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세계와 선교> 총장칼럼(제192호, 2007년 4월, 2-5쪽)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노라” -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말년에 세겜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모아놓고 행한 연설의 핵심구절(여호수아서 24:15)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제91회 총회는 이 말씀을 총회주제로 선정하여 일 년간 기장 가족들이 신앙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남용될 경우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 말씀에 담겨 있는 확신과 열정은 자칫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쉬비츠로 대표되는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나치의 열성당원들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네오콘들도 이러한 ‘신앙’의 열정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여호수아의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도전략들이 정복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어 매우 공격적이라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야훼만을 섬기겠다”는 선언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야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고대근동지방의 종교 관념에 따르면, 신들은 각기 자신의 지리적 영역을 갖고 있었다. 신들은 특수한 지역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수호신이었다. 그러므로 한 집단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다른 신들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뜻했다.
그들의 조상을 선택하시고 불러내셨던 인격적인 신인 야훼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혹은 지역의 수호신을 택할 것인가? - 이것은 옮겨 다니는 이스라엘이 거듭 직면하였던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출애굽 사건은 이집트 제국에 대한 정치적 저항운동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 제국을 정당화하는 종교이데올로기에 대한 ‘위대한 거부’였다. 야훼 하나님은 이집트 제국의 수호신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제국의 희생자들과 연대하여 그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출애굽 사건은 억압과 지배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야훼 하나님의 인류구원 프로젝트의 모형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풍요를 보장한다는 바알이 수호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고달픈 유목민의 삶을 마감하고 안정된 농경생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한 차례 중대한 결단을 하여야 했다: 야훼인가? 바알인가? 이 양자택일 앞에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도록 촉구하였다.
바알주의는 팔레스틴에 형성되었던 도시국가의 계급구조를 견고하게 지원하는 종교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므로 야훼를 택할 것인가 혹은 바알을 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출애굽 사건을 통해 꿈꾸어 왔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 혹은 농민들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하는 계급사회에 편입될 것인가를 선택하여야 하는 정치적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노라” - 이 선언은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여호수아서 24:2-13)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선언은 근동지방의 여러 지역 수호신들, 특히 바빌로니아 및 이집트의 제국주의적 종교 이데올로기들을 거부하는 선언이다. 또한 이 선언은 가나안 땅의 계급지배적인 도시국가의 종교 이데올로기들을 거부하는 선언이다. 이 선언은 제국주의자들과 지배계급들이 신들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모든 침략행위, 억압과 착취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으로 왜곡시키거나 계급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종교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위험에 맞서서 출애굽의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과 타협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그의 신앙이 배타적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왜곡이나 위험을 극복하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훗날 신명기 사가들은 여호수아의 선언을 통하여 바빌로니아 제국의 전쟁포로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기록하였다. 이스라엘 전쟁포로들은 거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호신인 마르둑을 선택할 것인가 혹은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를 선택할 것인가 양자택일하여야 하는 결단의 문제에 부딪쳤다. 제국주의자들의 수호신과 출애굽의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선택은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여 제국주의 지배 및 계급지배 질서에 저항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배타성은 이처럼 정복주의에 토대를 둔 공격적인 종교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 체제에 저항하는 해방운동의 맥락에서 요구되었던 것이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여호수아는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는 부족들이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하나 될 것을 촉구하였다. 출애굽을 이루신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분의 사역에 참여하는 신앙인들만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더 이상 억압과 착취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우리는 여호수아와 함께 이렇게 선언한다. 이 선언과 함께 우리는 여호수아가 지녔던 야훼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함께 참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제국주의적 침략행위와 계급지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시도들에 대하여 저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억압과 착취에 대하여 거부한다. 우리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외면한 모든 종교행사를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려는 모든 거짓 경건을 거부한다. 우리는 다만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사역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뜻에 따라 써주시기를 소망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주, 야훼)를 섬기겠노라!” - 이 선언을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이 교회를 새롭게 갱신하고 사회를 새롭게 변혁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