풍과 홍수, 그리고 그것들을 몰고 오는 구름이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홍수와 가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것들을 잘 다스리는 것은 신의 힘으로 여겨졌다.)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사냥이나 물고기잡이로 얻은 짐승이나 물고기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으로 주식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농업생산이 증대되면서 안정된 삶의 조건이 형성되자 사람의 '수명'과 '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초기 국가 형성기는 '선악'의 기준을 내세워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고,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강제력이 필요하여 '형벌'제도가 필요했음을 암시한다. 즉 농경사회와 계급사회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이때 곰(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 잡식성이며, 타협적이고 협동적인 종족임을 암시) 한 마리와 범(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종족: 육식을 위주로 하면서 공격적이고 참을성 없는 종족임을 암시)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은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당시에 이미 곡식과 함께 채소를 먹었음을 의미함. 마늘은 훗날 한나라를 통해 들어왔으므로,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마늘은 달래였을 것으로 추측됨)를 주면서 그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곰만이 금기 사항을 지켜서 여자로 변했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축원하였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여(환웅이 이끄는 유이민 집단과 한 원주민 집단의 동맹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의미함) 아들인 단군 왕검을 낳았다(환웅과 단군은 가부장적 지배자. 단군은 신단과 연결된 호칭으로서, 제정일치 시대에 신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통치자였을 것으로 추측됨).

왕검은 왕이 된지 50년에 평양('平壤'을 '평평한 땅덩이'로 해석하여 고조선의 발상지를 지금의 요동반도의 어느 지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 '아침이 신선하다'는 뜻으로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이라 불렀다. 그후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겨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단군이 임금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서 그 후손들이 세습으로 왕위를 계속한 것으로 해석됨). 주나라 무왕이 기자(箕子: 은나라 왕족)를 조선에 봉하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단군이 기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은거했다-> 중국의 중화사상에 바탕을 둔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고려 중후기에 유교문화가 침투해오면서 사대적 분위기가 깔리기 시작하였을 때, 기록된 것),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도가적 분위기가 반영됨), 그 때 나이가 1908세였다.(이상 <고기(古記)>를 토대로 일연이 재구성한 것임.)

다른 기록(<위서(魏書)>)에 의하면,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기(->기원전 2333년)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이라 불렀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에 대하여 한국의 독자적이고 유구한 역사를 변증하기 위한 의도에서 제기되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에 단군을 이은 역대 왕의 이름이 나오고 단군의 행적이 자세히 적혀 있으나, 모두 조선 후기에 쓰여진 것으로서 신빙할 만 한 것은 아니다.

단군신화는 고대국가 성립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화자체는 결코 역사가 될 수 없다. 단군신화는 한국 역사의 '유구성'과 '독자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 단군신화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단군은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대 조선사회의 제정일치 체제에서 지배자를 칭하는 보통명사였다.
- 단군은 혈연적 의미의 '조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군은 혈연공동체인 부족공동체들이 연합하여 거주지역 단위의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체제의 지배자였다. 단군신화에서 환웅과 웅녀의 결합이 상징하듯 서로 다른 혈연공동체들의 결합의 결과 발생한 것이 단군의 성읍국가였던 것이다.

3. 단군신화의 영향사

일연이 단군신화를 오늘의 형태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12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 해답을 어렵지 않게 얻게 된다. 당시는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몽고가 1271년 마침내 원나라를 세웠고, 고려는 30년에 걸친 항몽전쟁에 패하여 원나라의 속국으로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었다. 고려는 원나라에 의하여 여러 면에서 변질을 강요받고 있었다. 고려 국왕의 세자는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야 했으며, 왕이 되어서는 몽고식 이름을 지니고, 몽고식 변발을 하고, 몽고식 의복을 입고, 몽고어를 사용하여야 했다. 고려의 왕은 독립된 왕국의 통치자가 아니라 원나라 황제의 사위로서 원나라에 충성해야 했다. 고려의 왕의 호칭은 더 이상 '... 祖' 나 '... 宗'로 불릴 수 없었고, '...왕'으로 격하되었으며, 왕의 호칭 앞에는 (6代에 걸쳐) 충성 '충'자가 붙어 "충렬왕", "충선왕"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은 새로운 사회세력인 '권문세족'이 등장하여 사적인 이익을 확대시킴으로써 지배층 전체의 공동이익을 공공연히 짓밟았다. 농민들은 고려정부와 원나라 양측의 착취로 인하여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기백, 179-193 참고). 또한 (아마도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해)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1275: {학원세계대백과사전} 제2권, 서울: 학원출판공사, 1994, 533의 '고려연표' 참고). 이러한 시대에 민심을 통일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태양신의 손자격인 단군에 관한 신화적 서술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남북의 정통 사학자들은 단군이 신화적 인물이라는 데에 일치하였다. 그리고 단군이 세웠다는 조선도 지금의 요동반도에서 발생하여 차츰 동쪽으로 이동하여 대동강가의 평양에 도읍을 정하여 발전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이이화, 151).

