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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브니엘 체험 후 제3의 광복

2012년 8월 12일 성북교회 광복절 설교 전문

브니엘 체험 후 제3의 광복(창32:22-33, 엡 2:14-18)

1. 런던 올림픽과  한민족의 67주년 광복절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유럽과 한국의 날짜엔 하루차이가 있지만 오늘 8월12일로서 제30회 런던 세계올림픽대회가 폐막합니다. 한국 선수들 선전하여 기대이상의 메달획득을 했습니다. 선수들과 관계수고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한일관계가 경색화되어가는 요즘 한일전 축구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일본팀에게 승리한것은 한국민에게나 일본국민에게나 남다른 의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오늘주일은 한국 기독교가 아침예배를 드릴 때, ‘해방절 혹은 광복절 기념에배’로 드리면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며, 오늘의  우리모습을 성찰하는 주일입니다. 왜냐하면, 한민족은 해방은 되었지만 온전한 해방과 완전한 통일 독립국가로서의 소원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갈등과 신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한민족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나 북조선 국민에게나  있어서나 온전한 제3의 해방, 제3의 광복을 성취해야  한다는 역사의 요청과 양심의 소리앞에 서 있습니다.

제1해방은, 말 할 것도 없이 1945년 일본제국주의 일왕의 항복으로 인하여 일본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사건을 말합니다.  일본국왕은 1945년 8월15일 12시에, 우연의 일치랄까,  8백15자 일본어로 된 ‘항복조서’를 래디오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전범자로서 사죄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고 발표문도 ‘항복조서’가 아니라 ‘종전조서’였습니다. 

한민족의 제1해방은,  온전히 우리민족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고 UN연합국 승리로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해방후 우리민족의 역사전개는 우리 의지대로 이뤄지지 않고, 연합군중 강대국인 미소양국 군대에 의해 한반도는 38도선으로 분리되고, 남북에 각각 미국과 소련이 진주하여 한민족의 해방시공간  3년을 실질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소위 세계사의 냉전시대 희생이 된 것입니다.

제2해방은, 1948년 유엔결의에 따라  38도 이남 땅에서 만이라도 선거를 치루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하여,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이 탄생함을  세계에 선포한 날이기 때문에,  반쪽짜리 미완의 제2해방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부릅니다. 대한민국 헌법엔 아직도 대한민국 국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미완의 제2해방입니다.

북한에서도 1945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위 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 국가를 세워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1민족 2국가의 상태가 된 채 지난 67년을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장자권 다툼처럼 지냈습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완의 제2해방이라고 생각하고, 남조선을 완전히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김일성 정권이 당시 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천인공노할 6.25 민족전쟁을 일으켜서 귀중한 생명 4백만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온전한 제3 해방, 완전한 제3광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3해방, 제3광복이란 한민족 8000만이 어떤 강대국 외세의 간섭없이 글자그대로 자주독립 통일 국가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언제 달성될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는 올것입니다. 10년뒤,  20년뒤, 혹은 30년 후 일런지 모르나 분명히 오기는 올 것이고, 와야만 할 일입니다. 문제는 그날이 오게하기 위하여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빛 아래서 조용히 우리를 성찰하면서 정치학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겠습니다.


2. 야곱이야기는 이스라엘사의 압축이요, 세계사의 운명이며, 한민족의 계시적 말씀

성경말씀을 우리가 신비하고도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을 하나님이 직접 쓰셔서 사람에게 건네준 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는 적나라한 인간의 탐욕, 야망, 울부짖음, 성공, 실패, 찬양, 탄식, 회개, 거듭남의 체험이야기가 있습니다. 각 시대의 배경이 있고, 시대적 제약속에 살고간 사람들의 제약성과 상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적  제약성과 인간적 상대성의 껍질을 벗기고 말씀을 경청하여 들어보면, 야곱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요, 우리 한민족의 이야기요, 세계문명사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바울사도의 “오호라, 난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절규하는 몸부림이, 제1세기 로마제국시대의 한 유대인이 개인절규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실존의 적나라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는데 성경의 신비함이 있습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이 경험한 신비한 하룻밤의 브니엘체험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하고, 한민족의 제3해방과 관련시켜 조명 할 때, 우리는 3가지 성경적 진리를 깨닫게 됨니다.

