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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신학사전-감독제(Episcopacy)

2008년 02월 12일

감독제 Episcopacy 
  
 
에큐메니칼 신학사전-감독제(Episcopacy)
 
에큐메니칼 대화가 시작된 이래, 감독제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로 여겨져 왔다. 1988년의 램버스 4강령(Lambeth Quadrilateral)은 “역사적 감독제는 국가와 민족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교회의 일치를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직분을 수행하는 방법으로서 각 지역에 수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루터회는 말씀과 성례전이라고 하는 하나의 교역이라는 원칙 때문에, 그들 중에 혹은 다른 교회와 더불어 일치의 조건으로서 감독제의 복원을 보류해 왔다. 회중교회의 입장에서는 감독제가 지역 회중교회의 자율성을 침해하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교회들이 마침내 에큐메니칼 대화의 자리에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동방 정교회, 그리고 뒤이어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감독제는 신적인 근원을 가진 것이므로 결코 문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러한 입장은 감독제의 교리적인 기초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모든 교회의 통합을 위하여 감독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성공회의 입장보다 더욱 강한 것이었다.

각기 다른 기원과 조직을 지닌 교회의 통합을 위해 구체적이 방안은 감독제와 관련하여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에큐메니칼 차원에서 가장 의미 깊은 진전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후 1947년에 연합한 남인도 교회의 경우였다. 이 계획은 그 지역 성공회와 몇몇 비감독제 교회를 하나의 감독 교회로 연합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비감독제 교회들의 과거에 행하던 교역(ministry)의 권위의 문제가 제기되지도 않았고, 안수를 다시 받으라는 요구도 없었다. 1971년에 북인도에서 약간 다른 계획이 이어졌다. 여기에서느 교역에 대하여 피차 인정하는 일과 하나의 감독제로 조직을 갖춘 교회로 연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로 손을 마주잡도록 유도했다. 우리는 루터교 안에 종교개혁 이후 존속하지 않았던 감독제를 루터교 자신들의 연합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교회와의 교제를 위해서 다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노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성찬과 교역>(BEM)의 교역 항목은 정확히 말해서 이러한 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으며, 비록 모든 이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교회 제도에 대하여 폭넓게 언급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교회의 구조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교역에 우위를 두는 입장이며, 교회의 징표(사도적 신앙과 교제의 지속을 위해 봉사하고, 상징하며, 지키는‘)로서 교회 내 감독제를 주장하는 입장을 넘어서서 교회의 사도적 계승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감독제를 수용하지 않은 교회들에게 제3의 교역 형태를 나타내는 감독제의 수용 가능성을 물으면서, BEM은 감독제를 사도에게 연원을 둔 것으로나 교회에게 절대 본질적인 것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그리스도교의 초기에 근원을 둔 역사적 현상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생명력을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제시하였다. BEM은 또 한 감독제의 형태에서도 여러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BEM에 대한 교회의 다양한 반응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러한 견해는 정교회와 로마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이들은 1988년 6월 핀란드의 발라모에서 성례전적 직제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참조 정교회-로마 가톨릭 교회 대화). 이 성명에서 감독은 사도의 계승자이며 감독제는 사제직의 성취인데, 바로 이 사제직에 의해 그리스도 자신의 교역이 교회 안에서 수행되는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이 성명은 이런한 교역을 성령의 역사와 결부시키면서 감독의 사도적 계승을 교회 자신이 사도적 계승과 연결된 것으로 보는 입장에 서있다. 감독 자신의 사도적 계승이 성격상 순수하게 성례전적이거나 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가르침과 사도적 증거에 대한 계승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감독제 필요성을 견지한다는 것이 역사적인 순진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감독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감독제를 지향하는 교회들의 사도를 감독으로 여기려 든다거나 혹은 신약성서에서 사도들 자신이 안수받은 감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사 안에 등장한 감독제의 형태는, 그것이 후기 사도시대에 나타났던 것처럼 독특하고 사도적 목회의 경전적 발전이라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감독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논의는 특정한 역사적 현실을 반드시 의식해야만 할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교회 구조의 다원성이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감독”(episcopos)이라는 말의 의미도 분명하지 않았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 기록된 협동적 감독제 사이의 차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후기 사도시대의 초기 감독제의 형태에는 상이점이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교사요 성찬공동체의 인도자이던 초기의 감독과 감독의 주요한 특징이 그들의 법적인 권위에 있던 중세 감독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이 감독직을 성례전적 직제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대개는 일종의 직무(office)로 보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 역시 루터의 종교개혁이 왜 감독제를 거절, 포기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루터교가 말씀과 성례전을 하나의 교역으로서 확신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감독제는 아마도 원칙적인 이유와 실제적인 이유에서 포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시대에는 감독제가 복음 사역의 장애로 여겨졌음을 감안한다면, 감독제가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직제에 대한 공의회의 신조를 다루면서, 감독직의 신적인 기원과 장로직보다 감독직의 우위성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비록 트리엔트 회의가 종교개혁 교회의 교역 가운데 안수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았 할지라도, 그것의 무효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성공회는 사제직이나 일련의 사도직 계승 개념에 대한 어떤 신앙 고백적(혹은 교파 차원의)확신 없이 감독제를 지켜왔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대화의 몇 가지 특징은 미래 감독제의 합의를 위한 길을 예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감독제의 성레전적 본질을 재차 확인했고(교회 헌장 3장), 안수를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말씀과 성례와 목회적 돌봄이라는 삼중 교역을 위한 직임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함께 발표한 발라모 성명서와 같은 최근의 입장 표명은 직능의 선적인(linear) 승계애 대한 이해보다 더욱 온전하면서도 사도적 계승에 대한 교회론적인 이해에 훨씬 더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또한 권위 있는 가르침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적 계승자로서의 감독과 감독제의 역사적 근원을 언급하면서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비록 교회 당국에 의한 공식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로마 가톨릭 교회신학자들의 제안한 것은 특정한 교회나 혹은 종교 내에서 감독제는 현재보다 더욱 협동적인 형태로 실시될 수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 교회 그리고 후기 종교개혁 교회들은 비록 더욱 큰 일치와 더 나은 교제를 향한 감독제의 실제적인 기여에 회의적이라 할지라도, 시공을 초월한 교회의 교제를 위한 감독제의 중요성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공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BEM은 감독제를 “교회의 연속성과 일치를 나타내는 (일종의 보증은 아니지만) 하나의 징표”로서 말하고 있다.

요약하면, 감독제에 대한 합의가 결코 현재의 에큐메니칼 적으로 실현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여하고 있는 교회들의 변화와 내적으로 연계된 대화를 통하여 폭넓은 이해가 이뤄어져 왔다. 그 과정 중에, 심도 있는 논의와 교회 조직의 나아갈 길이 제시되었다는 점을 성과로 꼽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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