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사랑이라는 말처럼 고귀한 말이 있을까? 그러나 또한 사랑이라는 말처럼 오해되고 왜곡되고 심지어 악용되는 말이 또 있을까?
예수는 성경의 가르침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하였다. 하나님 사랑과 자신의 몸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사랑은 사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하고 있다.
이미 스스로를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로서 인식한다면, 그 하나님을 향해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망각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자기 자신의 몸과 이웃의 몸을 향한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그분의 뜻과 관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나의 뜻과 관심을 관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소중히 여기는 나의 몸, 곧 나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어우러진 존재 전체를 긍정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웃 사랑은 ‘나’의 이웃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웃이 되어야 하는,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그 ‘이웃’에게 존경과 관심과 도움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단순히 개인윤리적인 선행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이웃으로 인식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제도들과 관행들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웃 사랑의 실천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 모든 형태의 인간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사랑의 화신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의 이웃 사랑 실천은 현실을 변혁하고 개혁과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세상에서 행하는 사랑 실천은 고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 없는 사랑 실천은 거짓 사랑의 시위로 끝나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은 더 구체적이고 더 철저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