첫째, 야곱이 20년 동안 자수성가한  라반 삼촌집,  하란이라는 이방인의 땅에서 머물지 않고, 고향을 찾기로하고 에서형님과 화해하기로 작정하고 얍복나루를 건넜다는 사건이 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부와 힘을 길러서 성공한 사나이였습니다. 하란 땅에서 고향을 당분간 잊어버리고, 가축떼를 불리고 가솔을 크게 키웠습니다. 삼촌 라반이 경계하고 시샘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야곱은  아내들과 종들과 수많은 가축떼를 돌보고 번식시키면서 하란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갈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제국의 변두리에서 목축업자로 성공하여 출세한 후 잠시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살다 살아진 한 유목민 족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민족의 형성의 역사도 없었고, 그 후손들이  인류역사에 끼친 히브리 종교사상의 불멸의 공헌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다윗과 시편도 없었을 것이고, 마침내 예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가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그런 상태에 머물거나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청년때 약속한 브엘세바의 돌베개 서약을 생각했고, 이미 세상을  떠나셨겠지만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무덤과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의 무덤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평생 죄책감으로 자기를 짓누르는 형님 에서와의 화해도 이루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답게 살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의 뿌리, 고향, 근원, 첨 약속을 생각했습니다. 불안하고 위험에 찬 여정이지만, 그렇게 ‘자기존재의 뿌리, 근원’에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한 민족에게도 그점이 먼저 중요합니다.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가는데 무슨 혈통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님니다. 그러나 개인은 낱 생명이면서 항상 전체로서의 생명입니다. 한 민족은  혈통이나 영토만이 아니라 언어, 문자, 역사경험, 문화유산의 공유면에서 알고보면 큰 일가족입니다. 6.25가 큰 범죄인 것은,  정치적 이념을 위하여 형제살인을 감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가 정치이념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리지어 살아가는데 정치-경제-사회 조직운명을 어떻게 하는게 더 효율적인가의 생활방편 입니다. 수단일 뿐입니다. 사람 목숨보다 더 귀중할 수는 절대로  없는 사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르다고 동생, 형님,조카, 심지어 부모뻘되는 사람의 가슴에 총질을 하고, 크게 업적이룬 사람에게 가슴가득이 훈장을 달아주는 어리석은 일을 해왔습니다.

6.25전쟁 퍼성이 끝난지 62년 곧 반세기가 더 지나는 동안, 당시 상호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 북한과 영국 및 프랑스 등등은 다 국교를 정상화하여 상호 방문하고 정치경제문화 스포츠 교류를 하는데, 막상 당사자 남북한 동족끼리는 으르렁대며, 천문학적 군사비를 써가며, 휴전협정 상태를 60년 가까이 지속해갑니다. 2012년 대한민국 정부 총예산규모는 324조인데, 그 중 국방비가 32조 9천억이고, 그 군사비 중에서 새로운 무기구입조달비가 신문에 난 것만 해도 10조원이 넘습니다.

오늘은 이 사실을 온 민족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 못난일,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임을 성찰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근원으로 하나에로 돌아가야 한다는 맘다짐 해야 하는 날입니다. 내년은 휴전협정 60주년 되는 날입니다. 이제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개성공단 산업을 확장해서 남북이 서로 윈윈하며 함께 경제적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해야 합니다.

정정당당히, 지금은 유엔에 가입한 두 개가 국가, 두 개의 정부가 엄존함을 상호 인정하고, 정정당당하게 양정부가 보장하는 여권을 가지고 떳떳하게 남북 국민이 원한다면 평양과 서울을 방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 국민들은 가능한데 왜 당사자 국민들은 못합니다. 양쪽정부와 주위 6나라 이해당사국들의 막는 것입니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그 일을 못하게 막는 일이 정치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일이 정치인 것입니다.

둘째,  야곱은 가족과 가축 떼들을 모두 강건너 보내고 홀로 남았습니다. 신비한 어떤 존재와 온밤 씨름하면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받습니다.

이 둘째 사건의 신앙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릇 강을 건넌다는 의미는, 요단강을 건너든지 얍복강을 건너든지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는 세례의 상징입니다. 진정한 자기존재의 변화는 ‘홀로서 하는 것’입니다. 무리속에서, 군중 속에서, 대중 집회 속에서 우리는 서로 신앙적 열기도 느끼고 영적 공감도 맛봅니다. 그러나, 신앙생황의 본질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인간은 홀로남는 경험, 단독자의 경험을 해야합니다. 혼자 탄생하고 혼자 죽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을 어두운 밤 강가에 홀로남게 함니까? 밤이라는 시간과  홀로남았다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밤은 낮에 눈앞을 환하게 잘 보이게 해주는 햇빛이 살아진 시간을 말합니다. 밝은 낮은 주위물건을 잘 식별하게 해주지만, 저 밤하늘 넘어 우주 깊은 공간을 보지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밤에 우리조상들은 답답하게 살았다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많이 배운 현대인들보다 더 깊이 우주를 바라보고 더 깊은 사색을 하면서, 감각적 짐승생활을 초월하여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낮의 빛들은 이성의 빛, 지식의 빛, 경험의 빛, 통계와 계산기와 컴퓨터의 빛입니다. 그 빛들은 도움되지만 저 깊은 우주 하늘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버립니다. ‘태양빛 속에 맹인’이 됩니다.

