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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응진] ‘다빈치 코드’ 유감

윤응진·한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세계와 선교>, 총장칼럼, ( 제191호, 2006년 10월, 2-5쪽)

영국의 작가 댄 브라운(Dan Brown, 1964년생)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론 하워드 감독)가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지난 5월 17일 공개되었다.

이미 소설 '다빈치 코드'는 2003년,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86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에서 4,300만부 이상이 판매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으며, 국내에서도 3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러므로 이미 영화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갖는 영향력은 소설에 비할 것이 아니므로, 영화개봉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에는 “1억3천만 달러가 투입된 2006년 최고의 블록버스터”,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 “금세기 최고의 어드벤쳐 스릴러” 등의 선전문구들이 따라 붙는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를 선전하는 가장 큰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은 바로 관람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계라면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 영화를 둘러싼 각국 기독교계의 반발이 거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에서는 ‘다빈치 코드’ 상영을 금지해 달라며 한국배급사를 상대로 ‘영화상영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 판결을 받았으나 “관람 거부 운동을 계속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 영화에 대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등 신앙생활에 해악을 끼치는 대중문화의 영향이 염려된다"고 우려했다.

그리스, 로마, 러시아의 정교회 지도자들은 설교 도중 영화에 비난을 쏟아냈고, 특히 그리스에서는 200여명의 항의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십자가와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였다. 인도 정부는 일단 영화의 상영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인도의 가톨릭세속포럼 지도자 등은 영화의 완전한 상영 금지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미국의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배우 멜 깁슨(Mel Gibson)은 '다빈치 코드'를 맹비난했다.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04년 예수의 죽음이 유대인들 때문이었다는 메시지가 담긴 화제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당시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시킨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자식을 두었고, 이를 은폐하려는 광신도 가톨릭 집단('오푸스 데이')의 암약이 있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우리가 감상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토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감상은 각자 할 수 있겠으나, 전문적인 평가는 평론가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 한편 때문에 신앙이 바뀌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코미디이다. 누군가 이 영화 때문에 신앙을 버릴 수 있다고 염려하는 ‘성직자’가 있다면, 그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유아기적인 교인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성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직무유기가 문제인 것이지 영화가 문제인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켰다. 그런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영화 한 편 때문에 신앙을 버린다면 대체 말이 되겠는가?

만일 그래도 ‘내용’에 신성모독의 혐의가 있다면, 영화감상을 나누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에 묻어 있는 문제제기에 마음이 끌렸다. 가부장적인 현실의 기독교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왜곡된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야기된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를 찾기 위하여 기호학을 동원하여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와 사랑을 나눈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혈통을 지니고 있는 한 여인에게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기독교를 변혁할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이 지닌 문제점은 그 발칙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백인의 사고구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가 찾아낸 것은 로마 제국주의 노선에 저항하여 히브리인의 역사변혁적 신앙전승을 현실화하려 하였던 ‘유대 청년’ 예수가 아니라 여전히 백인 예수였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왜곡은 예수의 결혼을 은폐한 데에 있는 것도 예수의 혈통을 감추려 한데에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유대 청년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를 백인으로 포장한 데에 있는 것이다.

만일 추상화되고 신성화된 그리스도에 대하여 문제제기하기 위하여 역사적 예수의 생생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재현하려 시도한 것이라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접근방식은 기호학이 아니라 히브리 사고방식을 배우려는 노력과 함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역사학과 함께 사회학과 정치학이 동원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결혼을 가정하려 하였다면, 당시에 유대인들의 관습과 사고방식에 따르면 경건한 신앙인들은 (기독교적 관념과는 달리!) 결혼과 출산을 비껴갈 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결혼하였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혈통’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과 삶이 우리를 참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가부장적인 전통을 극복하려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또 다시 예수의 ‘혈통’에 집착함으로써 다시금 가부장적 혈통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다만 그 혈통을 잇고 있는 것이 여성의 자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일부 이루기는 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독교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기독교에 대한 종교비판의 강도는 생각처럼 강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에게는 신앙심 좋다는 멜 깁슨이 만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 영화는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만을 부추겼으며, 예수에 대한 숙명적인 폭력만을 지나치게 과장함으로써 정작 예수가 지녔던 사회변혁적 신앙의 내용을 외면하도록 유도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을 진정으로 위태롭게 하는 것은 예수가 결혼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과 그가 받은 고난을 왜곡하는 전통들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예수의 혈통이나 고난 자체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저항하였던, 그리고 그의 고난을 초래하였던 정치 ․ 사회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구조적 모순들과 우리의 실존적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만 예수의 신앙을 계승하는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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