그러나 1993년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종래의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발표를 하였다. 즉, 평양시 강동군 문호리 대박산 동남쪽 기슭의 한 무덤에서 단군과 그 아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요동이 아닌 평양에서 건국했고, 단군은 실존인물이며, 당시 조선은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한 강력한 지배체제를 갖춘 고대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부여와 함께 북한은 "단군릉"을 복원해놓았다(이이화, 152). 이러한 주장과 조처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민심이 지배층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서민 대중에 대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게 되자,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 후기에, 조선 후기에,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 아래에서 그리고 지금 북한에서도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서 추앙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심을 통일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단군이 화제로 떠올랐고, 또 지금도 화제로 떠오르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단군은 나라를 잃었을 때나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 민족사상의 표상으로 추앙을 받았다. 단군신화는 정치적 통합이 요청되던 시대의 산물이며, 또한 정치적 통일이 요청될 때마다 거듭 거듭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제에 대한 저항투쟁 과정에서 단군에 대한 숭배가 종교적 숭배로 제도화되어 '대종교'라는 민족종교를 형성하였다. 해방 후 '대종교'의 입장을 받아들여 정부에서는 기원전 2333년부터 시작되는 '단기'를 사용했으며,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른바 한민족문화운동연합에 의해 단군 숭배 운동이 초등학교에까지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민족주의와 결합할 경우 생명력을 잃게되는 '공산체체'를 국가체제로 수호하는 북한에서마저도 단군신화가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혈연적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몇 가지 위험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 우선 외국인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국수주의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특히 화교들이나 제3세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비인간적 상황이 정당화되고 있다.

-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모든 것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어 다른 문화나 다른 가치, 다른 삶의 스타일, 다른 사상과 다른 종교를 본능적으로 배척하게 된다. 모든 것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독재체제를 낳았고, 경제적으로 재벌들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 단군왕검이 태양신을 의미하는 환인(桓因)의 손자였다는 것은 그가 정치적 지배자로서의 위엄과 권력을 지니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단군은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지배자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절대권력을 장악한 지배자가 내세우고 있는 '홍익인간'의 이념이란 계급지배에 대한 비판이념이 아니라, 절대권력과 계급지배 구축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에 불과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실존인물로서 숭배함으로써 신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실제로 대종교나 한민족문화운동연합은 단군을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에 단군상을 설치하는 계획 자체가 민족종교적 맹신주의를 조장할 위험이 있으므로 비판받아야 한다.

- 혈연을 중시함으로써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체제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 과거지향적인 환상에 젖어서 역사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질 뿐만 아니라, 현실적 삶의 공간을 정치 경제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 심지어 신학자들마저도 민족주의적 오류에 빠져서 복음의 내용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단군신화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내려는 어리석은 유혹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에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편견이 기독교의 복음마저 왜곡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예: 나치 시대의 '독일적 그리스도인 운동'. 독일의 신학자들은 독일의 신화나 전설, 전통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내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나치의 게르만 민족 이데올로기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독일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게르만인들의 뿌리인 아리안 종족에 속하지 않은 민족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심지어 학살을 묵인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나치의 침략전쟁행위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4. 단일민족이란 없다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한국사는 단군에 의해 시작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기 ...년이라는 계산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단군에 의한 혈연적 단일민족 형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특수한 종족을 제외하고는 세계사적으로 단일민족이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민족도 순수한 단일민족일 수는 없다. 한민족은 여러 종족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섞인 것이다. 이들이 언어와 풍습을 공유하면서 단일에 가까운 민족을 형성해왔다고 보아야 한다. 여러 객관적인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민족은 민족형성기에 언어, 문화, 역사와 같은 기본요소는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 근대적 민족주의와 민족의식이 형성되었다기보다는 그 뿌리와 태동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일본과 끊임없이 이어져온 역사적인 마찰은 우리의 민족의식이 유럽에서는 찾기 힘든 시기에 일찍 형성된 요인이 되었다."(이이화, 169)