홀로있음은  외롭고 무료함을 맛보는 시간같지만, 달리생각하면 홀로있는 시간은 날마다의 기계적 반복생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시계를 넓혀서 앞뒤를 돌아봄을 의미합니다. 수평적 관계만이 아니라 수직적 하나님과 관계도 생각해는 시간입니다. 재산을 모으고 가축을 불리고 출세지향적 일에 몰두하다가 내가 이 광막한 우주 속에서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홀로있음의 시간에만 가능합니다. 

홀로 고독감을 맛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질문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고대사회에서 아무개를 부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름은 곧 그 이름이 나타내는 실체입니다. ‘야곱’은 “욕심, 경쟁, 영악함, 겨룸”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자문자갑 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살기 위해서 그랬지만, 욕심, 경쟁, 영악함, 겨룸의 일생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해서 형제와 삼촌과 부모도 속였습니다. 형님 에서와의 만남도 진정한 화해라기 보다 재물과 선물보따리로 형의 노여움을 누끄려뜨리려는 계략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옛 처세술 ‘기만자’로서의 자기본질을 버리고 “이스라엘”(하나님이 통치하신다)로 바꾸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남북 한민족도 진정한 제3해방, 제3광복은 단순한 국토통일이나. 경제통일이나,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로는 않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은 들사람, 전쟁에 능한 용사였던 에서를 닮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한은 야곱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이 품성 이대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해방, 참 광복, 통일을 주시지 않습니다. 억지로 우리가 쟁취하면 계속 내전이나 민족 갈등만 가중 됩니다.

셋째, 야곱이 밤새도록 씨름하고 문득 깨닫는 것은 “아하,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구나, 내가 거룩하신 자의 보내신자와, 혹은 그분의 현존체험을 하고 죽지 않았다니 은총이구나”하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명명하고, 아침에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다는 것입니다.

이 셋째 사건의 영적 의미는 말 할 것도 없이,  제3광복, 제3해방을 위해서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수단방법을 넘어서는 것 곧 한민족 각자가 자기 인간으로서의 깊은 사람 본성에로 돌아가서,  크게 한번 허물을 벗는 민족적 대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다”는 말은 아침에 동쪽에서 늘 뜨는 태양을 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존재를 자기 존재의 태양이신 하나님의 빛 앞에서 보았다는 말입니다. 자기 심령의  중심에서 꺼져있던 영성의 빛이 다시 비치기 시작함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오늘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자기육체 곧 몸으로 폐하시고,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을 지어 화평하게 하신다”입니다.  18절에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입니다.

한국 기독교 특히 북한에서 해방정국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종교말살정책, 기독교 박해의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옳습니다. 기독교와 종교를 말살하려는 교조적 유물론적 공산주의는 용납해서는 않됩니다. 그러나, 과거 경험을 절대화하여, 아예 북한과 대화나 협력을 통해점진적 화해와 통일로 나가자는 모든 노력마저도 용공, 종북 세력이라고 단정짓는 아주 굳어진 극우파 기독교 단체가 많습니다. 이들은 정말 하나님의 맘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릅니다. 너죽고 나죽든지, 너는 죽고 나는 살자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도리가 아닙니다.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을 운운하지만, 남북한을 제외한 4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진정으로 아무조건없이 순수하게 한민족의 평화통일과 온전한 광복을 원할까요? 그들은 베아링의 마찰열 감속효과 처럼 한반도를 이용하려는 자기나라 국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야곱과 에서가 자기 운명을 자기가 풀어가려는 자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갑작스런 사건형태로 오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이 과정적으로 온다고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한민족은 제3해방과 제3광복을  통해  ‘에서와 야곱형제의 화해’처럼 하나가 된다면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중요한 평화의 이끔이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대국이 패권국가가 아니라 유럽공동체처럼 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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