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기장회보>(07.6-7호) 권두언
“예수를 찾습니다”, “길 잃은 아이를 본 적이 없나요?”, “나사렛 사투리를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없나요?”.... 마리아와 요셉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그들은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던 예루살렘 순례길에서 그들은 아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들이 자신들의 대열에 합류해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거기에 예수는 없었다!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를 되돌아보면, 교회가 가는 길에는 예수가 늘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는 종종 착각이었음이 드러나곤 했다. 오히려 교회가 걸어간 길은 예수의 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교회가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과는 다른 길로 갔을 때, 바로 그때, 그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실종되었던 것이다. 마치 예수의 부모들이, 아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으리라는 착각 때문에, 그를 잃어버렸듯이.
우리가 지금 걸어가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과연 예수가 걷고 있는 길과 같은 방향과 노선을 향하여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예수님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결국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한국 땅 위에 1천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잃어버리지 않고서야 어찌 이 나라, 이 사회가 이처럼 희망 없는 땅이 되었겠는가?
예수는 종교행사에 참여한 군중 속에 있지 않았다. 예수는 그를 독점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았다. 예수를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를 잃을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추측하기에 그가 있을 것이라 여기는 곳에, 그가 있기를 원하는 그 곳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진정 예수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예수, ‘우리’가 원하는 예수, ‘우리’가 소유하려는 예수를 포기해야만 한다. 늘 그를 찾으려 애태우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그를 잃어 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실종된 예수를 찾는 지름길은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의 관심사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그가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예수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란 다만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걷고 있는 길에 합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의 길을 걸으면 당연히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착각은 아닐까?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기보다는, 우리가 예수와 함께 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는, 요셉과 마리아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가던 길을 돌아서서, 예수를 찾아 길 떠나야 할 것이다. 주님 ‘자신’이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바로 ‘그 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