오늘 날 단군신화는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단군신화에서 우리가 그나마 소중한 유산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홍익인간'이념일 것이다. 단 이미 고대의 평등한 공동체가 파괴되고, 계급이 발생하던 시기에 고대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유토피아를 정치적으로 현실화시킬 꿈을 꿈꾸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도 사회적 불평등이 보편화된 현실을 변혁할 이념으로서 홍익인간 이념을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위험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이미 한국의 해방 이후부터 홍익인간 이념이 교육적 기본이념으로 내세워졌지만, 민주사회 건설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독재정치체제를 미화하고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말았다.

오늘 날 우리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인물을 시조로 삼고 하나로 단결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시작이 다른 민족에 비하여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시조가 신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본래부터 다른 민족에 비하여 어떤 강하고 유리한 점을 부여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민족이 스스로의 기원을 신비롭게 묘사하는 신화들(희랍신화, 게르만신화, 로마신화 등)을 지니고 있으며, 민족종교(일본의 신도(神道), 미국의 몰몬교 등)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신화나 종교들은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들의 대결은 곧잘 타민족에 대한 잔인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마침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본의 민족주의와 대결하기 위하여 한국의 민족주의로 무장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대처방법이 못된다.

성서는 바로 태양신을 숭배하며 왕인 파라오를 태양신의 아들로 섬기던 이집트의 민족주의 정책에 의해 고난받던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킨 출애굽 사건을 실행한 하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민족주의의 희생자들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하나님으로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이다.

오늘 이방인들을 향한 바울의 가르침에서도 야훼 하나님은 결코 한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들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하나님이심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은 우리 민족만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적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함께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온 땅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세상 모든 사람아,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이 말씀하셔서 모든 것이 생기고,
그가 명하셔서
모든 것이 견고하게 제자리를 잡았다.

주님은, 나라들의 도모를 흩으시고,
민족들의 계획을 무효로 돌리신다.
............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사람들을 낱낱이 살펴보신다.
계시는 그 곳에서
땅 위에 사는 사람을 지켜보신다."(시 33: 8-14)

모든 민족의 계획을 무효로 돌리시는 하나님은 민족주의의 장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품안에 품으신다. 군대, 왕, 군마가 민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인류를 구원하신다. 그렇다, 오늘 개천절에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민족주의적 장벽을 높이 세우고, 민족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계획을 짜고, 군대를 훈련하고, 지배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무효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민족주의의 장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가족'(엡 2: 19)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주의가 사라진 인류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머릿돌이 되었다. 온 인류가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때, 참된 인간들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성전도 완성되어 세계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변화될 것이다.

민족주의는 약소민족에게는 외세에 저항하는 힘을 제공하지만, 민족이 강하게 되면 이민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한국인이 외국인들에 대하여 혐오감을 갖는 것은 민족주의의 편협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은 다원화시대이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민족적 혈통과 상관없이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은 결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수 없다. 모두 인류 전체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상을 파괴하는 행위보다는 오히려 한국인들이 세계의 시민으로서 성숙한 의식을 지니도록, '하나님의 가족'인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개방적인 자세로 살아가도록 깨우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평등한 존재들로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의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모든 불평등과 부조리를 눈감아주고 침묵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할 것이다. 강대국들의 부당한 간섭이나 착취에 저항하는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한국 땅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혈연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라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구성원으로서 함께 한반도라는 정치적 경제적 운명공동체의 삶의 조건들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 아침을, 한국의 하늘이 열린 날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세계의 하늘이 열린 날로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형성할 사명을 받은 날로서 기억하고자 한다.

대학교회설교
199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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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가장 큰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죄"

옥스퍼드대 수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박사가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신간「God, AI, 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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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여성들, 막달라 마리아 제자도 계승해야"

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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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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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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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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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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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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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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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