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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17만 일본 민중의 원자력 반대시위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도쿠가와 막부이래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은 매우 강성했다. 국가권력과 지배엘리트의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앞장 선 일본은 아시아 정복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원자폭탄 세례를 맞고 항복한 일본은 미국의 영향 아래 평화민주헌법을 만들고 전쟁하는 군대를 두지 않고 자위대를 두었다.

일본 민중은 국가권력과 질서에 잘 길들여지고 훈련된 국민들이었다. 4~50년 전만 해도 일본인들이 해외 관광을 다닐 때면 깃발을 든 사람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국가에 충성하고 잘 훈련된 국민들이 있었기에 일본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이 집단적으로 일어나 세상을 바꾸어가는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경험은 한국에 비해 한참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군국주의 전쟁으로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일본사람들 가운데 양심적인 시민세력은 생명과 평화를 지키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익세력의 거친 행동과 고함소리에 묻혀 일본의 평화세력은 제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몇 해 전에 집권한 민주당 정부가 미국의 세력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돌아가자면서 우애와 평화를 내세운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아쉽게도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아시아의 공동체적 우애와 평화를 내세운 민주당의 구호는 사라지고 말았다.

2년 전에 큰 지진과 해일로 일본국민이 큰 재난을 겪었다. 이 재난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 일본과 주변국가 국민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당장 눈에도 뵈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지만 원자력 방사능 물질에 오염되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생명이 영구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은 자손들에게까지 오염되고 파괴된 생명을 물려주게 된다. 재난과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원자력 발전을 한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편리하고 풍요한 삶을 살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어리석은 짓이다. 누가 편리하고 풍요한 삶을 살자고 목숨을 내놓겠는가?

큰 재난을 겪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크게 각성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가 원전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하고 원전 재가동 계획을 발표하자 얌전하고 조신하던 일본 국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3월에 원자력 반대 시위가 도쿄에서 시작되었을 때는 300명쯤 모이던 시민들이 6월에는 만 명대로 늘어났고 7월 16일에는 17만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1960년에 미일 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시위에 10만 명대의 시민이 모인이래,  52 년 만에 처음으로 많은 시민이 결집했다고 한다. 군국주의 전쟁의 폭력 속에서 큰 고통을 당한 일본국민이 평화와 생명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한 마음으로 모인다는 것은 세계평화와 민주운동을 위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생명과 평화를 위해 일본 민중이 마음과 뜻을 모으면 일본에 참된 민주정부가 설 것이고 일본에 참된 민주정부가 서면 한국과 중국의 민중과 정부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운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나 중국에서나 한국에서 민중이 생명과 평화를 위해 깨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삼일독립운동과 4·19혁명의 정신과 이념이 동아시아에서 실현하고 완성될 날이 멀지 않았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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